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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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색, 계』에서는 탕웨이의 매력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은 남편이 된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를 보고 탕웨이의 팬이 되었다. 가을과 쓸쓸함이 테마가 된 영화 전체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은 오로지 여주인공 탕웨이였다. 흐트러진 머리, 루즈핏의 코트, 응시하는 듯 초점 없는 시선. 이후 한국에서 광고도 찍고 영화제에도 참석하는 등 국내 연예인 못지않은 행보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결혼!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영화 『황금시대』를 먼저 봤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런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던 영화였나 보다. 이미 지난 10월에 개봉을 했는데, 전혀 몰랐다. 좋아하던 배우 탕웨이가 주인공이었는데도 말이다.

책 「황금시대」는 중국의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이지만 전기와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네가 남자라면 분명히 대업을 이루었을 텐데.”

“왜 남자여야 하느냐고? 나는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들도 못 해내는 일을 꼭 하고 말 거야.” (p.39)

 

샤오홍을 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는 대장부시다. 어린 시절 기억만 떠올려 봐도 어머니는 늘 무언가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잔소리의 끈질김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계를 하면 계주 혹은 총무를 하셨고, 주위에는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계나 모임에서 갈등이 있을 때, 두 당사자가 어머니께 전화해 하소연을 하면 어머니가 중간에서 갈등을 해결하시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다소 소극적인 아버지의 기질과는 완전히 다른 어머니 기질이 아들로써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울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늘 생각했다. ‘우리 엄마!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말 뭘 해도 했을 분인데’

샤오홍도 그런 여성이었다. 20세기 초, 아직은 봉건적인 사고와 문화, 의식이 지배하던 중국 내륙에서 샤오홍과 같은 여성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마치 비단 손수건 안에 숨겨진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같아서 참으로 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토록 무조건적인 할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샤오홍의 어린 시절은 달콤한 기억일 수 있었던 것이다.” (p.27)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이고 모험심이 가득한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던 것 같다. 지방의 유지였지만 따스하고 인정이 많았던 샤오홍의 할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유약한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달랐다. 샤오홍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샤오홍을 지지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은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십자수를 하면서 어른들이 정해 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과 시어른을 봉양하는 것이 최고의 존재가치로 여겼다.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가지 못하는 인형과도 같은 삶이었다. 샤오홍은 그것이 싫었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인생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게 만들었고, 매료시켰고, 그래서 결국엔 모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지.” (p.271)

 

샤오홍은 자유연애자였다. 고향에서 도망치기 전 그녀의 부모는 괜찮은 집안의 총각과 결혼을 시키려 했다. 하지만 샤오홍은 결혼이라는 틀 자체가 싫었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 갇혀 남편과 아이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 시시하다고 생각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짧은 31년의 인생동안 사랑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고 말았다. 아이러니다. 샤오홍에게는 왕언지안과 샤오쥔, 두안무와 뤄빈지라는 남자들이 있었다. 짧은 인생동안 4명의 남자들과 사랑을 하게 된다. 모두 그녀의 사랑을 받고 그녀에게 사랑을 쏟았다. 뤄빈지는 샤오홍의 병상을 지킨 마지막 사람이었다는 점이 다른 세 남자와는 다른 점이지만 그도 샤오홍의 곁을 지키며 그녀와 사랑을 나눈 남자다.

 

“장팅쥐는 밖에서는 신사의 품격을 지닌 양 행동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폭군’으로 돌변하는 인물이었다. 샤오홍에 대한 단속도 매우 엄격하고 잔혹했다.” (p.15)

 

그녀가 자유연애를 꿈꾸고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여성으로 살기 원했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작품에서 표현된 것처럼 애정결핍을 보인 것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군’이었다. 어린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샤오홍의 진취적인 기상이 더 움텄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았어야 할 지극한 사랑은 부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샤오홍은 늘 곁에 남자를 둘 수밖에 없었다. 받은 사랑이 거의 없었고 자신만을 사랑하고 보호해주던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으니 늘 애정이 결핍된 상태였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몇 명의 남자와 주고받는 샤오홍의 사랑은 불안정하다. 아슬아슬하고 파편적이다. 사랑을 통해 샤오홍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받았던 충만함보다 그 사랑과의 실연을 통해 받은 상처가 늘 더 컸다.

