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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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한 잔 하시고 써 보세요.”

 

라고 글이 잘 안 써진다는 블로그 이웃께 농 섞인 댓글을 달았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조차 없는 잡지의 귀퉁이에서 본 것이다. “나는 글이 잘 안써질때 술을 마셔요. 술기운으로 글을 쓰는 거죠.” 나는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은 없다. 한 번 시도해 볼까 생각한 적은 있었는데, 워낙 술에 지고 들어가는 주량이라 몸속에 알코올이 일정 정도 이상 들어갈라 치면 일단 머리부터 지끈거려 오는 통에 글쓰기는 무슨! 턱도 없다. 그런데도 술을 한 잔 하시고 써 보라고 얘기한 건,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어서이다. 내가 무슨 작가도 아니고 연재를 하는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글을 써야 얼마나 쓰겠냐마는 나름 인터넷 서점 블로그로 당당히 활동 중이고 파리 날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름 색깔 있는 글을 쓴다고 자뻑한 채 살고 있다.

 

 

이 책 「고종석의 문장」을 읽기 전까지 고종석씨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예전에 그의 책 「서얼단상」을 읽었는데, 대구에 살고 있던 대학생의 눈에 그 책은 충격이었다. 전라도 사람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새드무비 같았다. 일정 기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왕조시대부터 현재까지 그런 폭력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다. 이후 그의 이름을 잊고 있다가 트위터 팔로우를 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을 읽은 지 십 수 년이 지난 채 트윗만으로 그를 판단하게 되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로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척 하는 아저씨 같았다. 트윗상의 용어로 ‘썩개(썩은 개그)’라는 말이 있는데, ‘썩개’를 자주 날리시는데 나는 전혀 재미가 없고 공감도 되지 않았다. ‘이 아저씨 뭐야~ 재미도 없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그런데 계속 그를 팔로우 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절필선언>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인터뷰에서 “트위터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유명한 작가이던 사람이 느닷없이 절필선언을 한 것에 과도한 정치적 명분을 입히고 싶었던 나는 이후 그의 트위터를 주목했다. 그런데 맨날 ‘썩개’나 날리는 통에 ‘싱거운 사람’으로 치부하고는 했다. 그의 인터뷰대로 트위터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글과 생각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글과 생각은 ‘별 실 없는 사람’이라는 내 머릿속 편견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마르크스하고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서문 첫 문장은 다 아시지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렇게 인상적인 말이 없습니다.” (p.47)

 

 

이 책은 글쓰기 강좌를 엮었다. 글이라고는 하나 말에 가까운 글이다. 실제 그의 강연 내용은 그대로 녹취한 것인지 편집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나는 구어체의 문장이 좋았다. 실제로 자리에 앉아 강연을 듣는 것처럼 가까웠다.

 

글쓰기 강좌인 만큼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혼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었다. 내 글이야 대부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인데, 이 블로그질도 3년 정도 하다 보니 무림의 고수가 너무 많은 것이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써도 읽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여간 힘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제목을 특이하게 쓰자.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인상에 남도록 쓰자. 라고 생각했다. 나도 다른 블로그 이웃들의 글을 읽을 때 솔직히 띄엄띄엄 읽을 때가 많다. 글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을 훑을 때도 많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개연성이 많으니, 인상적으로 쓰고 기억에 남도록 쓰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생각이 글로 이어지면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없는 터. 노력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는 부분인데, 책에서 유명한 작가가 이 부분을 언급하니 괜스레 우쭐해진다. ‘뭐, 나는 이미 그 부분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입 꼬리도 살포시 올라간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이 혁명으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숨이 확 막히지 않습니까?” (p.48)

 

 

 

맞다. 숨이 막힌다. 감동받아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해서? 아니다.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나?’이다.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 형님들이야 역사를 그야말로 몸으로 아로새긴 대단한 분들이지만, 공산당 선언을 쓴 나이가 서른·스물여덟이다. 나는 저 형님들 나이를 훌쩍 하고도 더 많이 넘긴지 오래인데 왜 나는 저렇게 쓸 수 없을까? 코웃음들 치지 마시라. 원래 배포와 배짱은 커야 어디 가서 뻥이라도 칠 수 있는 법. 나는 감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형님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다. 최소한 죽기 전에라도 한 번 써보고 싶다.

고종석씨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강조한다. 「이방인」의 첫 문장도 언급한다. 「설국」의 첫 문장도 대단하다. 나도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글쓰기 연습’이다. 글쓰기는 타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고난 것이라면 사람들 불러 모아 글쓰기 강좌를 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이런 책을 낸다면 더더욱 큰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나도 마르크스, 엥겔스, 카뮈, 야스나리 형님들처럼 절대로 잊히지 않을 첫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씨가 후보로 뽑히기를 바란다.” <자유의 무늬>, 35쪽

“앞서 이야기했듯, ‘개인적으로’는 삭제하세요. 필요 없는 말입니다. ‘뽑히기를’에서 ‘를’이 필요할까요? 격조사라 할지라도, 그게 없이도 말이 통하면 삭제하세요. ‘후보로 뽑히기 바란다.’ 좋은 문장은 간결한 문장입니다. 물론 간결함 때문에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만, 좋은 문장의 특징 하나는 간결함입니다.” (p.145)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고종석씨가 자신의 글과 문장을 가지고 강연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 글과 문장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기도, 칭찬하기도 하는 능수능란함에 박수를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이전에 내가 써 놓았던 리뷰 하나를 출력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고종석씨의 조언에 기초해 내 글에 빨간 펜을 그으며 퇴고를 해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A4용지 곳곳에 빨간 펜이 가득해 흡사 부적 같아 보였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내놓을 수 없어 포기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바로 저렇게 쓰고 있다.’라는 번쩍거리는 깨달음이 줄곧 이어졌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강렬함보다 개인적으로 더 강조하는 바는 문장의 간결함이다. 김훈과 한창훈, 마루아먀 겐지와 유시민씨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추장스럽고 난잡하게 늘어놓는 단어와 단락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내가 쓸 때는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간결함. 간단함.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지 않으면서 호흡이 짧은’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

