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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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한 잔 하시고 써 보세요.”

 

라고 글이 잘 안 써진다는 블로그 이웃께 농 섞인 댓글을 달았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조차 없는 잡지의 귀퉁이에서 본 것이다. “나는 글이 잘 안써질때 술을 마셔요. 술기운으로 글을 쓰는 거죠.” 나는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은 없다. 한 번 시도해 볼까 생각한 적은 있었는데, 워낙 술에 지고 들어가는 주량이라 몸속에 알코올이 일정 정도 이상 들어갈라 치면 일단 머리부터 지끈거려 오는 통에 글쓰기는 무슨! 턱도 없다. 그런데도 술을 한 잔 하시고 써 보라고 얘기한 건,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어서이다. 내가 무슨 작가도 아니고 연재를 하는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글을 써야 얼마나 쓰겠냐마는 나름 인터넷 서점 블로그로 당당히 활동 중이고 파리 날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름 색깔 있는 글을 쓴다고 자뻑한 채 살고 있다.

 

 

이 책 「고종석의 문장」을 읽기 전까지 고종석씨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예전에 그의 책 「서얼단상」을 읽었는데, 대구에 살고 있던 대학생의 눈에 그 책은 충격이었다. 전라도 사람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새드무비 같았다. 일정 기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왕조시대부터 현재까지 그런 폭력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다. 이후 그의 이름을 잊고 있다가 트위터 팔로우를 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을 읽은 지 십 수 년이 지난 채 트윗만으로 그를 판단하게 되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로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척 하는 아저씨 같았다. 트윗상의 용어로 ‘썩개(썩은 개그)’라는 말이 있는데, ‘썩개’를 자주 날리시는데 나는 전혀 재미가 없고 공감도 되지 않았다. ‘이 아저씨 뭐야~ 재미도 없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그런데 계속 그를 팔로우 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절필선언>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인터뷰에서 “트위터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유명한 작가이던 사람이 느닷없이 절필선언을 한 것에 과도한 정치적 명분을 입히고 싶었던 나는 이후 그의 트위터를 주목했다. 그런데 맨날 ‘썩개’나 날리는 통에 ‘싱거운 사람’으로 치부하고는 했다. 그의 인터뷰대로 트위터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글과 생각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글과 생각은 ‘별 실 없는 사람’이라는 내 머릿속 편견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마르크스하고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서문 첫 문장은 다 아시지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렇게 인상적인 말이 없습니다.” (p.47)

 

 

이 책은 글쓰기 강좌를 엮었다. 글이라고는 하나 말에 가까운 글이다. 실제 그의 강연 내용은 그대로 녹취한 것인지 편집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나는 구어체의 문장이 좋았다. 실제로 자리에 앉아 강연을 듣는 것처럼 가까웠다.

 

글쓰기 강좌인 만큼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혼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었다. 내 글이야 대부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인데, 이 블로그질도 3년 정도 하다 보니 무림의 고수가 너무 많은 것이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써도 읽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여간 힘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제목을 특이하게 쓰자.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인상에 남도록 쓰자. 라고 생각했다. 나도 다른 블로그 이웃들의 글을 읽을 때 솔직히 띄엄띄엄 읽을 때가 많다. 글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을 훑을 때도 많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개연성이 많으니, 인상적으로 쓰고 기억에 남도록 쓰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생각이 글로 이어지면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없는 터. 노력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는 부분인데, 책에서 유명한 작가가 이 부분을 언급하니 괜스레 우쭐해진다. ‘뭐, 나는 이미 그 부분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입 꼬리도 살포시 올라간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이 혁명으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숨이 확 막히지 않습니까?” (p.48)

 

 

 

맞다. 숨이 막힌다. 감동받아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해서? 아니다.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나?’이다.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 형님들이야 역사를 그야말로 몸으로 아로새긴 대단한 분들이지만, 공산당 선언을 쓴 나이가 서른·스물여덟이다. 나는 저 형님들 나이를 훌쩍 하고도 더 많이 넘긴지 오래인데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을까? 코웃음들 치지 마시라. 원래 배포와 배짱은 커야 어디 가서 뻥이라도 칠 수 있는 법. 나는 감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형님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다. 최소한 죽기 전에라도 한 번 써보고 싶다.

고종석씨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강조한다. 「이방인」의 첫 문장도 언급한다. 「설국」의 첫 문장도 대단하다. 나도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글쓰기 연습’이다. 글쓰기는 타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고난 것이라면 사람들 불러 모아 글쓰기 강좌를 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이런 책을 낸다면 더더욱 큰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나도 마르크스, 엥겔스, 카뮈, 야스나리 형님들처럼 절대로 잊히지 않을 첫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씨가 후보로 뽑히기를 바란다.” <자유의 무늬>, 35쪽