이것이 오히려 그녀의 창작열을 부추긴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는 분명 문학적 성취가 대단했음에도 사람들 인식 속의 그녀는 항상 ‘샤오 부인’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샤오홍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 (p.141)

 

그녀는 어쨌든 유명한 여류작가가 된다. 전쟁 중에 유산과 입양을 하기도 하고, 짧은 31년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루쉰을 만나 대작가의 반열에 이른다. 책의 후반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루쉰과의 일화인데, 그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스승과 제자, 대가와 입문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이 전혀 없이 루쉰과 샤오홍은 친구가 된다. 주위에서나 문단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고 의심을 하기도 하지만 원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의혹과 의심이 오고 가는가. 루쉰과 샤오홍은 영혼의 동반자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말년에 건강이 대단히 좋지 않았던 루쉰도 샤오홍의 방문만은 기다리고 고대했다. 부인이 보기에 걱정될 정도로 오랜 시간 샤오홍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샤오홍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존경하고 잠시라도 대화해보는 것이 소원인 루쉰과 거의 매일 만나 이야기한다는 것. 루쉰은 샤오홍이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거듭되는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니다. 말 그대로 영혼의 동반자, 영혼의 친구가 된 것이다.

 

천재는 늘 짧은 생을 산다. 샤오홍도 31살이라는, 너무 짧은 생을 살았다. 짧은 생이지만 대단한 작품들을 남겨 나도 그녀의 책을 읽게 되었다. 80, 90살이 넘도록 아무런 의미 없이 생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현세에서 못 다한 사랑, 내세에서 다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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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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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다르게 지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동양철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오래된 구전이나 옛사람들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낸 책의 내용을 희석 시킨다. 왜 동양철학을 알아서 내 인생과 맞짱을 뜨게 해야 하나? 굳이 맞짱을 뜨지 않고 구워 먹고 데워 먹고 삶아 먹고 다시 먹으면서 현실과 일상의 무거움을 이겨내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면 그만인 것을. 일단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동양의 고전, 특히 중국의 오래된 책들에 담긴 정수를 맛보게 된다. 논어, 맹자 같은 책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지루한 일인가. 당장 검색만 해봐도 관련된 책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양철학,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더 영향을 받은 책이나 학자·철학자들을 추천할 테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 의해 한번 각색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그간 동양인조차 오해하고 있었던 동양철학의 정수를 소개한다. 시원하고 거침없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일단 ‘동양철학’, ‘공자·맹자’하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권해도 욕먹을 일 없을 책이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양’, ‘좌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변화가 없는 정체된 문화’라는 판단을 내린다. 사람들은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서구 문화, 복종과 인내를 말하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이분법을 도출해낸다.” (p.395)

“「톰소여의 모험」처럼 각종 ‘모험’을 소재로 다룬 서양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심청전」처럼 각종 ‘희생’을 소재로 다룬 우리나라의 전래 이야기였습니다.” (p.9)

 

 

동양과 서양의 비교를 책 두 권으로 하는 논리의 비약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만화영화를 봐도 그랬다. 만화영화의 원작이 고전소설인 탓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손에 땀을 쥐며 봤던 만화는 대부분 서양의 것이었다. 기껏해야 달려라 하니와 아기공룡 둘리 정도가 있었지, 재미있는 만화영화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을 통해 단지 복종과 인내, 희생과 헌신만이 동양의 가치가 아님을 주장한다.

 

 

“도연명은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며 ‘무군주론’을 펼쳤던 포경언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p.204)

 

이천년 전, 중국에 ‘무군주론’을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장 급진적인 이념인 ‘아나키즘’보다 더 대책 없는 주장이라 생각된다. 무국가론도 아니고 무군주론이라니. 왕이나 제후나 하늘이고 신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던 시기에 ‘무군주론’을 주장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심각한 도전이고 반역이었을 것이다. ‘무군주론’의 주요 논거가 되는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주장은 ‘하늘이 땅이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도연명과 포경언의 다른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이 두 명과는 다른 처세를 원했던 자들에 의해 없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치니까. 아무튼, 책은 이런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동양철학, 중국의 고전들에 담긴 신선한 주장들을 소개한다. 서양과 비교해 더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며 인내와 덕망만을 강조하는 것이 동양의 철학, 동양의 사고가 아님을 내내 강조한다.

 

 

“뛰어난 선비는 주머니 속에 든 송곳과 같아서 끝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3년 동안 선생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뛰어난 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를 지금이라도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만약 일찍부터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자루까지 보였겠지 그깟 끝만 보였겠습니까?” (p.110)

 

 

