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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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내가 아닌 내가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닌 가 상상해 본다. 혹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은 아닌 가 상상해보기도 한다. 실제로 다중인격 같은 장애가 존재하기도 하고 이것은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다.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다중인격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군 시절 만난 사람인데, 내 소대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대장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가 병력관리다. 적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일대일 면담을 해서 심경의 변화에서부터 집안 사정, 여자 친구와의 관계까지 최대한 자세하게 파악해야 했다. 전문적으로 심리나 상담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대일 관계에서 더 친근해지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것 같다. 군에서도 그것을 요구했던 것 같고. 아무튼 평소 말이 별로 없고 어눌하며 선임병들에게 여러 가지 지적을 받아오던 이병을 상담했는데, 그 친구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자기 안에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군 생활을 하는 자신도 있고 여전히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신도 있으며 또 다른 삶을 사는 자신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고 내쫓을 수 있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아연실색했다. 국가의 징집시스템이나 병무청의 신체검사가 조금만 더 전문적이고 세부적이었다면 그 친구는 현역병으로 입대하지 않았을 텐데, 일단 몸이 건강하다 보니 소초 근무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상급 부대에 보고하고 전문가의 심층 상담을 받은 뒤 병원에도 입원하고 꾸준하게 약도 복용했다. 보직도 큰 스트레스 받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몇몇 병사들은 최고의 연기자라며 하나에서 열까지 연기라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나와 단 둘이 상담할 때의 그 모습과 눈빛은 전혀 거짓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 더 리얼하고 무서웠다. 나도 전역하고 나중에서야 찾아보니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 가끔 군 생활을 떠올리면 그 친구가 꼭 생각난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아직도 여러 명의 자신과 살고 있는지 말이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어.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있어. 뭔가에 휘말려 들어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고 싶어 한다고. 자신의 인생에서 유리되려고 하고 있어...” (p.165)

 

주인공 신견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설탐정은 놀리듯 신견의 삶을 간섭한다. 언뜻 걱정해 주는 것 같지만 걱정이 아니고 조롱이다. 평범하던 신견의 삶에 사나에가 들어오면서 급류를 만난 것처럼 휘말려 들어간다. 신견 자신의 의지도 아니었고 사나에의 의도라는 것을 뒤에 알게 되지만 개의치 않는다. 더군다나 신견 자신은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범하다니! 멍청한.

 

 

“너의 침묵을, 오른쪽 허벅지를 긁어대는 네 버릇을, 오른쪽 눈만 질끈 감는 습관적인 틱을, 새어머니의 속옷을 훔쳐내는 짓을, 같은 반 친구 유리짱을 껴안아버린 실수를.” (p.10)

“뭔가 재미있는 거 해보자. 나는 생각나지 않으니까 네가 충고 좀 해줘.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어렸을 때처럼.” (p.139)

 

작가가 묘사한 신견의 다중인격을 읽으며 앞부분에서 언급한 소대원이 떠올랐다. 책의 묘사와는 전혀 달랐던 소대원의 고백이었지만 ‘그때 그 녀석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 이런 일들이 머릿속에서 일어났겠구나.’ 생각하니,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오늘 일 같이 생생하다. 어쩌면 사나에에게 갑자기, 급속도로 빠져든 자기 자신이 R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수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범행 현장에는 사체를 장식하듯이 무수한 종이학이 흩어져 있었다. 특히 아내 유리의 사체는 종이학에 파묻혀 있었다. 그 숫자가 도합 삼백십이 개였다고 한다.” (p.39)

 

이제는 한국에서도 워낙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서 웬만한 살인 사건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일본에서 예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들 중에 벽에 시체를 넣고 콘크리트로 겉을 다시 발라버린 사건이 기억난다. 그 장면을 본 것도 아니고 다른 책을 읽다가 그 사건이 소개되어 인터넷으로 찾아본 것뿐인데, 이후 며칠 동안 잠을 쉽게 들지 못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을 멈출 수 없었다. 대부분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서 이후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에서 묘사되는 ‘종이학 사건’은 끔직하다. 일가족 중 딸만 살아남고 부모와 오빠가 죽은 사건이다. 내용만 전개해도 뭔가 심상치 않고 꿍꿍이가 있는 듯 없는 듯, 찝찝한 사건이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사나에도 ‘종이학사건’ 이후 생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신견이 어려서 만난 R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신견과 사나에는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안했지만 그 불안함만큼 뜨겁게 타오른다. 서로의 불안함과 상처와 몸과 성욕을 한 데 뭉뚱그려 뒤엉킨다.