“앞서 이야기했듯, ‘개인적으로’는 삭제하세요. 필요 없는 말입니다. ‘뽑히기를’에서 ‘를’이 필요할까요? 격조사라 할지라도, 그게 없이도 말이 통하면 삭제하세요. ‘후보로 뽑히기 바란다.’ 좋은 문장은 간결한 문장입니다. 물론 간결함 때문에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만, 좋은 문장의 특징 하나는 간결함입니다.” (p.145)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고종석씨가 자신의 글과 문장을 가지고 강연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 글과 문장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기도, 칭찬하기도 하는 능수능란함에 박수를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이전에 내가 써 놓았던 리뷰 하나를 출력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고종석씨의 조언에 기초해 내 글에 빨간 펜을 그으며 퇴고를 해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A4용지 곳곳에 빨간 펜이 가득해 흡사 부적 같아 보였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내놓을 수 없어 포기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바로 저렇게 쓰고 있다.’라는 번쩍거리는 깨달음이 줄곧 이어졌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강렬함보다 개인적으로 더 강조하는 바는 문장의 간결함이다. 김훈과 한창훈, 마루아먀 겐지와 유시민씨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추장스럽고 난잡하게 늘어놓는 단어와 단락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내가 쓸 때는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간결함. 간단함.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지 않으면서 호흡이 짧은’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

쓰는 사람도 경쾌하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보는 사람도 숨차지 않고 인상 깊게 남을 수 있는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을 써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인정받는 글쟁이라고 하는 고종석씨도 자신의 이미 책으로 출간한 문장을 가지고 가차 없이 비판하는 것을 보니 뭐,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배짱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글에서 접속부사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접속부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엔 빼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글이 간결해 보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떤 긴장감이 생깁니다.” (p.117)

 

 

접속부사. 하… 저자가 이미 내 글을 샅샅이 살펴본 것만 같았다. 사우나에서 발가벗고 마주한 느낌이다. 책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내 글을 톺아보니 접속부사 천지였다. 그래서, 그리고, 그렇지만, 그러나 등등. 저자는 긍정접속부사는 되도록 배제하고 부정접속부사는 되도록 최소화하라고 강조하는 데, 나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리지 않고 마치 접속부사가 글의 생기를 불어 넣는 것으로 착각하고 도배질을 하고 있었다. 내 글이 총총히 들어 찬 A4 몇 장을 무람없이 찢어발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배질된 접속부사 때문이다. 크헉! 단락의 초입부터 등장하는 접속부사를 마다 빨간색을 칠하다 보니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 서평을 쓰면서도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경계하다 보니 자연스레 들어가도 좋을 접속부사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닌 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일부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30년 동안의 삼김시대’라는 말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 관심은 일부 언론이 사용하는 ‘30년 동안의 삼김시대’라는 말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데 있다.” (p.192)

 

 

자신의 책 <자유의 무늬>를 재차 퇴고하면서, 정리된 문장은 깔끔 그 자체다. 아니 왜 처음부터 그렇게 쓰지 않았소. 라고 묻는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 될 것이고, 이렇게 대중 강연에서 자기 글을 드러내놓고 칼질하는 자체가 대단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문장이 특별히 잘못되었거나 의미전달에서 뒤 문장과 큰 차이가 없지만 글이 주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또 고백을 하건대, 나는 한 번 쓴 글은 다시 퇴고를 잘 하지 않는다. 무슨 리뷰대회 같은 것을 위해 쓸 때도 그렇다. 귀찮기도 하지만 다시 내 글을 자세히 살핀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퇴고만큼은 꼭 해야겠다 싶다. 문서프로그램에서 맞춤법 점검하는 것조차 귀찮아 하지만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몇이라도 된다면 그들을 위해서 퇴고를 해야 할 것 같다. 뭐, 퇴고 하지 않아도 수상쯤은 가끔 하기도 하지만 뭐, 크흐흠……

 

 

“빨갛다, 뻘겋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빨그스레하다. 뻘그스레하다. 발갛다. 벌겋다. 발그레하다. 벌그레하다. 붉다. 불그스레하다. 발그스름하다. 벌그스름하다. 빨그스름하다. 뻘그스름하다. 불그무레하다. 불그죽죽하다.” (p.110)

“‘꿈틀꿈틀’이나 ‘너울너울’을 외국어로 어떻게 옮길 수 있겠습니까?...사전을 통해서 능동적으로 단어들을 익히기도 해야 합니다. 한국어의 의태어/의성어들, 색채어휘에 관심을 쏟으십시오.” (p.111)

 

 

한국어에 풍부한 색채어휘와 의태어/의성어는 굳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지의 사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만큼 글에서는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오해 때문인 것 같다. 색채어희와 의태어/의성어가 많으면 글의 수준이 낮아 보인다거나, 난잡해 보인다는 오해. 나만 그런가? 소설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블로그에 서평을쓸때도 그렇다. 하지만 글쓰기 연습 차원에서라도 한국어를 익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사전을 본 지가 어언 20년 가까이 된다. 유의어/반의어 사전 같은 것은 사야할 필요를 못 느꼈다. 뭐, 혹시 아나? 내가 10년 쯤 후에 소설을 쓰겠다고 박박거리고 있을지… 그때를 위해 색채어휘와 의태어/의성어 공부는 좀 해두는 편이 좋겠다.