조나라의 책략가였던 평원군이 적국이던 초나라와의 전쟁 중 협상을 위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중 뛰어난 재략가들을 찾던 중에 모수라는 인물과 나눈 대화다. 평원군은 왕의 총애를 받는 제일의 인물이었고 모수는 그런 평원군 곁에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였다. 만약 서양의 잣대나 현재 우리들의 짧은 생각대로 동양의 관점에서라면 “저기요”라며 손을 들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모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질문이지 않나? 하지만 모수는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가 아님을 단번에 드러낸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대화는 잠깐 번뜩이는 재치로 받아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수많은 인물 중 하나로 평원군 슬하에 있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기민한 처세라고 할 수 있다. 손도 들지 않고, 쭈뼛거리고만 있었다면 그저 그런 인물 중 하나로만, 기억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자백가는 하나같이 자신의 제안대로 한다면 세상의 구원을 이를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보다 나빠졌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약탈로 신음했고 특히 약자의 고통은 날로 심해졌다.” (p.79)

 

 

책에는 제자백가의 예가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중국 철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가 이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제후나 왕들은 자신의 앞일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고, 나라는 금세 생기고 망했기 때문에 제자백가를 찾는 수요도 넘쳐났을 것이다. 물론,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제자백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저 그런 제자백가를 둔 제후국이나 나라는 금세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자백가가 넘쳐나던 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가장 고달팠고 전쟁과 약탈이 가장 극심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너도 나도 제자백가라 들고 일어나 자리를 얻어 새 세상을 부르짖고 구원을 약속했지만 그들의 말이 옳다면 세상은 수백 번도 더 구원되고 새롭게 태어났어야 한다.

 

 

“처음부터 ‘나쁜 조조’에 초점을 맞췄던 유비는 한실을 부흥시킨 이후의 대책이라 할 만한 포스트 이념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비로 하여금 외연 확장을 힘들게 한 요소였다.” (p.178)

 

 

제자백가와 한심한 유비를 보면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생각하게 된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정당의 존재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저 정당이 현재 한국의 제1야당이라는 점이 비극이다. 수많은 호재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성공한 싸움을 하지 못하고 여당에 끌려 다니면서 입만 살아서 외치는 말이 “정권심판”이었다. 하도 들어서 사람들의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반복되는 레토릭이었다. 그 얘기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대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선명 야당의 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야당 흉내는 내지만 절대로 몸을 던지지는 않는 전형적인 책상머리 서생의 모습, 아니 그보다 더 비겁하고 게으르며 한심한 날건달의 모습이었다. ‘나쁜 조조’는 차근차근 주변을 포섭해 힘을 기르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와 백성들에게는 유화책도 쓰면서 입지를 다지는 데, ‘한심한 유비’는 대의와 명분만을 부르짖고 있었다. 2014년 끝 무렵, 한국에도 ‘한심한 유비’들과 ‘날건달’들이 너무 많다.

 

 

“순자는 사람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의견의 시대에 한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기준이 없다면 그냥 떠벌리는 것과 주장하는 것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가지 주장을 가지려면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사안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이치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보았다.” (p.26)

 

종편이 생기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어 올리는 회사마저 언론사로 취급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 피곤하다. TV를 봐도 스마트폰을 봐도 정보가 넘쳐 난다. 너무 넘쳐 난다. 한가지 사안을 두고도 양쪽의 의견이 너무 팽팽하게 대립된다. 그것이 정치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정치적인 사안이 아닌데도 굳이 정치적인 사안인 것처럼 몰고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이 넘치고 논리가 가벼워지다 보니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음모도 넘쳐난다. 늘 그래왔지만 언론 나부랭이들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태생부터 그런 찌라시들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는 습성일 수도 있겠다. ‘한가지 주장에 근거와 이치가 따라야 한다.’는 순자의 주장이 머리를 때린다. 내가 중국의 철학자 중 좋아하는 사람이 순자라서 더 머리를 때렸을 수도 있다.

언론 찌라시 나부랭이들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되새겼으면 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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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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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이름이야 워낙 유명한 작가니 당연히 들어봤지만 작품을 읽지 않았다.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전경린이라는 이름에서 내가 받는 느낌은 대게 이런 것들이었다. 해체, 추상, 형이상, 어려움 등. 왜 그런지는 모른다. 배수아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배수아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들. 배수아 작가의「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읽고 나의 이런 막돼먹은 이미지 수용이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것이구나 싶었다.

내가 만난 전경린 작가의 첫 작품 「해변빌라」도 나의 막돼먹은 이미지 수용법칙을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건 비밀인데요.”