 

 

“당신에게 살해되면, 내 죄는 사라져.” (p.150)

“.....나는 범죄자조차 되지 못해.”

“그렇건만 내면에는 R이 계속 존재한다는 모순. 해방도 못하면서 아마 앞으로도 내내 R이 평생 존재하리라는 모순.” (p.182)

 

사나에는 신견과의 섹스 도중 자신을 죽여줄 것을 여러 번 요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견을 속여 자신을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황폐화된 피해자로 코스프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악의적이다. 차라리 신견과 뒤엉킨 그 순간은 솔직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듭된 사나에의 요구에 신견은 차라리 R을 불러내 살인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사나에의 정신과 몸을 보며 성욕을 불태운다. 처절하고 너저분하지만 사실적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p.66)

“창 건너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p.80)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p.102)

 

사이렌 소리는 불안하다. 차를 타고 갈 때도, 집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불안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닌 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과 같은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인문, 사회분야 책을 읽어도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소설에서는 불안함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주인공 신견도, 사나에도 불안하다. 그 둘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도 하나같이 불안하다. 그들이 모여 사는 직장과 가정, 사회도 불안하다.

모두가 불안하다. 정규직이다 아니다. 중산층이다 아니다. 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불안하다. 돈을 발에 채일 정도로 가져보지 못해 그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불안한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들도 분명 불안하다. 대통령도 불안하고 국회의원도 불안하고 재벌 회장도 불안하다. 그것이 현실이다. 리얼이다.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이제는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나 자신의 악덕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설령 최악의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어찌 됐건, 우리는 이미 떨어질 수 없다. 뭔가 불편한 진실이 만일 또 있다고 해도, 이제는 잊어버리면 된다.” (p.245)

 

불안과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간다. 모두들 생채기가 난 채 일상에 파묻힌다. ‘종이학 사건’을 둘러싼 실재적 진실에 거의 다다른 신견은 포기해 버린다. 그 실재적 진실을 파헤친다고 해서 자신의 삶, 그 어떤 것도 더 좋아지거나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기밀이 해제되는 비밀문서처럼 그렇게 용인될 수 없는 비밀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비밀 하나쯤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견이 사나에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 보다 차라리 사나에와 한 몸으로 뒤엉켜 버린 것을 택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비밀을 간직하는 것을 택한 나와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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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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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였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에는 꼭 그 학교만의 전설이 있다. 주로 그 전설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밤 12시가 되면 운동장에 있는 200백년도 더 넘었다는 회나무가 거대한 괴물로 변하고 학교 건물 정중앙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살아 움직여 괴물로 변한 회나무와 한판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들. 그때만 해도 운동장에 있는 야외화장실은 푸세식이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공이 그 근처로 가면 누가 가서 공을 가져올 것인지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할 정도로, 냄새만으로도 공포였던 그 화장실에서도 밤 12시가 되면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푸세식 화장실 저 밑바닥에서 하루 종일 웅크리고 있던 귀신들이 뛰쳐나와 온 운동장을 활보한다는 이야기들. 특이한 것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에도 이런 괴담이 떠돌았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학교에도 이와 비슷한 괴담이 떠돌았다는 것이다. 전교생이 알고 있는 괴담들이었지만 그 어떤 학생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뭐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이 책 「악령」의 주 무대, KM문화예고는 명문 사립고다. 전교생이 학교에서 기숙하며 공부하는 학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턱에 위치한 학교다.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으스스한 숲을 지나야 한다. 학교는 기괴한 모습이고 교사들과 학생들도 기괴하다.

