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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색, 계』에서는 탕웨이의 매력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은 남편이 된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를 보고 탕웨이의 팬이 되었다. 가을과 쓸쓸함이 테마가 된 영화 전체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은 오로지 여주인공 탕웨이였다.
흐트러진 머리, 루즈핏의 코트, 응시하는 듯 초점 없는 시선. 이후 한국에서 광고도 찍고 영화제에도 참석하는 등 국내 연예인 못지않은 행보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결혼!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영화 『황금시대』를 먼저 봤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런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던 영화였나 보다. 이미 지난 10월에 개봉을 했는데, 전혀 몰랐다. 좋아하던 배우 탕웨이가 주인공이었는데도 말이다.
책
「황금시대」는 중국의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이지만 전기와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네가 남자라면 분명히
대업을 이루었을 텐데.”
“왜 남자여야 하느냐고?
나는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들도 못 해내는 일을 꼭 하고 말 거야.” (p.39)
샤오홍을 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는 대장부시다. 어린 시절 기억만
떠올려 봐도 어머니는 늘 무언가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잔소리의 끈질김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계를 하면 계주 혹은 총무를 하셨고,
주위에는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계나 모임에서 갈등이 있을 때, 두 당사자가 어머니께 전화해 하소연을 하면 어머니가 중간에서
갈등을 해결하시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다소 소극적인 아버지의 기질과는 완전히 다른 어머니 기질이 아들로써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울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늘 생각했다. ‘우리 엄마!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말 뭘 해도 했을 분인데’
샤오홍도 그런 여성이었다. 20세기 초, 아직은 봉건적인 사고와 문화, 의식이 지배하던
중국 내륙에서 샤오홍과 같은 여성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마치
비단 손수건 안에 숨겨진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같아서 참으로 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토록 무조건적인 할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샤오홍의 어린
시절은 달콤한 기억일 수 있었던 것이다.” (p.27)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이고 모험심이 가득한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던 것 같다. 지방의 유지였지만 따스하고 인정이 많았던 샤오홍의 할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유약한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달랐다. 샤오홍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샤오홍을 지지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은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십자수를 하면서 어른들이
정해 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과 시어른을 봉양하는 것이 최고의 존재가치로 여겼다.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가지 못하는 인형과도 같은 삶이었다. 샤오홍은 그것이 싫었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인생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게 만들었고, 매료시켰고, 그래서 결국엔 모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지.”
(p.271)
샤오홍은 자유연애자였다. 고향에서 도망치기 전 그녀의 부모는 괜찮은 집안의 총각과 결혼을
시키려 했다. 하지만 샤오홍은 결혼이라는 틀 자체가 싫었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 갇혀 남편과 아이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 시시하다고 생각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짧은 31년의 인생동안 사랑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고 말았다.
아이러니다. 샤오홍에게는 왕언지안과 샤오쥔, 두안무와 뤄빈지라는 남자들이 있었다. 짧은 인생동안 4명의 남자들과 사랑을 하게 된다. 모두 그녀의
사랑을 받고 그녀에게 사랑을 쏟았다. 뤄빈지는 샤오홍의 병상을 지킨 마지막 사람이었다는 점이 다른 세 남자와는 다른 점이지만 그도 샤오홍의 곁을
지키며 그녀와 사랑을 나눈 남자다.
“장팅쥐는 밖에서는 신사의 품격을 지닌 양 행동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폭군’으로
돌변하는 인물이었다. 샤오홍에 대한 단속도 매우 엄격하고 잔혹했다.” (p.15)
그녀가 자유연애를 꿈꾸고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여성으로 살기 원했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작품에서 표현된 것처럼 애정결핍을 보인 것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군’이었다. 어린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샤오홍의 진취적인 기상이 더 움텄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았어야 할 지극한
사랑은 부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샤오홍은 늘 곁에 남자를 둘 수밖에 없었다. 받은 사랑이 거의 없었고 자신만을 사랑하고 보호해주던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으니 늘 애정이 결핍된 상태였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몇 명의 남자와 주고받는 샤오홍의 사랑은 불안정하다. 아슬아슬하고
파편적이다. 사랑을 통해 샤오홍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받았던 충만함보다 그 사랑과의 실연을
통해 받은 상처가 늘 더 컸다.
이것이 오히려 그녀의 창작열을 부추긴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는 분명 문학적
성취가 대단했음에도 사람들 인식 속의 그녀는 항상 ‘샤오 부인’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샤오홍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
(p.141)
그녀는 어쨌든 유명한 여류작가가 된다. 전쟁 중에 유산과 입양을 하기도 하고, 짧은
31년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루쉰을 만나 대작가의 반열에 이른다. 책의 후반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루쉰과의 일화인데, 그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스승과 제자, 대가와 입문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이 전혀 없이 루쉰과 샤오홍은 친구가 된다. 주위에서나
문단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고 의심을 하기도 하지만 원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의혹과 의심이 오고 가는가. 루쉰과 샤오홍은
영혼의 동반자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말년에 건강이 대단히 좋지 않았던 루쉰도 샤오홍의 방문만은 기다리고 고대했다. 부인이 보기에 걱정될
정도로 오랜 시간 샤오홍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샤오홍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존경하고 잠시라도 대화해보는 것이 소원인
루쉰과 거의 매일 만나 이야기한다는 것. 루쉰은 샤오홍이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거듭되는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니다. 말 그대로 영혼의 동반자, 영혼의 친구가 된 것이다.
천재는 늘 짧은 생을 산다. 샤오홍도 31살이라는, 너무 짧은 생을 살았다. 짧은 생이지만
대단한 작품들을 남겨 나도 그녀의 책을 읽게 되었다. 80, 90살이 넘도록 아무런 의미 없이 생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현세에서 못 다한 사랑, 내세에서 다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