“실은, 몇 년 전부터 팔이 무거워져서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 없었어요.” (p.91)

 

 

내가 볼 때, 유지의 이런 고백은 거짓말이다. 팔에 정말 이상이 생겨서 팔을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심리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다. 사랑하고 싶고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럴 없는 이사경과 오휘를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간절함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뒤얽히고 복잡 미묘한 내용과 심리의 발단이 되는 사건도 이것의 발로라고 보인다. 갑자기 교수 이사경 앞에서 단추를 풀고 속옷을 벗는 유지의 행위는 상식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독자인 내게는 그렇다. 작품 속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유지가 마지막까지 그토록 붙잡아 두고 싶었던 이사경과 오휘는 내내 우유부단하고 뜨뜻미지근한 인물들이다. 느닷없이 옷을 벗은 학생, 유지를 안는 것이 이사경이 내린 결론이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겪는 일에도 우유부단하고 뜨뜻미지근하다. 오휘도 마찬가지다. 피아노라는 생명체를 통해 유지와 하나가 되고 그것을 매개로 몸을 섞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해버린다. 버려진 유지를 뻔뻔하게 다시 찾는 것도 오휘다. 이사경과 오휘가 단 한번이라도 맺고 끊는 것을 분명히 했다면 유지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은 몹쓸 장소고 삶은 끝없이 잔인하죠.”

 

 

<해변의 가능성>이라는 수익은 전혀 나지 않을 것 같은 카페를 운영하는 편사장의 말이 이 책의 주제로 보인다. 27살 먹은 현도라는 남자와 23살 먹은 수미라는 여자는 둘 다 고아로 자라 대전에서 지내다 수미가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에서 바로 죽어버렸다. 그 뒤로 이곳 해변빌라와 해변의 가능성이 위치한 남쪽 어느 바다까지 흘러온 것이다.

이상경과 그의 가족, 노부인과 백주희와 환, 손이린과 편사장, 해영과 진수 등 모두 그렇게 그렇게 남쪽 끝 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파도가 무한히 반복하며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다. 몹쓸 세상과 잔인한 사회가 생매장한 살아있는 화석들이 도착한 종착지다. 그렇기에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

유지가 차린 피아노 학원 <피아노호텔>도 그렇기에 절망적인 작명이다. 작가와 책과 책의 인물들을 뭉뚱그려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니 <피아노호텔>이라는 작명도 세기말적 환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피아노가 밤새 잠드는 곳이라 <피아노호텔>이라 지었다는 유지의 말도 거짓말로 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랫말처럼 잊힐 만하면 찾아와 자신과의 추억과 몸을 찾는 오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답답하다. 나 같으면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하거나 이혼하고 내려와서 같이 살자고 할 것 같은데, 유지는 내내 망설인다. 이사경은 작업실에서 유지와 그녀의 도플갱어(이사경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유지를 관찰한다. 그의 작품 속에 유지와 손이린이 함께 녹아 있다. 그렇지만 손을 잡지도 마음을 붙잡을 말을 하지도 않는다. 내내 우유부단하고 뜨뜻미지근.

 

 

“나는 오휘가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듯 고아가 되어 내게로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기대는 공허하고 부모님, 병원, 결혼 같은 삶의 현실은 굳건하지요.” (p.63)

“대신 입체 모형이 쿵, 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던 소리가 들린다. 나 여기 있어요, 그게 전부인 것이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며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이사경은 나에게 남인 적이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의미로든.” (p.211)

 

 

유지는 그나마 현실에 부닥치려 몸부림친다. 오휘, 이사경과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관계에 함몰되지 않는다. 부모님, 병원, 결혼 같은 삶의 현실을 인지한다. 이사경 앞에서 옷을 벗었던 그날, 그 교실에 있던 입체 모형이 쿵, 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면 당연히 소리가 들린다. 이사경의 귀에도, 유지의 귀에도 들린다. 갑자기 쓰러지면 놀라기도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분명히 입체 모형이 쓰러져 소리가 나고 놀랄 일임에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살아있지 않을 것이다. 비현실이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의미로든 이사경과 오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본질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유지의 한계다. 그리고 내가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는 한계다. 내게는 이런 설정과 전개가 난해하다.

 

 

“유지는 앞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여기로 와서 피아노를 쳐야 한다. 알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p.42)

 

 

아들 이사경과의 스캔들을 자연스럽게 묻기 위해 노부인은 유지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연조에게 피아노 과외를 시킨다. 지극히 현실이다. 노부인은 우유부단하지도 뜨뜻미지근하지도 않다. 직선이다. 과감하다.

 

 

“유지, 네가 보여.”

“나는 눈을 뜬 채 물속에 들어가듯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서늘했다. 그리고 캄캄했고, 무엇보다 따스했다.” (p.33)

 

뭔 말인지 모르겠다. 이사경의 말이다. 그리고 유지의 말이다.