 

또 하나 내가 개인적으로 강조하는 글쓰기는 ‘재미’다. 소설이든, 서평이든, 칼럼이든 뭐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껄껄 넘어가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히히 입 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것까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본다. 나도 재미없는 글을 보는 것은 곤욕이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내 생각은 ‘재미’다. 곧 서평을 쓰게 될 김현진의 「뜨거운 안녕」이 딱 그랬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을 기억해 내면서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드는 힘. 그것이 좋은 글과 문장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대학 때 끄적인 글들을 가끔 들여다보면 내가 쓴 것을 읽으면서 혼자 좋아서 낄낄거리는데…… 세상풍파에 찌들다 보니 날만 서 있다. 거칠기만 하다.

 

그래도 뭐, 앞으로 더 잘 쓰겠지.

고종석씨보다 더 잘 쓸게 될 줄 누가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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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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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자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다. 전역 직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같은 이야기를 아무리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해도 도대체 소재가 떨어지지 않는다.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책이나 영화에서조차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곳이 군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군부대는 왜 그렇게 힘든 곳만 있는지, “나는 군생활 참 편하게 했어.”라고 하는 남자는 적어도 나는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함께 군대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자신의 군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하면 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더 힘들었거든~!’ 군대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갈만한 군부대는 없다. 모조리 힘드니까.

사단장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병이든, 군생활 내내 밥하고 반찬 만드는 조리병이든, 철책 경계 근무를 서는 경계병이든 결국 자기 군생활이 가장 힘든 것이다. 사람은 특별히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극도로 신뢰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나의 군생활 중 겪었던 수많은 사람과 사건과 환경은 고스란히 아로 새겨진다.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박히는 것이다.

군대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누구나 나름의 짐이 있다. 그 짐의 크기와 무게가 천양지차가 난다 하더라도 짐을 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 삶은 어려운 것이다. 정도의 차이를 무색케 할 만큼 삶에 지워진 짐은 무겁고 힘들며 거추장스럽다.

내 아버지는 7년째 암투병 중이시다. 3번의 수술과 4번의 항암치료, 2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다. 최근에 원래 암이 발견되었던 부위에서 뼈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다시 수술을 받으시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양성자치료를 받으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옛말을 나는 완벽하게 이해한다. 돈도 돈이지만 집안 식구 중 환자가 있으면 다른 가족들의 삶도 너무 힘들어 진다. 암 진단을 받기 직전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이었다. 아버지와의 갈등 직후 암 진단을 받으셔서 나는 죄책감이 많았다. 나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었다. 재발이 되고 간병하시는 어머니의 건강도 나빠지셨을 때는 자식으로서 할 수 없는 생각도 많이 했다. 아주 나쁜 아들인 셈이다.


이 책 「몽환화」를 읽으며 뜬금없이 투병 중이신 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아버지는 내게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는 내 인생에 짐인가? 내가 아버지의 인생에 짐인가? 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아팠다.

“훔치지 않았습니다. 나팔꽃을... 맡은 겁니다.” (p.329)

몽환화... 노란 나팔꽃을 피운 아키야마 슈지의 전 직장 동료 히노 가즈오의 고백이다. 아키야마 슈지의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조사를 받던 가즈오는 나팔꽃을 맡았다고 자백한다. 몽환화를 보고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떠안은 것이었다.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내 인생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도 이런 일들은 많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을 찾아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일은 찾아내서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물론, 반대로 외면하고 짐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이것은 도덕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지극히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다.


“전에도 얘기했듯 우리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아버지도 요스케 형도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네게 했던 모든 행동은 그런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너를 힘들게 했다면 역시 우리 방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p.341)

소타에게 가족은 먼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이복형제인 요스케와는 친하지 않았다. 단순히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이유는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을 낳은 엄마조차도 소타 자신보다는 형인 요스케를 더 챙기거나 형의 눈치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유독 나팔꽃을 많이 보러 다니는 것도 이상했다. 소타에게는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구경거리인데, 불만 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서는 형도 이상했다.

몽환화에 얽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타의 가문은 짐을 졌다.

어린 소타에게는 차마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막내 소타에게만은 짐의 무게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노란나팔꽃은 막부의 관리 아래에서 계속해서 은밀히 재배되었거든. 그 강력한 환각 작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야.” (p.391)

에도막부 시절 노란 나팔꽃의 비밀스러운 효과를 이용하는 일부 그룹이 있었다. 몽환화는 노란 나팔꽃을 지칭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환각작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막부는 그로 인한 부작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메이지 새 정부에서도 은밀히 새로운 방안이 제안되었다. 내무성 윗선에서 경찰 수사에서 자백제로 몽환화를 사용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이 소타 가문의 선조였다. 하지만 막부 시대와 마찬가지로 정신착란과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몽환화의 부작용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되던 노란 나팔꽃을 전량 폐기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후 ‘MM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회적 부작용과 폐해가 있었기 때문에 몽환화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소타가문과 이후에 소타가 조우하게 되는 첫사랑의 그녀, 다카미의 가문은 비슷한 이유로 몽환화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짐을 지게 된다. 극비리에 추진되던 몽환화의 활용에 두 가문의 선조들이 손을 담갔기 때문에 후예들도 그 짐을 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일에나 완전함이란 없지. 엄중이 관리되었던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다양한 이유로 외부에 유출되었어. 대량의 씨앗이 사라진 거야. 하지만 노란 나팔꽃이 완전히 자취를 감춤으로써 씨앗도 소실되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MM사건이 일어난 거로군.” (p.392)