작가가 설정한 학교의 모습 중 가장 특이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교장을 제외한 모든 교사가 여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남고를 다녔는데, 그 학교도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사립고였다. 지역 1등 고등학교가 되지 못하는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긴 이사장과 교장이 부득불 1등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도 아이들을 괴롭히고 청소년 학대로 여겨지는 구타와 강요된 학습이 만연하던 곳. 아무리 남고라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는 여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다못해 행정실 직원들도 죄다 여직원들. 학교에서 여자를 볼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식당뿐이었다. 급식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들과 매점 직원 누나.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가 남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인적으로는 아주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닌 학교가 그랬다. 모두 남자들만 모여 있다 보니 이게 뭐 이곳이 군댄지, 학굔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교사와 학생간 수직적 위계관계가 단단하다 보니 학년간 위계관계도 똑같이 따라갔다. 학교 건물 내·외부에서 1학년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 날아차기를 당하거나 뒤통수를 가격당하거나 2,3학년 교실로 끌려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점심을 먹지도 않고 농구코트를 먼저 맡기 위해 달려가더라도 천천히 먹을 밥 다 먹고 이 쑤시며 2,3학년들이 오면 비켜주어야 했다. 군대와 똑같았다. 1,2학년 때 그만큼 당했으니 3학년이 되면 자기가 당했던 그대로 1,2학년을 대했다. 내 학창시절 중 고등학교 때가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불만도 많고 숨 막히기도 했다.

 

태인은 불량학생이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지만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이 학교까지 흘러들어왔다. 이 학교는 도시에서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명문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태인이 전학 올 수 없는 학교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다. 안되는 게 없는 한국이니까.

태인은 전학 온 첫날부터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린다. 학교 입구에 빽빽하게 늘어 선 나무 저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녀라고 불리는 학생주임은 로봇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수지와 지원을 만나고 자신의 기숙사 방 침대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지내던 은호의 노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은호가 죽었는지 시종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불길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넌 그 아이 대신이니까”

“그 아이 방, 침대, 그 아이의 자리가 비었을 테니까.” (p.58)

 

은호의 방, 침대, 은호의 자리가 이제는 태인의 자리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하기에 참아야 했다. 이전 학교에서는 당장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이 학교에서는 참아야 했다.

 

 

“학교의 비밀이 존재하든 안 하든 그것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즐겁게 학교생활을, 그리고 클럽 활동을 할 수 있을 거잖아?” (p.174)

 

태인은 이니그마라는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학교에서 정한 인원수를 유지해야 클럽을 유지할 수 있고 그들만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데, 원래 멤버였던 은호의 자리가 없어지면서 이니그마는 클럽당 배당되는 방을 비워야 할 판이었다. 그때 태인이 나타났다.

이니그마는 학교의 비밀을 밝히려 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밝혀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그들은 학교의 비밀에 다가간다. 은호가 없어지기 전 자신의 노트에 남겼던 믿기 힘든 SF 호러 판타지 기록은 태인과 이니그마를 움직였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 언제나 그렇듯이 학교의 비밀에 더 다가가 은호의 의문스러운 실종과 그 이전까지 있었던 다른 학생들에 대한 실종의 이유를 밝혀내려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교장의 면담에 의해 완전히 바뀌어 버리거나 애초부터 학교의 비밀을 낱낱이 밝히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면 가장 발달하는 것 중 하나가 상상력이거든.” (p.90)

지원

“사람을 겁주고, 사람을 상처 주고, 사람을 죽이는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야.” (p.125)

“나도 알아.”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X나 용감해 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다. 오달수가 최민식에게 린치를 가하면서 하는 대사인데,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삶이 힘들고 현실이 고달플 때마다 저 대사를 되뇌게 된다. 어느새 습관처럼 돼 버린 대사를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뇌까렸다.

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태인이 들어간 비밀스러운 클럽, 이니그마가 학교의 비밀 속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예의 긴장감도 감돌았다.

그. 런. 데!