차라리 내게는 책의 말미에 편사장이 폭풍 후 해안가로 떠밀려 내려 온 거대한 목선을 보고

“그럴지도 여긴 온갖 것이 다 밀려오거든.”이라고 말한 것이 더 현실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인다고 말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은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나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여러 피아노곡들이 실제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등장하는 피아노곡을 몇 곡 들어봤다. 그 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이 가장 좋았다. B플랫 장조라고 곡 설명이 되어 있는데 도입부 ‘딴따따따다다다’에서는 단조곡으로 들렸다. 브렌델의 연주와 리히터의 연주가 소개되어 있어 두 연주주의 곡을 들어 봤는데 내게는 브렌델의 연주가 더 인상 깊었다. 피아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내 귀에도 인상 깊게 들렸으니 대단한 곡, 대단한 연주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책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이 더 현실적이었다. 내 귀에 들리고 내 마음에 와 닿았으니 말이다. 그만큼 책은 나와 멀었다. 읽을수록 수긍이 되고 인물과 사건의 전개에 빠져 들어야 하는데, 점점 멀어졌다.

덕분에 좋은 피아노곡을 듣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유지도 이사경도 아닌 편사장이었다. 편사장은 남쪽 마을 끝에 <해변의 가능성>이라는 전혀 그 해변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카페를 열었다. 오가는 손님이라 해봐야 몇 명되지 않는다. 좋은 술과 그랜드 피아노와 음악을 갖추었지만 강남도 아니고 큰 도시 번화가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 다음에야 전혀 돈 벌 가능성이 없는 <해변의 무가능성>이다. 그는 자신의 카페에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음악을 대접한다. 멋진 해영이라는 애인도 있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듯이 편사장은 해영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 사주고 입히고 먹이고 등등. 그런 그녀가 진수라는 놈과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앞에 잠시 언급했던 거대 목선이다. 폭풍 이후 <해변의 가능성>이 있는 무가능성의 해변으로 밀려들어 온 현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편사장의 카페에서 위로와 위안과 잠시나마 안정을 얻었지만 편사장의 결말은 애처롭다. 이것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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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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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이 같은 친구 한 녀석이 있다. 책에서 묘사되는 기형이 정도(?)는 아니지만 그 녀석과 또 다른 친구 녀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기형이 같은 녀석은 우리 셋 중 가장 늦게 장가갔다. 바로 3주 전이다.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하고 정의감도 있는 친구다. 기형이만큼 무모하거나 함부로 들이대지는 않는다. 다른 친구 하나가 먼저 장가가고 곧이어 나도 장가갔다. 셋 다 총각이었을 때는 자주 만났다. 내가 장교생활을 할 때는 둘을 먹여 살렸다. 전역 후 바로 취업 해 둘을 먹여 살렸다. 여기서 먹여 살렸다는 것이 같이 살면서 의식주를 다 해결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자주 밥을 샀다는 정도다. 다른 친구 하나가 취업 해 나와 기형이 같은 친구를 먹여 살렸다. 기형이 같은 친구 녀석은 취업은 했지만 계속해서 나와 다른 친구 녀석이 계속 기형이 같은 친구를 먹여 살렸다. 이 녀석은 우리 둘 결혼식 때 축의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 녀석 결혼식장에서는 돈이 없다며 내게 돈을 빌려 축의금을 냈다. 뭐, 그런 식이다. 그러나 워낙 허물없고 친한 사이라 그걸로 싸우거나 갚네 마네 하며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

유독 기형이 같은 친구 녀석은 연애도 잘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 녀석만큼 연애를 많이 한 주변 사람도 없다. 늘 여자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코칭을 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친구 녀석 아내가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뭔 놈의 귀는 그렇게 얇은지, 이번 주 우리 얘기 듣고 알았다 알았다 하던 놈이 다음 주 만나면 ‘아니~ 누가 이렇게 하라던데~’라며 우리 얘기를 모조리 까먹는다.

그런 녀석이 너무 너무 착하고 참하고 멋진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가 현수막도 만들어 결혼식장에서 들고 있었다. 축가를 하는 데 마치 부모 없이 하나뿐인 동생과 자란 형이 동생을 장가보내는 것처럼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그만큼 그 녀석의 연애기는 순탄치 않았다.

그저께 9박10일의 신혼여행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주말 제수씨와 함께 보기로 했다.

비로소 완전체가 된 느낌이다. 우리 세 친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도 네버엔딩 스토리다.

