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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평점 :
기형이 같은 친구 한 녀석이 있다. 책에서 묘사되는 기형이 정도(?)는 아니지만 그 녀석과
또 다른 친구 녀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기형이 같은 녀석은 우리 셋 중 가장 늦게 장가갔다. 바로 3주
전이다.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하고 정의감도 있는 친구다. 기형이만큼 무모하거나 함부로 들이대지는 않는다. 다른 친구 하나가 먼저 장가가고 곧이어
나도 장가갔다. 셋 다 총각이었을 때는 자주 만났다. 내가 장교생활을 할 때는 둘을 먹여 살렸다. 전역 후 바로 취업 해 둘을 먹여 살렸다.
여기서 먹여 살렸다는 것이 같이 살면서 의식주를 다 해결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자주 밥을 샀다는 정도다. 다른 친구 하나가 취업 해 나와 기형이
같은 친구를 먹여 살렸다. 기형이 같은 친구 녀석은 취업은 했지만 계속해서 나와 다른 친구 녀석이 계속 기형이 같은 친구를 먹여 살렸다. 이
녀석은 우리 둘 결혼식 때 축의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 녀석 결혼식장에서는 돈이 없다며 내게 돈을 빌려 축의금을 냈다. 뭐, 그런 식이다.
그러나 워낙 허물없고 친한 사이라 그걸로 싸우거나 갚네 마네 하며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
유독 기형이 같은 친구 녀석은 연애도 잘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 녀석만큼 연애를 많이 한
주변 사람도 없다. 늘 여자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코칭을 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친구 녀석 아내가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뭔
놈의 귀는 그렇게 얇은지, 이번 주 우리 얘기 듣고 알았다 알았다 하던 놈이 다음 주 만나면 ‘아니~ 누가 이렇게 하라던데~’라며 우리 얘기를
모조리 까먹는다.
그런 녀석이 너무 너무 착하고 참하고 멋진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가 현수막도 만들어
결혼식장에서 들고 있었다. 축가를 하는 데 마치 부모 없이 하나뿐인 동생과 자란 형이 동생을 장가보내는 것처럼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그만큼
그 녀석의 연애기는 순탄치 않았다.
그저께 9박10일의 신혼여행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주말 제수씨와 함께 보기로 했다.
비로소 완전체가 된 느낌이다. 우리 세 친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도 네버엔딩
스토리다.
이
책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읽는 내내 그 친구 녀석이 생각났다. 태산이의 둘도 없는 친구 기형이와는 다른 듯 닮았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저히 열여섯 살
몸매라고는 봐줄 수 없는 기형이었다. 불룩 나온 배며 세 겹으로 겹쳐지는 턱은 나이 들어 자기 관리 제대로 못한 게으른 오십 대 아저씨의 몸매를
연상하게 했다.” (p.10)
“하여간 기형이 쟤가
문제다. 가만히 집에 있었으면 아무 문제도 터지지 않았을 텐데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면서 도움을 주는 일보다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더 많다.” (p.68)
태산이는 기형이를 귀찮아하고 성가셔 하지만 태산이에게는 사실 기형이 밖에 없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그랬다. 정말 친 부모처럼 잘 챙겨주시는 떡집 아저씨와 아줌마, 갑자기 나타난 5촌 아저씨도 시간이 갈수록 미심쩍었다.
하지만 기형이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제일 먼저 태산이를 찾아온 것도 기형이다. 다들 그렇듯이 “어떡하냐, 힘내라”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뭐하냐!” 겉으로는 투덜거리고 원망하지만 태산이에게는 기형이 밖에 없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낸
<해리미용실>을 찾아가는데 동행한 것도 기형이다. 처음에는 태산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고마워한다.
30중반을 넘기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좋은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더 깊게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같은 시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다 보니 굳이 긴 이야기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사관후보생 시절 친구 등 연락해서 목소리 듣는 친구는 많지만 매주 만나는 친구들보다 가까워질 수는 없는 듯 하다. 아! 우리
세 친구는 교회 친구다. 나를 제외한 둘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라 더 오래된 친구고 나는 대학2학년 때 지금 교회에 나오면서 이후에 둘과
친구가 되었다. 시내에 위치한 큰 교회라 동기들이 많다. 그런데 유독 우리 셋만 더 친했다. 부모님 이야기, 직장 이야기, 자녀교육 이야기,
정치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걱정하고 응원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실제로 우리 세 가정과 두 가정 정도 더 모여서
귀농(?)을 꿈꾸고 있다. 아직은 꿈만 꾸는 단계인데, 반드시 이루어 질 꿈이다.