 

 

“뭐라고 불러도 좋아. 하지만 곧 우리 식구가 될 거니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더 좋겠지. 우린 여우의 후손들이야.” (p.268)

 

학교의 비밀이 여우의 후손들이라니?

좀 황당했다. 좀 더 현실적인 소재를 차용했더라면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었겠지만 느닷없이 여유가 나오고 여우의 정령이 나오고 태인이 처음 전학오던 날부터 숲속에서 지켜보던 괴물의 정체가 마녀 학주의 아들이라니... 갑자기 B급 만화가 되어버렸다.

 

 

“인간 세상은 이미 썩어 있어. 우리들이 그나마 정화시키고 변화시키고 있다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희생은 있었지만 불가피했어. 희생 없는 변화나 발전은 있을 수 없으니까.” (p.273)

 

썩어 문드러져 희망이 없어진 인간 세상을 완전히 갈아엎기 위해 여우의 후손들은 그들 나름대로 주요한 전략을 만들었다.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더 나아가서 여우의 후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명문 사립고이니 만큼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전문가가 되어 사회 곳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지만 그렇게 조금씩 사회를 정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네 아버지도 우리와 같은 종족이기 때문이야!” (p.275)

 

태인의 아버지도 여우의 후손이라 한다. 태인은 믿을 수 없었다. 사건이 모두 끝난 후, 병실에 입원한 태인을 아버지가 찾아온다. 태인은 아버지에게 여우의 후손이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황당해하며 아니라고 말하고, 엄마의 투신을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던 태인에게 당시의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한낱 낮잠의 꿈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기회를 얻은 태인이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과정에서 꾼 거대한 악몽 같기도 하고, 아들에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긴 태인 아버지의 시치미가 가증스럽기도 하고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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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주의 100년>














지난 대선과 그 전 총선에서 화두가 되었던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그 전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무상급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경제민주화, 복지, 무상 이라고 하면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 내지는 좌파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레드 콤플렉스가 아직도 유효한 한국에서 좌파, 사회주의 같은 것은 입에 쉽게 담기 어렵다. 오죽하면 아직도 빨갱이, 친노종북, 간첩 이런 것들이 이 사회의 절반이상 되는 사람들의 의식을 주무르고 있을까... 

사회주의 하면 유럽이 딱 떠오른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키햐~ 이름만 들어도 가서 살고 싶은 나라들이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수십 년 전부터 사회민주주의가 정착해 차근차근 경제민주화와 복지시스템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사회주의 체제의 힘이라고 축약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처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그대로 맞은 나라와는 다른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참 웃긴 것은 사회주의, 복지, 무상 이런 말하면 좌파다 빨갱이다 뭐다 하면서 북유럽은 좋아라 한다. 

도널드 서순은 이미 거시 문화/역사를 다루는 마법사가 되었다. 이 책을 보는 것이 힘든 일이겠지만 한번 유럽 사회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를 톺아보는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이미지로만 그려보는 유럽의 현재가 어떤 점철된 역사의 결과물인지 궁금하다.





2. <유대인의 역사>














거시적 담론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폴 존슨의 책이다. 이미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에 즈음해 재출간되었다. 사실 폴 존슨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명성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작가다.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은 전 세계인들의 공분을 일으켰지만 시오니즘의 근본이유가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연유된 것인지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창 기독교 서적을 읽던 시절,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이라는 위대한 랍비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성경을 유대교의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었는데, 나는 내 종교인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완전히 다른 그의 관점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관점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위대한 랍비인 그의 가르침과 또 완전히 다른 것이 현재의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여전히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구약시대에 머물러 있다.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은 신을 대리한 그들의 노획물에 지나지 않는다. 뭐, 여기에는 더 복잡한 미국의 펜타곤과 글로벌 군산복합체와의 유착관계를 따져야 겠지만 그것은 차치한다.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단지 몇 번의 인터넷 검색과 자극적인 음모론에 휘말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별 관심 없는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읽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3.<프리덤 서머>