 

이 책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읽는 내내 그 친구 녀석이 생각났다. 태산이의 둘도 없는 친구 기형이와는 다른 듯 닮았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저히 열여섯 살 몸매라고는 봐줄 수 없는 기형이었다. 불룩 나온 배며 세 겹으로 겹쳐지는 턱은 나이 들어 자기 관리 제대로 못한 게으른 오십 대 아저씨의 몸매를 연상하게 했다.” (p.10)

“하여간 기형이 쟤가 문제다. 가만히 집에 있었으면 아무 문제도 터지지 않았을 텐데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면서 도움을 주는 일보다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더 많다.” (p.68)

 

 

태산이는 기형이를 귀찮아하고 성가셔 하지만 태산이에게는 사실 기형이 밖에 없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그랬다. 정말 친 부모처럼 잘 챙겨주시는 떡집 아저씨와 아줌마, 갑자기 나타난 5촌 아저씨도 시간이 갈수록 미심쩍었다. 하지만 기형이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제일 먼저 태산이를 찾아온 것도 기형이다. 다들 그렇듯이 “어떡하냐, 힘내라”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뭐하냐!” 겉으로는 투덜거리고 원망하지만 태산이에게는 기형이 밖에 없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낸 <해리미용실>을 찾아가는데 동행한 것도 기형이다. 처음에는 태산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고마워한다.

30중반을 넘기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좋은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더 깊게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같은 시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다 보니 굳이 긴 이야기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사관후보생 시절 친구 등 연락해서 목소리 듣는 친구는 많지만 매주 만나는 친구들보다 가까워질 수는 없는 듯 하다. 아! 우리 세 친구는 교회 친구다. 나를 제외한 둘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라 더 오래된 친구고 나는 대학2학년 때 지금 교회에 나오면서 이후에 둘과 친구가 되었다. 시내에 위치한 큰 교회라 동기들이 많다. 그런데 유독 우리 셋만 더 친했다. 부모님 이야기, 직장 이야기, 자녀교육 이야기, 정치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걱정하고 응원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실제로 우리 세 가정과 두 가정 정도 더 모여서 귀농(?)을 꿈꾸고 있다. 아직은 꿈만 꾸는 단계인데, 반드시 이루어 질 꿈이다.

태산이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엄마는 이미 돌아가시고 하나밖에 없는 가족,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이 세상에 덜렁 혼자가 된 것이다. 성인도 아니고 학생인 데 말이다. 책은 <해리미용실>과 그 미용실의 젊은 사장, 태산이와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결국 해리미용실의 해리가 태산이의 엄마고 젊은 사장은 아빠이며, 태산이가 엄마와 아빠로 알던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책의 결말은 열려 있다. 내게는 이런 내용의 전개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엔 기형이만 들어왔다. 더불어 소중한 친구 두 녀석도 함께.

 

 

“기형이는 그저 한 말이 아니었다. 도배지를 크기에 맞게 자르고 풀칠을 해서 바르는 폼이 전문가가 울고 갈 정도였다.” (p.209)

“배운 적은 없지만 제가 손재주 하나는 타고났거든요. 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천부적인 소질 같은 거, 인정하죠? 제가 그래요.” (p.228)

 

 

홀로 남은 태산이를 잘 챙기던 담임의 권유로 ‘손으로 말해요’ 동호회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물론, 알고 보니 기형이의 도움이었다. 손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인데, 직업은 변호사지만 어린 시절 꿈이었던 미용기술을 배워 좋은 일을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변호사를 통해 해리 미용실의 해리와 젊은 사장의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의 흐름인데, 그것보다 나는 손재주를 가진 것에 주목했다.

기형이에게 도배를 기가 막히게 하는 손재주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열여섯 살로 보이지 않는 뚱뚱한 외모에 안하무인의 성격에 선생님께 농담 비슷한 말대꾸나 하는 기형이에게도 그만의 능력이 있다는 것. 책을 읽는 나까지 흐뭇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태산이도 마찬가지. <해리미용실>로 찾아가 젊은 사장 아저씨의 덥수룩한 머리를 손질한다. 아빠를 닮아 미용기술까지 타고난 것이다.

기형이 같은 내 소중한 친구 녀석도 대단한 능력이 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 정말 재미있다. 나와 또 다른 친구야 워낙 많이 들었고 레퍼토리가 뻔하기 때문에 면박을 주기 일쑤지만 다른 사람들은 배를 잡고 구른다. 주변에서 코미디언 시험 한 번 보라는 얘기도 엄청 들었다. 요즘 같이 유머가 아주 소중한 능력이 되는 시대에 그 녀석이 가진 능력은 정말 특별하다. 남들은 노력하거나 훈련해서 될 수 없는 수준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 셋 다 나름의 능력들이 있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기형이가 기가 막힌 도배 실력을 가지고 있고 태산이가 기가 막힌 미용 실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들도 당신들도 기가 막힌 실력 하나는 분명히 탑재되어 있다. 그것을 언제 발견해 내느냐가 문제다.