하지만 “무슨 일에나 완전함이란 있을 수 없다.” 잘못 유출되면 엄청나게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 노란 나팔꽃이 다양한 이유로 유출된 것이다. MM살인 사건의 범인도 노란 나팔꽃 씨앗을 복용한 후 정신 착란을 일으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나는 여기서 “다양한 이유”에 주목한다. 가릴 수 없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감출 수 없다. 모든 짐을 다 질 수도 없고 다 피할 수도 없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이것은 염세주의도 패배주의도 이기주의도 아니다. 나에게 지워진 짐을 취사선택 할 수 없다. 최대한 피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천륜의 관계에서도 나는 내 아버지를 짐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 천하에 패륜아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더 고통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라고도 생각했었다. 좋다. 패륜아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 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투병 중이신 아버지를 짐으로 여기는 생각자체가 패륜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만큼 내게 주어진 짐은 고달프고 무거웠다.



“설마, 환각제 대신 사용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것 때문에 내게 씨앗을 더 만들어달라고 한 거 아니냐?” (p.380)

“어디에 전화하십니까?”

“당연히 경찰이지. 꽃의 씨앗을 먹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생명을 잃어다. 그냥 놔둘 순 없지.” (p.381)

밴드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노란 나팔꽃의 씨앗을 복용하고 환각을 경험한 나오토와 오스키는 나오토의 할아버지이자 식물연구 전문가인 아키야마 슈지에게 씨앗을 부탁한다. 몽환화의 존재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던 슈지는 자신의 손으로 노란 나팔꽃을 피워 낸다. 그것이 파국의 원인이 될 줄 그 자신조차 몰랐다.

자신의 나오토의 자살을 일으킨 것이 몽환화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된 슈지는 더 많은 몽환화의 씨앗을 찾으러 온 손자의 친구 오스키의 속내를 간파한다. 속내를 들켜버린 오스키는 슈지를 죽인다.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과 관련된 몽환화의 탄생 비화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치밀하고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아버지와 나, 인생에게 지워진 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는 소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p.420)

동일본대지진 이후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된 원자력공학을 전공하는 소타가 평생 원자력을 연구할 거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걱정스런 말을 건네자 하게 되는 말이다.

“빚이라는 유산”, “운명이라는 짐” 같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소타는 기꺼이 자신의 가문이 가진 짐 혹은 유산을 떠안는다. 평생 원자력을 연구해서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그것에 자신의 삶을 내던진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로 결론날 수 없는 문제다. 오랜 시간 고달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다. 뉘우치고 회개하고(나는 개신교인이다) 돌이켜도 문득 나를 사로잡는 원망과 부담은 쉽게 이겨낼 수 없다. 하지만 내게 이것은 “운명이라는 짐”이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다. 내 삶에 주어진 짐이자 유산이다. 아버지의 치료가 잘 돼서 완치를 하시더라도,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후의 삶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이냐의 문제다.


“몽환(夢幻)의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 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p.220)

몽환화... 다급하고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과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아키야마 슈지의 손자 나오토와 오스키는 환각 상태에서 놀랄 만큼 엄청난 음악적 능력이 표출되는 것을 경험한 후 몽환화에 빠져 들었다.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씨앗 몇 알이면 해결되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삶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 방에 만사 오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있어도 그것이 결국에는 독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네 인생과 삶에 주어진 유산과 짐이라면 단번에 들어 올려 옮기고 종착지에 가져다 놓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끊임없이 나와 당신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질 것이다. 소타의 가문과 다카미의 가문은 대를 이어 이 짐을 지고 있다. 소타의 부모와 형은 소타에게만은 이 짐을 지우려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소타는 이 짐을 자진해서 지게 된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 짐은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지금 어떻게 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짧은 시간에, 단 번에 해결하려고 조바심 내지 않아야 한다. 긴 호흡으로 멀리까지 내다보는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내 짐을 기꺼이 지려 한다. 줄곧 고달프고 아프겠지만 단 번에 해결하고자 몽환화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이다.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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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구의 세계사>

 

 

 

 

 

 

 

 

 

 

 

 

 

홍명보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직이 유임되면서 각종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다. 과하다는 평가부터 속시원하다는 평가까지 다양하지만 MB와 비교되는 것을 홍 감독이 본다면 기분은 정말 나쁠 것 같다. 비록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예선탈락 해 돌아왔지만 월드컵은 이제부터 흥미진진해 졌다. 8강 대진표가 나오면서 제대로 축구를 즐길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스포츠탐사보도 전문기자라고 한다. 책의 두께가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축구의 세계사가 다룰 것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책의 목차만 보면 근대 이전부터 이미 축구와 비슷한 구기종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얼마전 팟캐스트 방송에서 들었던 대중문화 평론가 강헌씨의 언급이 생각났다. '축구는 이미 고대 중국과 고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근대 이후 서구가 축구라는 종목에 규칙을 만들고 틀을 갖추면서 자신들이 종주국이다 뭐다 해서 큰소리 내고 있지만 축구와 유사한 구기종목의 역사는 근대 훨씬 이전이라는 것이다.