미국은 역시 미국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전세계인들이 열광했다. 처음으로 흑인이 전세계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역대 그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소탈하고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유색인종 출신 대통령의 탄생에 거는 기대는 엄청났다. 하지만 미국은 역시 미국이고, 미국 대통령은 역시 미국 대통령이다. 얼마 전 오바마는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승인했고 유럽의 동맹국들에게 참전을 요청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IS는 하루가 멀다하고 외신기자들을 처형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는 얼마 전 흑인 시위가 고조되었다. 흑인 청소년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진압이 문제가 되었다. 금세기 가장 발전되고 힘이 센 미국에서 여전히 인종문제가 뇌관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반세기 전 프리덤 서머를 위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하고 KKK단의 본거지인 미시시피로 향한 버스와 젊은이들이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계획하지 못했던 일을 젊은이들이 저질렀다. 자유로운 민주국가인 줄 알았던 1960년대 미국에서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합리적이다는 미국 헌법조차 그들을 인종차별의 벽에서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학생들은 직접 몸으로 부딪힌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몇 달 간의 프리덤 서머는 제목과 소재 자체만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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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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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매년 100권씩 책을 읽었다. 올해는 50권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책을 못 읽으니 서평을 쓸 수가 없다. 출판사로부터 날아오는 책은 쌓여만 가는데, 읽지를 못하니 쓸 수가 없다. 운영하는 블로그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방문객에 비해 댓글이 적게 달리기로 유명한 내 블로그에도 귀한 이웃님들이 오셔서 댓글을 남겨주시는데, 그에 대한 대답도 못하고 있는 판이다. 모든 것은 사랑하는 딸 때문이다. 흐흐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한 딸이다. 결혼한 지 만 4년 만에 생긴 아이다. 10년을 연애했지만 결혼은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이었다. 아내가 임신하고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니, ‘더 놀걸 그랬어~’라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 어떤 부부보다 더 많이 여행 다니고 데이트하고, 이벤트하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후회는 아이가 태어난 뒤 현실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집으로와 장모님이 조리를 도와 주셨다. 두 달 정도 조리를 하시다 보니 오랜 지병이 다시 나타났고 급기야 빈혈 때문에 큰 일이 날 뻔 하기도 하셨다. 장모님이 떠난 자리는 오롯이 내 차지였다. 평소 잘 하지 않던 기도도 초음파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마다, 특히 출산일에는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다. 나는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꼭 빼먹지 않고 하는 기도가 있었다. ‘제발!! 제 성격은 닮지 말고, 엄마 성격 닮게 해주세요~!!!!!’

 

내 성격은 음... 별로다. 정 많고, 강한 척 하지만 뒤로는 마음이 여리기도 하고, 내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융통성 있고 착하지만(특히 아내님께) 일과 관련된 관계에 있어서는 칼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무책임 한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 불합리한 관행이나 명령에는 각을 세운다. 분명히 자기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끼어들기를 했음에도 창문을 내려 육두문자를 날리면 가만있지 않고 되받아 쳐 주거나 조용히 내리시라고 권면한다. 내가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나와는 정반대인 엄마의 착하고 고운 심성과 성격을 닮기를 고대하고 기도했는데!!!!! 저런~ 딸아이는 나를 닮아버렸다. 대부분의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아기띠에서는 트위스트를 추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낮잠을 30분 이상 자는 법이 없다. 이제 목을 가누고 손에 힘이 들어가니 이것저것 만지려 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으면 8단 고음 돌고래 소리를 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2-3층 아래에서도 딸아이의 고주파를 들을 수 있다. 낮잠을 도통 자지 않으니 젖을 물리면 잔다. 젖을 충분히 먹지 않으니 잠을 충분히 잘 수 없고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내 새끼고 이제껏 매일 저랬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에 있어서 최대한 아내를 돕고, 안타깝게 내 성격을 빼닮은 딸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한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선의였다. 한 달 전부터는 아예 내가 데리고 잔다. 새벽에 깨면 아내는 젖을 물리러 나와야 하니, 아예 내가 데리고 자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 불과 4월 중순까지만 해도 퇴근하면 씻고 아내와 대화한 후,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블로그를 할 수 있었다. 일찍 잠든 날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공기와 함께 책을 읽었다. 일을 하다가 짬이 나도 책을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다. 월차를 내는 날 목욕탕에 가고 이발을 한다. 6월 이후부터 이발을 할 때마다 꾸벅꾸벅 존다. 머리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몇 번을 깨우면서 이발을 해주신다. 일을 하다가 짬이 나면 엎드려 잔다. 퇴근하면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100일을 전후해서 조금씩 시간이 확보되기는 하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블로그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목을 가누고 새벽에 두 번 정도 밖에 깨지 않는 것이 감격적이지만 이가 나고 뒤집기가 완전해 지면 또 다시 새벽에 잠을 몇 배로 설쳐야 한다니...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 온다.