쓰는 사람도 경쾌하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보는 사람도 숨차지 않고 인상 깊게 남을 수 있는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을 써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인정받는 글쟁이라고 하는 고종석씨도 자신의 이미 책으로 출간한 문장을 가지고 가차 없이 비판하는 것을 보니 뭐,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배짱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글에서 접속부사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접속부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엔 빼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글이 간결해 보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떤 긴장감이 생깁니다.” (p.117)

 

 

접속부사. 하… 저자가 이미 내 글을 샅샅이 살펴본 것만 같았다. 사우나에서 발가벗고 마주한 느낌이다. 책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내 글을 톺아보니 접속부사 천지였다. 그래서, 그리고, 그렇지만, 그러나 등등. 저자는 긍정접속부사는 되도록 배제하고 부정접속부사는 되도록 최소화하라고 강조하는 데, 나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리지 않고 마치 접속부사가 글의 생기를 불어 넣는 것으로 착각하고 도배질을 하고 있었다. 내 글이 총총히 들어 찬 A4 몇 장을 무람없이 찢어발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배질된 접속부사 때문이다. 크헉! 단락의 초입부터 등장하는 접속부사를 마다 빨간색을 칠하다 보니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 서평을 쓰면서도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경계하다 보니 자연스레 들어가도 좋을 접속부사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닌 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일부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30년 동안의 삼김시대’라는 말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 관심은 일부 언론이 사용하는 ‘30년 동안의 삼김시대’라는 말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데 있다.” (p.192)

 

 

자신의 책 <자유의 무늬>를 재차 퇴고하면서, 정리된 문장은 깔끔 그 자체다. 아니 왜 처음부터 그렇게 쓰지 않았소. 라고 묻는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 될 것이고, 이렇게 대중 강연에서 자기 글을 드러내놓고 칼질하는 자체가 대단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문장이 특별히 잘못되었거나 의미전달에서 뒤 문장과 큰 차이가 없지만 글이 주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또 고백을 하건대, 나는 한 번 쓴 글은 다시 퇴고를 잘 하지 않는다. 무슨 리뷰대회 같은 것을 위해 쓸 때도 그렇다. 귀찮기도 하지만 다시 내 글을 자세히 살핀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퇴고만큼은 꼭 해야겠다 싶다. 문서프로그램에서 맞춤법 점검하는 것조차 귀찮아 하지만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몇이라도 된다면 그들을 위해서 퇴고를 해야 할 것 같다. 뭐, 퇴고 하지 않아도 수상쯤은 가끔 하기도 하지만 뭐, 크흐흠……

 

 

“빨갛다, 뻘겋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빨그스레하다. 뻘그스레하다. 발갛다. 벌겋다. 발그레하다. 벌그레하다. 붉다. 불그스레하다. 발그스름하다. 벌그스름하다. 빨그스름하다. 뻘그스름하다. 불그무레하다. 불그죽죽하다.” (p.110)

“‘꿈틀꿈틀’이나 ‘너울너울’을 외국어로 어떻게 옮길 수 있겠습니까?...사전을 통해서 능동적으로 단어들을 익히기도 해야 합니다. 한국어의 의태어/의성어들, 색채어휘에 관심을 쏟으십시오.” (p.111)

 

 

한국어에 풍부한 색채어휘와 의태어/의성어는 굳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지의 사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만큼 글에서는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오해 때문인 것 같다. 색채어희와 의태어/의성어가 많으면 글의 수준이 낮아 보인다거나, 난잡해 보인다는 오해. 나만 그런가? 소설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블로그에 서평을쓸때도 그렇다. 하지만 글쓰기 연습 차원에서라도 한국어를 익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사전을 본 지가 어언 20년 가까이 된다. 유의어/반의어 사전 같은 것은 사야할 필요를 못 느꼈다. 뭐, 혹시 아나? 내가 10년 쯤 후에 소설을 쓰겠다고 박박거리고 있을지… 그때를 위해 색채어휘와 의태어/의성어 공부는 좀 해두는 편이 좋겠다.

 

또 하나 내가 개인적으로 강조하는 글쓰기는 ‘재미’다. 소설이든, 서평이든, 칼럼이든 뭐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껄껄 넘어가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히히 입 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것까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본다. 나도 재미없는 글을 보는 것은 곤욕이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내 생각은 ‘재미’다. 곧 서평을 쓰게 될 김현진의 「뜨거운 안녕」이 딱 그랬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을 기억해 내면서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드는 힘. 그것이 좋은 글과 문장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대학 때 끄적인 글들을 가끔 들여다보면 내가 쓴 것을 읽으면서 혼자 좋아서 낄낄거리는데…… 세상풍파에 찌들다 보니 날만 서 있다. 거칠기만 하다.

 

그래도 뭐, 앞으로 더 잘 쓰겠지.

고종석씨보다 더 잘 쓸게 될 줄 누가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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