축구는 세계적인 스포츠다. 월드컵도 3대 대회로 인정되고 있고,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가도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축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 같다. 단순히 역사적 나열만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이자 탐사보도 전문가 답게 날카로운 비평이 더해져 있을 것 같다.

 

 

 

 

2. <피파마피아>

 

 

 

 

 

 

 

 

 

 

 

 

 

한국의 각종 협회만 문제로 가득한 것으로 착각했었다. 홍명보 감독의 유임과 허정무씨의 어이없는 답변을 보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축구협회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원래 그런 곳으로 생각한다. 빙상연맹, 수영협회들도 각종 추문과 이상한 언행들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책의 제목자체가 노골적이다. 국제축구연맹 피파를 마피아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만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각종 마피아들이 피파까지 마수를 뻗친 것인자?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선정을 놓고 아직도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정말 피파에 마피아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국의 축구협회와 비교해 누가 더 마피아 인지 분석해 줬다면 한국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 그부분은 아쉬운 바다.

 

 

 

 

3. <다시, 사람이다>

 

 

 

 

 

 

 

 

 

 

 

 

 

고상만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나는꼼수다>였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나와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목소리에 끌려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찾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고상만씨가 고 김훈중위 의문사는 물론 각종 의문사에 관련된 시민운동과 인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성역이 없어 보였다. 군, 친일파, 독재의 잔재세력, 사법부 등. 철저한 사료조사와 끈질긴 탐사로 하나하나 파헤치는 그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의 책이나 그의 방송을 듣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따뜻한 가슴을 지난 사람이구나'라는 것이 느껴진다. 다소 촌스러운 말투로 들리지만 진정성이 있고 십 수년도 넘게 지난 예전의 일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는 끈질김은 그의 성실함의 반증이다.

사회가 점점 어두워지고 삭막해지지만 적어도 고상만씨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정도로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아무도 챙기지 않고, 미리 겁부터 먹어 나서지 않는 일들에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라는 고문을 놓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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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려면
오구마 에이지 지음, 전형배 옮김 / 동아시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대의민주주의제도는 현대 국가의 근간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의민주주의제도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 혁명과 전쟁과 살상과 암투와 결탁을 이어오며 만들어 낸 최종 결과물이다. 현대 정치의 골격이기도 한 대의민주주의제도를 한국은 수십 년 만에 응축했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독재 시기에는 제대로 이것을 구현하지 못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비로소 조금 맛보게 되었다. 대의민주주의제도를 결정하고 대표하는 것은 ‘선거와 투표’이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처럼 직접민주주의제도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근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선거와 투표’는 민심과 민의를 국가 정책과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이었다. 한국의 정치와 선거가 세계 그 어떤 국가보다 질이 떨어지고 수준이 낮은 것은 일견 이해가 된다. 87년 이후 제대로 된 선거와 투표를 해 본 것이 불과 30년도 되지 않는 것이다. 독재정권 아래 선거는 선거가 아니었고, 투표도 투표가 아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선거와 투표를 하며 한국 사람들은 두 번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정치적인 방향성의 차이를 논하기 전에 나는 이것만으로도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자민당이 수십 년 동안 해먹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두 번째 정권교체 이후 이 대의민주주의제도의 골격인 선거와 투표가 공정하게 치러졌는지 말이 많고 의심이 많아 졌지만.

 

나는 적어도 정치적 의제와 정치 구조에 대해서 비판과 음모와 공격이 오가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발전 동력이라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선거제도나 투표제도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암울해 보이고 도무지 달성될 것 같지 않은 정권교체도 언젠가는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대의민주주의제도가 최상의 제도나 방법이 아님을 주장한다. 선거와 투표도 오롯이 민심과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 「사회를 바꾸려면」은 도발한다. 현대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근간을 흔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 이었다.(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여기며 입시경쟁을 뚫고 올라왔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진리탐구의 전당은커녕, 학생들만 엄청 뽑아놓고 볼품없는 강의를 억지로 듣게 하고 수업료 올리기에 바쁘다.” (p.320)

 

이 부분만 읽으면 한국의 사회학자가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쓴 문장으로 보인다. IMF이후 한국사회, 특히 대학과 대학생이 겪고 있는 사회적 진통을 표현한 듯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60년대 후반 일본의 대학에서 전공투 운동이 벌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무려 50년 전 일본의 대학과 대학생들이 겪었던 일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부 의도적으로, 일부 어쩔 수 없이 한국은 일본의 제도와 풍습, 사회체제와 학문, 문화와 의식을 답습했다. 일본이 80년대 겪었던 부동산 버블붕괴와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지금 한국이 겪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한국의 미래를 미리 보는 것 같았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앞으로 한국은 이렇게 될 거야.’라고 예언하는 것 같았다.