헤르만 헤세 형님은 참 좋겠다. 이 책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싶었다. 그런데 중간으로 갈수록, 뒤로 갈수록 지금의 내 모습과 오버랩 됐다. 원래 눈이 커 짙게 드리워져 있던 다크써클은 이제 뺨을 덮는 지경이다. 새벽에 몇 번씩 깨는 탓에 얼굴을 푸석하기 이를 데 없다. 눈은 흐릿하고 요사이 기억력조차 감퇴되는 듯하다. 무! 엇! 보! 다!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책은 ‘삶의 낙이자 활력’이었다. 취미가 아니라 특기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배고픈 것도 잊고, 잠오는 것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세계적인 문호, 헤세 형님의 삶이 아주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죽 답답하고 귀찮았으면’ 싶었다.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줄기차게 강변했던 헤세는 세 번이나 결혼식을 올렸다.” (p.8)

 

<마리아>

“1904년 여름, 헤세는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녀는 시인 헤세보다 아홉 살이나 더 많았다.” (p.29)

“헤세의 변덕 때문에 쉽지 않았던 결혼 생활은 아이 때문에 한층 더 힘들어졌다.” (p.65)

“그녀는 헤세의 변덕과 화증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제 아내는 이달 말쯤 아이를 출산할 예정입니다. 출산이 순조롭게 끝나면 저는 지체 없이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p.107)

“헤세가 직면한 문제는 언제나 똑같았다. 은둔자적 평화를 추구하는 그에게 가족은 창작과 사유를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p.148)

<루트>

“루트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자유로운 관계 말입니다.” (p.271)

“루트는 친구도 동료도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 남편이었다.” (p.284)

“루트는 헤세가 찾아오기를 바랐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p.315)

“헤세는 단 한 번도 루트를 문병하지 않았다.”

<니논>

“니논은 헤세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자 했다. 그녀는 ‘나의 불쌍한 아이’ 헤세를 위해 어머니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p.335)

“헤세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불임수술을 받기도 한 것이다. 니논에게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결정한 일이었다.” (p.371)

“헤세는 ‘평온하고 소박한 삶이 완전히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결혼을 꺼렸다.” (p.407)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강변했던 헤세는 세 번이나 결혼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고도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이야~~~ 상남자다~!!!!

이달 말쯤 아이가 태어나는데, 지체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남자.

두 번째 부인이 된 여인과 결혼은 하지만 자유로운 관계를 원하는 남자. 상 남자다.

그의 세 명의 부인은 마리아, 루트, 니논이다. 세 명 모두 진정한 헤세의 아내, 여자가 되고자 했다. 병약하고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헤세를 위해 참고 또 참는다. 맞춰주고 또 맞춰준다. 하지만 우리의 상남자 헤세 형님은 그 정도 따위 ‘아웃 오브 안중’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산다. 날씨가 추우면 아내와 아이들을 내버려 둔 채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아내가 엄청나게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문병 한번 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그가 이해되었다. 양육은 버겁고 힘든 일이다. 나 같은 아마추어 서평가에게도 그렇고 세계적인 대문호 헤세 형님에게도 그렇다. 나 같은 아마추어 글쟁이는 적극적으로다가 양육에 참여해야 한다. 아이 양육에 버금가는 만큼의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헤세 형님에게는 다르다. 골방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창작의 혼을 불사르면 엄청난 작품이 탄생한다. 공전의 히트를 치고 돈을 벌게 된다. 책에서도 여러 번 저택을 구입해 이사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때에 따라, 마음에 따라 여행을 다니는 것을 보면 꽤 돈을 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처사가 더 많다.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으면 참으면 될 것을,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했다. 그의 영혼의 친구 랑 박사에게 털어놓는 것처럼 자유롭고 싶고, 얽매이기 싫었다면 아예 독신으로 살았으면 될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본인이다.