 

 

13일에 수능시험이 있었다. 매년 그렇듯이 수능 시험 전날, 당일, 다음 날 모든 뉴스에는 수능과 수험생, 학부모와 관련된 소식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수능을 치지 않는 열아홉 청춘도 많다. 미리 수시에 합격해 수능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은 제외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도 있고, 현재의 입시와 교육에 반대해 수능을 거부한 학생들도 있다. 수능을 거부하며 시위를 한 학생들은 짤막하게나마 보도는 된다.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학생,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 학생, 청춘들도 나름 자신들만의 능력이 있고 손재주가 있다. 생각과 이유가 있다. 마치 수능과 대학진학이 전부인 것처럼, 그것만이 옳은 것인 것처럼 정해진 사회가 답답하다.

이 책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먼 얘기를 늘어놓고 있기는 한데, 수능 시험을 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출한 학생들과 청춘들에게도 수고했어요. 힘내요. 당신들 자체가 보석입니다. 귀한 존재입니다. 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태산이와 나처럼 정말 소중한 친구를 꼭 만났으면 좋겠다. 언뜻 성가시고 귀찮고 매번 밥을 사 먹여야 하는 것이 짜증날 수도 있지만 인생을 통틀어 함께 갈 친구 하나 사귀는 것이 당장 좋은 대학 들어가고 당장 회사에서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다.

태산이, 기형이도 파이팅

이 땅의 열아홉 청춘들도 파이팅

나와 두 녀석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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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그릴스, 뜨거운 삶의 법칙
베어 그릴스 지음, 김미나 옮김 / 이지북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을 한 번 본 성인 남성들 대부분은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자연과 그 자연을 극복하려는 무모하고 정신 나간 것 같은 주인공이 주는 묘한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나도 그랬다. 결혼 전 나의 특기 중 하나는 TV채널 무한반복 돌리기였다. 리모컨을 쥔 채 순식간에 채널을 변경하면서도 후다닥 지나가는 찰나를 통해 어떤 채널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 지 간파할 수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처음 본 것이 언제쯤이었는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놀라웠다. 내 눈과 리모컨을 쥔 손가락을 멈추게 했던 그 장면은 바로, 폭포로 뛰어드는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하다못해 물안경 하나 쓰지 않은 채,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배 앞으로 쥔 채 적어도 20여 미터는 넘어 보이는 정글의 폭포 아래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이었다. 폭포 아래로 고꾸라진 채 몇 초 동안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물 밖으로 고개를 쳐들며 나오는 그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저거 어떻게 찍은 거지? 설마 카메라맨도 같이 뛴 거야?’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 프로그램을 검색했다. 케이블 채널의 시답잖은 수십 개의 채널 중 ‘디스커버리’채널을 알게 되었고, ‘디스커버리’의 편성표를 꿰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주인공이 ‘베어 그릴스’라는 사람이고 그가 영국의 최강 특수부대 출신이며, 특수부대 복무 중 입은 척추부상으로 전역한 사람이라는 것은 검색으로 쉽게 알게 되었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처음 보기 전부터 이미 시즌이 여러 번 진행되고 있었고, 한국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안티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을 확신하는 추측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이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교묘한 CG로 실제처럼 만든 것이다, 베어 그릴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등 등.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몇 편만 보면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몇 편 본 것과 맞먹는 스펙터클과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억만금을 주어도 가지 않을(억만금을 준다고 하면 가려는 사람들은 있을 수도 있겠다^^;;) 위험한 곳에 덩그러니 떨어진다. 헬기로 떨어지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배에서 떨어지고 한다. 일정한 방향과 목표도 없이 그냥 맨몸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최소한의 옷과 배낭, 맥가이버 칼 정도가 전부다. 자는 장소도, 먹는 음식도 모조리 혼자서 해결한다. 악전고투를 거친 후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인가를 발견하거나, 지나가는 차를 발견하거나, 근처에 있는 배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다. 순수한 팬심으로만 보면 떨어지고, 구르고, 구더기나 뱀을 잡아 먹고, 사막과 폭포와 정글과 화산과 황무지를 몸으로 이겨내는 주인공 베어 그릴스에게 감정이입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아파하고 짜릿해 하고 다행스러워 한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깐깐한 안티 시청자의 눈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만큼 시나리오가 절묘한 프로그램이 없다. 어쨌든 결국에는 살아남으니까.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 대한 안티들이 펼쳐 놓은 음모를 보다 보면 ‘세상 믿을 것 하나도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말 것 같아 나는 더 프로그램의 열혈 팬이 되기로 했다.