 

저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젊은 사회학자다. 책의 전반부에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론적 배경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데, 사회학·철학책 몇 권 읽는 것 같이 짜임새 있고 내밀하게 분석한 것이 돋보였다. 특히, 나치스의 집권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이후 방법론적으로 ‘전위당’으로의 방향성과 ‘사회민주주의’로의 방향성에 따라 어떻게 진보·좌파가 형성되고 실패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나치스가 정권을 쥔 것은 결코 폭력혁명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보통선거권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p.168)

 

흔히 히틀러의 나치스가 정권을 잡게 된 것은 불법적인 방법이나 폭력혁명을 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2차 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아우슈비츠 학살, 유대인에 대한 정신병적인 공격 등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히틀러와 나치스는 정상적인 인간과 인간들의 집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히이만을 통해 악의 평범함과 편재성을 악몽처럼 경험한 현대인들은 아히이만의 얼굴에 히틀러와 나치스의 얼굴을 오버랩해야 한다. 1차 대전 이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독일의 경제는 극우 폭력 단체를 양산했고, 지독한 실업난과 구직난에 허덕이던 청년들은 너도나도 이곳에 몰려들었다. 결코 폭력을 동원하거나 강제로 끌어 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선출된 권력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대의민주주의제도가 현대국가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될 수 있지만 그 제도로 인해 선출된 권력에 대해 무한대로 부여한 정통성은 한순간에 괴물 내지는 악마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법만 정상적이고 이후 과정과 결과가 비정상이라면 선거와 투표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2차 대전 이후 전범들에 대한 체포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들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고 있는 유럽에서, 신나치주의와 인종주의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가 정상적인 선거와 투표로 또다시 나치스와 같은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생각에 이르니 끔찍하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강헌씨가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순간」이라는 책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 하면서 대의민주주의제도의 한계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선거라는 것을 통해 선출된 자들이 결국 똑같은 자들이다. 뽑아놓은 저놈이 제대로 안 해서 다시 다른 놈을 뽑아도 결국 그들은 움직이고 지배하는 것은 그 위에 있는 다른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정치상황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 맞다! 결국 한국이라는 사회를 움직이는 이들은 저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보이지 않는 자들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자 더욱 정치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는 역효과가 나기는 했지만, 선거와 투표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제도가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에 강헌씨와 오구마 에이지와 내가 비로소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내가 같은 반열에…….

 

“같은 마르크스주의라 해도 노동정당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여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 정예멤버의 전위당을 조직하여 혁명으로 정권을 잡는다는 레닌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p.282)

 

일본과 한국은 레닌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나는 현재 한국 진보정치의 괴멸의 시작은 레닌주의가 득세한 과거 7,80년대 대학운동권의 선택에 있다고 생각한다. 6.4지방선거에서 통진당 사태를 일으킨 통합민주당과는 다른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마저 괴멸한 것은 길지 않은 진보정당의 정치적 실험이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책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50년대 이후 대학운동권에서는 레닌주의에 입각한 ‘전위당’조직 활동이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50년대와 한국의 70년대는 ‘전위’가 필요했다.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극소수였고, 이들은 자신의 안위와 영달만을 추구하지 않고 대중을 계몽하고 영도해 보다 나은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소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이 일반화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문맹의 비율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사회민주주의’형태로 변모해야 했는데, 여전히 ‘앞서서 나가니 따르라’라는 식의 객기만 남게 되었다. 이석기씨가 같은 정당 사람들과 모임을 하면서 전혀 실정에 맞지도 않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 한 것을 보면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전위의식’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것은 이석기씨와 통진당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전체 좌파조직과 정당에 치명타를 입혔고 앞으로 좌파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제 아무리 노동당, 녹색당 간판을 들고 나와도 “저런 저..저.. 저 놈들 통진당하고 똑같은 패 아니야! 빨갱이 놈들!”이라고 하면 끝이다. 게임 끝.

 

“사회운동에 있어서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frame)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론이 프레이밍(framing)이다. 현상학적인 사고를 통해 말하자면 단지 사회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은 현실세계의 복잡성을 감축시켜 도식화하여 이해한다. 그러므로 인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 운동에서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파악한다.” (p.387)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괴멸한 한국 좌파정치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것 같아 언급한다. 사회운동에 있어서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여론조작이나 정치적 선전과 선동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선거 당일 밤 TV에서 지도에 양당색깔을 입혀 표시한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네거티브가 판을 치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도 선거결과 지도는 바뀌지 않는다. 동서의 구별이 확실하다. 그만큼 프레임을 바꾸는 것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면 이것에 올인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여론전에서도 밀리고 가지고 있는 돈과 정보와 힘도 없고 대중들에게도 완전히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그렇다면 물러설 곳도 없는 것이다. 방법도 없고.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팟캐스트 방송 중 하나가 <지방선거 데이터 센트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말 그대로 지방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나열한 방송인데, 경악했다. 일단 제대로 된 공약을 가진 후보자가 거의 없었고, 음주운전쯤은 기본 장착 옵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허탈했던 것은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진보당, 녹색당, 정의당, 노동당 후보들의 공약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공약 같은 것이야 유권자들이 보지 않으니까 대충 해놓고 시장에 가서 인사나 더 하고 악수나 더 하자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정치의 이런 구태와 낮은 수준의 선거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책에서 언급하는 사례가 도움이 될 듯하다.