태산이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엄마는 이미 돌아가시고 하나밖에 없는 가족,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이 세상에 덜렁 혼자가 된 것이다. 성인도 아니고 학생인 데 말이다. 책은 <해리미용실>과 그 미용실의 젊은
사장, 태산이와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결국 해리미용실의 해리가 태산이의 엄마고 젊은 사장은 아빠이며, 태산이가 엄마와 아빠로 알던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책의 결말은 열려 있다. 내게는 이런 내용의 전개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엔 기형이만 들어왔다.
더불어 소중한 친구 두 녀석도 함께.
“기형이는 그저 한 말이
아니었다. 도배지를 크기에 맞게 자르고 풀칠을 해서 바르는 폼이 전문가가 울고 갈 정도였다.”
(p.209)
“배운 적은 없지만 제가
손재주 하나는 타고났거든요. 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천부적인 소질 같은 거, 인정하죠? 제가 그래요.”
(p.228)
홀로 남은 태산이를 잘 챙기던 담임의 권유로 ‘손으로 말해요’ 동호회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물론, 알고 보니 기형이의 도움이었다. 손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인데, 직업은 변호사지만 어린 시절 꿈이었던 미용기술을 배워
좋은 일을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변호사를 통해 해리 미용실의 해리와 젊은 사장의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의
흐름인데, 그것보다 나는 손재주를 가진 것에 주목했다.
기형이에게 도배를 기가 막히게 하는 손재주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열여섯 살로 보이지
않는 뚱뚱한 외모에 안하무인의 성격에 선생님께 농담 비슷한 말대꾸나 하는 기형이에게도 그만의 능력이 있다는 것. 책을 읽는 나까지 흐뭇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태산이도 마찬가지. <해리미용실>로 찾아가 젊은 사장 아저씨의 덥수룩한 머리를 손질한다. 아빠를 닮아 미용기술까지 타고난
것이다.
기형이 같은 내 소중한 친구 녀석도 대단한 능력이 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 정말 재미있다. 나와 또 다른 친구야 워낙 많이 들었고 레퍼토리가 뻔하기 때문에 면박을 주기 일쑤지만 다른 사람들은 배를 잡고 구른다.
주변에서 코미디언 시험 한 번 보라는 얘기도 엄청 들었다. 요즘 같이 유머가 아주 소중한 능력이 되는 시대에 그 녀석이 가진 능력은 정말
특별하다. 남들은 노력하거나 훈련해서 될 수 없는 수준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 셋 다 나름의 능력들이 있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기형이가 기가 막힌 도배 실력을 가지고 있고 태산이가 기가 막힌 미용 실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들도 당신들도 기가 막힌 실력 하나는 분명히 탑재되어 있다. 그것을 언제 발견해 내느냐가 문제다.
13일에 수능시험이 있었다. 매년 그렇듯이 수능 시험 전날, 당일, 다음 날 모든 뉴스에는
수능과 수험생, 학부모와 관련된 소식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수능을 치지 않는 열아홉 청춘도 많다. 미리 수시에 합격해 수능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은 제외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도 있고, 현재의 입시와 교육에 반대해 수능을 거부한 학생들도 있다. 수능을 거부하며 시위를 한
학생들은 짤막하게나마 보도는 된다.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학생,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
학생, 청춘들도 나름 자신들만의 능력이 있고 손재주가 있다. 생각과 이유가 있다. 마치 수능과 대학진학이 전부인 것처럼, 그것만이 옳은 것인
것처럼 정해진 사회가 답답하다.
이
책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먼 얘기를 늘어놓고 있기는 한데, 수능 시험을 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출한 학생들과 청춘들에게도 수고했어요. 힘내요.
당신들 자체가 보석입니다. 귀한 존재입니다. 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태산이와 나처럼 정말 소중한 친구를 꼭 만났으면 좋겠다. 언뜻 성가시고 귀찮고 매번 밥을
사 먹여야 하는 것이 짜증날 수도 있지만 인생을 통틀어 함께 갈 친구 하나 사귀는 것이 당장 좋은 대학 들어가고 당장 회사에서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다.
태산이, 기형이도 파이팅
이
땅의 열아홉 청춘들도 파이팅
나와 두 녀석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