 

 

“헤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졌다. 반면 니논은 점점 더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p.486)

 

늘그막에야 헤세는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졌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그렇기 마련이다. 왜 젊은 날 바람 바람 바람 하다가 마지막에 늙은 채 돌아가는 곳은 조강지처라 하지 않나. 물론, 헤세는 조강지처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부인 니논의 예민한 성격을 받아주며 노년을 보낸다. 첫 번째 부인인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손주들을 만나는 것이 노년의 큰 기쁨이었다고 하니, 헤세도 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헤세 사후, 아들들과 마지막 부인 니논 사이에서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는 것도 뭐 사람 사는 꼴이다. 대문호의 자식과 부인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며 헤세를 비난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록 좋아하는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고 블로그를 할 수 없지만 세상의 가장 귀한 딸아이와 노는 행복을 알게 되었다. 밤새 잠들지 않아 ‘내게 부성(父性)이 없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걱정할 정도로 딸아이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얼굴 전체 근육을 이용해 함박웃음을 보여주면 샤르르~ 모든 걱정도 짜증도 녹아 버린다. 목을 가누고 엎드려 장난감을 바라보고, 젖을 먹으며 발가락 전체를 오므려 힘을 주면, 작은 대야에 앉아 물장구를 치면, 잠들기 직전 특유의 이상한(?) 소리로 엄마 아빠의 배꼽을 잡으면 그깟 책 좀 못 읽고 글 좀 못 쓰고 블로그 좀 못해도 괜찮다. 출판사에 블랙리스트로 올라가면 그만이고, 글 실력이 뚝뚝 떨어지면 그만이고, 블로그는 안 하면 그만이니까.

흐흐흐(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안 웃는 것도 아니다)

 

늘그막에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꼰대질하지 않고 지금 자라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싶다. 함께 아이를 기르며 아내와 더 친근해지고, 아이와 마음을 같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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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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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상한 일이 참 많다.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 날이 더 많은 내게 하수상한 요즘은 버겁다.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자기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데, 그 앞에서는 그 목숨을 건 행위를 조롱하고 놀리는 작태가 벌어진다. 아무리 실명제가 도입되고 문화가 성숙했다 하더라도 인터넷은 점점 천박해져 간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무서운 도구로 변해가면서 말이다. 며칠 전 코레일과 관련된 비리로 체포직전에 있었던 국회의원은 동료 국회의원들에 의해 구제되었다. 세월호나 다른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각을 세우는 여당과 야당도 언젠가는 자신의 처지가 될지도 모르는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다. 정말 이상하고 골치 아프고 답답한 나날이다.

한 번씩 투표를 할 때마다 이런 이상하고 괴이하고 소름끼치게 골 때리는 세상을 경험한다. 도무지 아무런 도움이나 혜택이나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또다시 그 사람과 그 정당에 투표를 하는 사람들. 방송 같지도 않은 방송을 하루 종일 보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어김없이 갇혀 세상을 반쪽으로 보는 사람들.

여권 성향이 강하고 보수적인 지역에 살다보니 가끔씩 ‘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나 노인들은 물론이고 내 나이 또래나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에게서도 나는 멀다. 그들에게 어떤 특정한 DNA가 전해지는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학 이후로 이 지역에서 잘 모르는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한다는 것은 단번에 빨갱이 내지는 친노종북 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도박이어야 했다. 운 좋게도 내 염려가 현실이 된 적은 없었지만 느닷없이 튀어 나온 일장 연설로 술자리 분위기가 냉랭해진다거나 그전까지 존경하고 신뢰한다던 후배 놈의 눈빛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었다.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 자체가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받아들이기 편할 것 같다. 외떨어진 섬들이 각자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평화롭게 세상이 돌아가고 이치가 형성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공염불일 때가 많다. 그것이 요점이다.