 

“‘풍요로움보다 자연을 지켜야 한다.’라는 프레이밍만으로는 좀처럼 사람들을 사회운동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만들고 안 만들고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라는 프레이밍을 제시하면,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는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저 쪽은 나쁜 놈들이야! 저 쪽을 뽑으면 다 망해!” 라는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척시장에 당선된 김양호 시장은 선거 기간 내내 <핵발전소 전면 백지화>를 내세웠다. 상대편 후보가 <핵발전소 유치>를 내세운 것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김양호 시장이 당선되었다는 것은 삼척시민들의 민심과 민의를 제대로 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극히 일부다.

 

“독일 녹색당 ‘당신들은 우인가, 좌인가?’ ‘우리는 우도 좌도 아니다. 앞이다!’” (p.388)

 

“우리는 우도 좌도 아니다. 앞이다!”라고 재치 있게 받아칠 만한 녹색당원은 한국 녹색당에는 없는 걸까? “당신 빨갱이요?”라고 하면 화를 내거나 무시하는 정도에 불구하면 대중의 관심은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앞이다!”라고 말해 논점을 전환하고 전혀 다른 판국으로 사안을 주도할 수 있는 프레임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진보정치·좌파세력들은 그럼에도 끊임없이 대중과의 소통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들만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소수지만 <기본소득>같은 개념은 새로운 것이다. 전혀 한국 사회에서는 적용될 수 없을 것 같지만 끊임없이 이런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을 대중에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일본에서는 거리에서 벌이는 데모가 거의 잊힌 것이나 다름없어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운동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오히려 데모의 의의를 강조했습니다.” (p.7)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대규모 데모가 장기간 지속되었다. 월스트리트 아큐파이와 재스민 혁명, 이라크와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데모와 시위. 저자는 선거와 투표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데모를 통해 한국 사회가 변화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대의민주주의제도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지난 시간이 아깝거나 다른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알제리와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의 숫자가 8만 명이라는 뉴스를 보고 나는 절망했다. 왜냐하면 세월호 시위에 참석한 가장 많은 숫자가 그것에 반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뭐,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월드컵 응원은 즐기는 것이고 세월호 시위는 뭔가 불법적이거나 위험한 일, 내지는 잡혀갈지도 모를 일로 생각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회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바꾸어야 한다. 아니 이미 바뀌고 있다. 그 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침몰하든가, 어느 시점에선가 대파국을 맞이하든가, 명백하게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든가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p.278)

 

저자는 여러 번 울리히 벡의 「리스크 사회」를 언급하면서 사회 어떤 계층이든 원전사고와 같은 국가적 재앙이 닥쳤을 때, 자신의 계층을 이용해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냥 관심 끄고 혐오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파국은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명백하게 좋은 방향”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가만히 앉아서 파국을 맞고 싶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움직여야 하는데,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은 전 사회적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거리로 나가 조금만 인도로 진출하면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끌려가야 하고 한여름이나 한겨울 상관없이 물대포를 맞아야 하는 두려움과 귀찮음을 벗어던지면서까지 데모를 하러 나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당신이 바뀌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설 것, 낡아빠진 말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말의 의미가 새롭게 재활용되어야 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p.428)

 

책에서 아쉬웠던 것은 용두사미다. 결론이 애매모호하다. 저자 스스로도 “낡아빠진 말 같지만”이라고 언급했듯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제 당신 스스로 나서라. 거리로 나가라.” 이게 얼마나 한국 사람들에게 먹혀들지 모르겠다. 「88만원 세대」와 「분노하라」를 읽고 몇 사람이나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갔는지 모르겠다.

 

책이 용두사미이다 보니 리뷰도 용두사미다. 이건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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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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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과 같이 살았던 시간은 좋았던 기억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대학 입학 후 동아리 형들 3명과 함께 지금으로 따지자면 투룸에서 살았다. 재미있는 동아리고 형들도 너무 좋아서 온갖 기대로 시작했다. 내 기대는 불과 며칠 만에 산산이 깨졌다. 나를 제외한 3명의 형들은 이미 2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고 이전에 함께 살던 선배가 졸업하면서 그 빈자리를 내가 메운 것이었다. 함께 산지 며칠이 지난 아침 내 방으로 들어온 형들이 내가 누워있는 머리 위를 타 넘으며 지나가고 내 베개와 이부자리를 밟고 지나다니는 것이었다. ‘아침에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다음날에도 나를 타고 넘고 내 이부자리를 밟고 다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장 나와 내 동생을 가장 많이 혼재시던 것 중 하나가 집안예절이었다. 문턱에 올라 서 있거나, 형제끼리라도 이부자리나 베개를 밟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고 있는 사람을 타 넘거나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어른들에게는 더 엄격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안이 뭐 대단하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어머니도 할머니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가족과 살다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사는 데 이부자리 에티켓부터 이건 뭐 너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 같았다.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나는 일주일 정도 지나 형들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예의를 지켜 달라. 이런이런 것은 하지 말아 달라. 형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몇 년 동안 함께 살며 한 번도 문제시 되지 않았던 것을 신입생 한 녀석이 들어와 제기하니, 퍽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후에 형들의 행동이 조금 조심스러워지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했고 1년 동안 살기로 한 형들과의 동거는 6개월에 그치게 되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친한 친구 둘이 유럽 배낭여행을 가서 ‘철천지원수가 되었다더라.’라는 우스개는 흔하다. 20몇 년, 30몇 년을 개인으로 살다가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부부가 가장 많이 다투는 문제도 아주 사소한 문제다. 청소하는 패턴, 세탁물을 처리하는 방법, 소파에 누워있는 모양 등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한다. 혼자서 아주 즐거운 삶을 향유하고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함께 사는 즐거움보다 크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 「함께 살아서 좋아」의 제목처럼 “함께 살아서 좋은” 사람과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는 10년을 연애하고 4년째 그 분과 살고 있다. 친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장기간 연애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아주 모범적인 부부다. 크크크... 뭐, 내 자랑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아내를 무척 사랑한다. 자타공인 애처가다. 밖에서 내 모습을 아는 친한 친구 녀석들은 이것을 가지고 매번 나를 놀린다. 하지만 내 아내만은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결혼한 것이 아닌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남편의 부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내 핀잔을 주거나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인간이다. 나는 그런 인간들은 쓰레기 취급한다. 그 사람이 밖에서 아무리 사람들에게 잘하고 친절하고 사회생활을 기똥차게 해도 자기 아내에게 하는 꼴을 보면 그 사람의 원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의 차이는 셰어하우스에서 반드시 부딪치는 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벽에 직면했을 때 충돌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대화를 통하여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셰어하우스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 된다.” (p.33)