사람의 자극과 흥미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 시즌이 거듭되고 내가 본 에피소드가 늘어날수록 ‘에이~ 더 엄청난 곳 없나?, 에이~ 베어 형~! 거기서는 더 리얼하게 했어야지~ 몸을 사리고 그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작은 지옥(김영하 산문 「보다」중에서)

차츰 챙겨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결정적으로는 결혼해서 신혼집으로 이사한 다음부터는 ‘디스커버리’채널이 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 베어 그릴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TV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적으로 180개국에서 시청자가 거의 12억에 이른다.” (p.439)

 

<인간과 자연의 대결>이 유명하다는 것 정도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전 세계 180개국에 12억의 시청자가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정말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남성 시청자들이라면 대부분 베어 그릴스에게 감정 이입하며 빠져들 만한 프로그램인데,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12억의 시청자들 중 8억 이상은 남성 시청자일 것이다.

 

 

“그리고 높이에 대한 것이 있다. 등산을 하거나 헬리콥터에 매달려 있을 때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멀쩡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다.” (p.455)

 

 

이 책 「뜨거운 삶의 법칙」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베어 그릴스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단번에 읽어 내려간 이 책의 주제는, “나 베어 그릴스도 평범한 사람이오.”이다.

목차를 보기 전 나는 추측했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겠지? 내가 봤던 에피소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라고. 아니었다. 베어형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얘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그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군대시절, 에베레스트 등반, 그리고 마지막이 <인간과 자연의 대결>이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 대한 내용은 책의 분량에서 가장 적었다. 그런데 책은 재미있었다. TV화면을 통해서만 보던 베어형 자신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마치 TV화면을 통해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베어형이 글을 잘 쓴 것인지, 번역을 잘 한 것인지, 편집을 잘 한 것인지 아무튼 빠져 들었다.

그가 책의 말미에 하는 말은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세상의 끝, 아무도 가지 않고 도전하지 않은 미지라서 더 두렵고 위험한 그곳을 몸 하나로 누빈 사나이가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책의 읽다보면 그 말의 진짜 뜻을 알 수 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본인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편집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해지는 그의 모습은 두려움도 없고 공포도 느끼지 않는 완전무결한 용기와 모험심을 가진 사나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베어형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다만, 그는 그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도전한다는 것. 그를 제외한 대부분은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오랜 친구인 와티의 제안을 받아들여 북인도로 하이킹과 탐험을 떠나기에 충분한 돈을 모았다.” (p.134)

“마침내 1998년 5월 26일 아침 7시 22분.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이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반갑게 안아주었다. 얼어붙은 뺨 위로 눈물이 샘솟아 흘렀다.” (p.390)

“절대로 행운에 의지하지 말아라. 그건 그냥 선물일 뿐이야. 언제나 너만의 대안을 준비해야 해.” (p.58)

 

그는 움직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하지 않았던 북인도 하이킹,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가지고 떠난 유럽 기차 여행, 돈 한 푼 없었지만 용기와 자신감으로 후원을 받은 후 떠난 에베레스트 등정 등. 그는 움직였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언젠가 내게도 행운이 오겠지. 기회가 오겠지.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하며 앉아 있지 않았다.

나도 청소년들이나 주위 동생들, 지인들에게 늘 이야기 한다. 최대한 여행을 많이 떠나라고. 수백 권 책을 읽는 것과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것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책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한 번의 여행으로 얻었던 경험은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한다. 당장 토익 점수, 고시 공부, 취업 준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몇 개월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투자해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깨달음을 얻으라고. 내게도 그런 말을 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더 일찍 해외로 떠돌아 다녔을 텐데. 아무튼 베어형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토록 힘들게 들어간 영국의 특수부대에서 부상을 당한 후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도전에 대한 근질거림 이었다.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니까.

 

 

“현실적으로 그다지 어려운 결정을 아니었다. 속으로 나는 이미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그 ‘실패’라는 늙은 협잡꾼 놈 앞에서 겁을 먹고 꼬리를 내려 본 적이 없다.” (p.291)

“아버지는 늘 인생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꿈을 좇으면서 친구들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p.122)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삶의 지침 하나를 얻는다. ‘꿈을 좇으면서 친구들과 가족을 지키는 것’ 무슨 결정을 하고 무슨 선택을 하든, 그것의 기준은 바로 가족과 귀중한 친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가장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정말 소중한 친구들과 만나면서 최근 나의 가장 큰 화두였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베어형 아버지 감사 베리 땡큐~!!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지만 평소 같지 않게 긴장감이 밀려온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알 수 없는 내 안의 속삭임을 무시한다.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p.9)

 

베어형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이 자서전 비스무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책의 내용 전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여부는 책을 읽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베어 그릴스는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에도, 매 에피소드마다 겪는 두려움과 긴장감, 알 수 없는 꺼림칙함 앞에서도 맞섰다는 것. 물론, 굉장한 출연료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게 되지만^^;; 적어도 나에게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새 시즌 주인공 제의가 들어온다면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 헬기조차 타보지 않았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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