 

이경자의 소설 「건너편 섬」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각각의 ‘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8편의 단편소설은 읽기 쉽다. 언젠가 한번은 매체를 통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거나 본 장면들이다. 몇 다리만 건너면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거의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작품 <언니를 놓치다>는 이산가족을 그렸다. 분단이 된지 60년이 넘은 현재보다 몇 해 전이 소설의 배경이 된다. 그나마 지금과 바로 이전 정권보다는 훨씬 남북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정권이 배경이다. 북으로 넘어간 세희언니를 만난 남쪽의 동생 명희는 언니와 헤어진 54년 속에 갇혀 살았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것.

 

“....위대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님의 은혜로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이 훈장들을 봐라.” (p.77)

“언니를 비웃고, 찰나에 버렸다. 마치 54년을 게워내듯 해일처럼 솟구치던 지독한 환멸의 감정도, 지금은 얼핏 우스울 지경이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p.87)

 

명희는 언니를 만나 비로소 54년을 게워낸다. 게워낸 토사물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아픔인지, 그리움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54년이 흘러 머리가 희끗해진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54년 전 소녀의 모습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명희는 언니를 통해 자유를 얻는다. 54년 전 작은 소녀의 눈 속에 머물던 언니의 모습도 내버릴 수 있었다. 생물학적 자매를 발견한 다음, 물리적 이별을 통해서야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언니는 상봉이 끝난 후 북으로 가고 자신은 남으로 간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55년, 56년이 흘러도 언니를 놓친 채 자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 자체가 슬픔이다. 혈육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한 채 산다는 것. 분단의 상황. 이산의 아픔. 며칠 후 추석을 맞아 경색된 남과 북의 관계를 탓하며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또다시 판문점으로, 통일전망대로 향할 것이다. 침침한 눈을 비벼 뜨며 북쪽 땅을 바라본 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작품 <박제된 슬픔>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언니를 놓치다>보다 더 기이한 ‘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좌제로 인해 한 사람과 그 가정이 얼마나 참혹하게 파괴되고 불행해 질 수 있는지를 다룬다. 장편이 아닌 만큼 인물의 심리와 가정사, 개인사가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단편이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케 한다. 책에서 그려진 것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연좌제의 피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석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다.” (p.114)

 

석은 갑자기 내려온 외삼촌 용립으로 인해 출셋길이 막힌다. 사랑하는 여인, 순옥과 결혼해 시험을 합격하고 농협에 취직하게 되지만 거기까지 였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지점장의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총알이었다. 별다를 것도 없었다. 북으로 넘어간 가족들의 생사여부와 소식을 듣고 용립 삼촌이 잘 지키라고 한 물건을 땅에 묻은 것뿐이었다. 다만, 북에서 내려왔으니 간첩인데, 신고하지 않고 모른 척 한 것이 죄가 될 뿐이었다. 어린 석에게, 결혼을 앞둔 석에게 이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별다른 소식이 없었기에 당연히 용립 삼촌이 북으로 잘 돌아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려올 때 그랬듯이 갑자기 체포된 채로 다시 찾아온 용립 삼촌으로 인해 할머니가 목을 매고, 석의 삶은 깡그리 부서진다. 그의 절규 같은 신음대로,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을 감당’하기에 개인은 너무 불쌍하다.

이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은 2014년 현재도 유효하다.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잠시만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비참하고 서글픈 현실에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류현진 경기나 기다렸다가 챙겨 보거나, 매일 펼쳐지는 프로야구에 집중하고, 시답잖은 잡담과 공상들로 머리와 시간을 채우고 싶다. 찾아듣던 팟캐스트 방송이나 챙겨보던 인터넷 기사들도 멀리하고 싶다. 모른 체하면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른 체한다고 해서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박제’할 수 없다면 마주해야 하는데, 일상이 버겁다.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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