 

결혼생활도 일종의 셰어하우스라고 생각한다. 아내와 10년 동안 연애를 해서 정말 서로의 부모님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해보니 전혀 아니었다. 연애와 결혼은 물과 기름, 하늘과 땅처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10년의 연애는 땡! 결혼 0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장기간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대화였다. 아내와 나는 말이 잘 통한다. 기질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하다. 물론, 아내가 나보다 훨씬 좋고 착하다. 이것은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연애 때는 잘 모를 수밖에 없었던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한 나절 동안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늘 그런 식으로 문제나 어려움을 풀었다. 꼭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만 대화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내와 나는 대화를 정말 많이 한다. 카톡도 정말 많이 한다. ㅎㅎ 그만해야겠다.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서.

아무튼 대화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긴 학창시절에 셰어하우스를 했으면 오히려 매일 같이 너무 붙어 있어서 지금처럼 좋은 관계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서 모두 주중에는 각자 회사에 가니까, 이렇게 느슨하게 연결된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p.79)

 

나의 대학 1학년 셰어하우스가 실패로 끝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책에 설명되어 있었다. 다들 학생이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았다. 동아리 방에서 매일 모여 있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농구하고 같이 목욕탕가고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다 보니 너무 거슬리는 것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형들 중 한명이라도 박사를 준비하고 있었다거나 조기 졸업해 직장인이 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6개월이 아닌 1년, 그보다 더 긴 시간 형들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느슨하게 연결된’ 이것이 성공적인 셰어하우스를 유지하는 가장 큰 비결이다.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를 단선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일본 사람들이 유별나게 개인주의인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유별나게 우리(함께 모여, 함께 하자, 함께 뭐뭐뭐 같은)주의인 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만약 대학 1학년 때 함께 살다 실패한 형들과 졸업 후 결혼 전 함께 모여 살았다면 학생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독립되고 각자 삶의 영역이 있었다면 더 나은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 다들 결혼한 후에 누가 이것을 제안한다면 넙죽 받아들이고 좋아할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니다. 크크크.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 만들기는 불가능한가?” (p.154)

 

책에는 셰어하우스의 여러 가지 형태를 소개한다. 아무래도 나는 결혼한 상태이다 보니 독식 셰어하우스보다는 책의 뒷부분에 소개된 ‘마을 공동체’형태의 셰어하우스에 더 관심이 갔다. 사실 친한 지인 몇 가정과 함께 진지하게 ‘공동체 삶’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살고 있는 큰 도시의 삶이 아니라 농촌 지역으로 이주해 사는 삶이다. 구체화 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임에서 이런 논의를 할 때 너무 행복하다. 이미 그런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기도 하고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듣기도 했다.

나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책에서 소개된 것처럼 도시가 아니라 농촌지역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지만 집의 형태와 마을 공동체 운영의 모습은 나와 지인들이 추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책에 소개된 셰어하우스 중 하나가 같은 건물 안에서 각 가정의 삶이 완전히 독립된 채 공동생활을 하는 형태가 소개되는데, 바로 그것이다. 함께 살지만 각자 사는 형태다. 이런 형태라면 ‘마을 공동체’, ‘공동체 삶’은 가능하다고 본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했는데, 공동체로 살다보면 당연히 갈등과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대화해야 한다.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충분한 관계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함께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대화하는 지인들과는 일정 정도의 합의가 되어 있다. ‘충분히 친해지고 충분히 독립된 후 착수하자.’ 라는 정도.

 

“함께 살아서 좋아”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 살아서 좋아”도 성립해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외롭고 불행하고 싫어서 함께 산다면 비극의 씨앗을 심은 채로 출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충분히 독립된 “함께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언제쯤 나와 지인들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체 삶’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꼭 해보고 싶다. 차근차근 준비해 실수하지 않도록 더 깊은 대화와 논의가 필요하다.

혹시 아나? 10년 후 쯤. 내가 「함께 사니 너무 좋아」라는 책을 쓰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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