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다르게 지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동양철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오래된 구전이나 옛사람들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낸 책의 내용을 희석 시킨다. 왜 동양철학을 알아서 내 인생과 맞짱을 뜨게 해야 하나? 굳이 맞짱을 뜨지 않고 구워 먹고 데워 먹고 삶아 먹고 다시 먹으면서 현실과 일상의 무거움을 이겨내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면 그만인 것을. 일단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동양의 고전, 특히 중국의 오래된 책들에 담긴 정수를 맛보게 된다. 논어, 맹자 같은 책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지루한 일인가. 당장 검색만 해봐도 관련된 책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양철학,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더 영향을 받은 책이나 학자·철학자들을 추천할 테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 의해 한번 각색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그간 동양인조차 오해하고 있었던 동양철학의 정수를 소개한다. 시원하고 거침없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일단 ‘동양철학’, ‘공자·맹자’하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권해도 욕먹을 일 없을 책이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양’, ‘좌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변화가 없는 정체된 문화’라는 판단을 내린다. 사람들은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서구 문화, 복종과 인내를 말하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이분법을 도출해낸다.” (p.395)

“「톰소여의 모험」처럼 각종 ‘모험’을 소재로 다룬 서양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심청전」처럼 각종 ‘희생’을 소재로 다룬 우리나라의 전래 이야기였습니다.” (p.9)

 

 

동양과 서양의 비교를 책 두 권으로 하는 논리의 비약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만화영화를 봐도 그랬다. 만화영화의 원작이 고전소설인 탓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손에 땀을 쥐며 봤던 만화는 대부분 서양의 것이었다. 기껏해야 달려라 하니와 아기공룡 둘리 정도가 있었지, 재미있는 만화영화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을 통해 단지 복종과 인내, 희생과 헌신만이 동양의 가치가 아님을 주장한다.

 

 

“도연명은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며 ‘무군주론’을 펼쳤던 포경언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p.204)

 

이천년 전, 중국에 ‘무군주론’을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장 급진적인 이념인 ‘아나키즘’보다 더 대책 없는 주장이라 생각된다. 무국가론도 아니고 무군주론이라니. 왕이나 제후나 하늘이고 신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던 시기에 ‘무군주론’을 주장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심각한 도전이고 반역이었을 것이다. ‘무군주론’의 주요 논거가 되는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주장은 ‘하늘이 땅이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도연명과 포경언의 다른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이 두 명과는 다른 처세를 원했던 자들에 의해 없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치니까. 아무튼, 책은 이런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동양철학, 중국의 고전들에 담긴 신선한 주장들을 소개한다. 서양과 비교해 더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며 인내와 덕망만을 강조하는 것이 동양의 철학, 동양의 사고가 아님을 내내 강조한다.

 

 

“뛰어난 선비는 주머니 속에 든 송곳과 같아서 끝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3년 동안 선생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뛰어난 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를 지금이라도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만약 일찍부터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자루까지 보였겠지 그깟 끝만 보였겠습니까?” (p.110)

 

 

조나라의 책략가였던 평원군이 적국이던 초나라와의 전쟁 중 협상을 위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중 뛰어난 재략가들을 찾던 중에 모수라는 인물과 나눈 대화다. 평원군은 왕의 총애를 받는 제일의 인물이었고 모수는 그런 평원군 곁에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였다. 만약 서양의 잣대나 현재 우리들의 짧은 생각대로 동양의 관점에서라면 “저기요”라며 손을 들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모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질문이지 않나? 하지만 모수는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가 아님을 단번에 드러낸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대화는 잠깐 번뜩이는 재치로 받아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수많은 인물 중 하나로 평원군 슬하에 있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기민한 처세라고 할 수 있다. 손도 들지 않고, 쭈뼛거리고만 있었다면 그저 그런 인물 중 하나로만, 기억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자백가는 하나같이 자신의 제안대로 한다면 세상의 구원을 이를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보다 나빠졌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약탈로 신음했고 특히 약자의 고통은 날로 심해졌다.” (p.79)

 

 

책에는 제자백가의 예가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중국 철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가 이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제후나 왕들은 자신의 앞일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고, 나라는 금세 생기고 망했기 때문에 제자백가를 찾는 수요도 넘쳐났을 것이다. 물론,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제자백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저 그런 제자백가를 둔 제후국이나 나라는 금세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자백가가 넘쳐나던 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가장 고달팠고 전쟁과 약탈이 가장 극심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너도 나도 제자백가라 들고 일어나 자리를 얻어 새 세상을 부르짖고 구원을 약속했지만 그들의 말이 옳다면 세상은 수백 번도 더 구원되고 새롭게 태어났어야 한다.

 

 

“처음부터 ‘나쁜 조조’에 초점을 맞췄던 유비는 한실을 부흥시킨 이후의 대책이라 할 만한 포스트 이념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비로 하여금 외연 확장을 힘들게 한 요소였다.” (p.178)

 

 

제자백가와 한심한 유비를 보면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생각하게 된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정당의 존재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저 정당이 현재 한국의 제1야당이라는 점이 비극이다. 수많은 호재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성공한 싸움을 하지 못하고 여당에 끌려 다니면서 입만 살아서 외치는 말이 “정권심판”이었다. 하도 들어서 사람들의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반복되는 레토릭이었다. 그 얘기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대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선명 야당의 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야당 흉내는 내지만 절대로 몸을 던지지는 않는 전형적인 책상머리 서생의 모습, 아니 그보다 더 비겁하고 게으르며 한심한 날건달의 모습이었다. ‘나쁜 조조’는 차근차근 주변을 포섭해 힘을 기르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와 백성들에게는 유화책도 쓰면서 입지를 다지는 데, ‘한심한 유비’는 대의와 명분만을 부르짖고 있었다. 2014년 끝 무렵, 한국에도 ‘한심한 유비’들과 ‘날건달’들이 너무 많다.

 

 

“순자는 사람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의견의 시대에 한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기준이 없다면 그냥 떠벌리는 것과 주장하는 것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가지 주장을 가지려면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사안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이치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보았다.” (p.26)

 

종편이 생기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어 올리는 회사마저 언론사로 취급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 피곤하다. TV를 봐도 스마트폰을 봐도 정보가 넘쳐 난다. 너무 넘쳐 난다. 한가지 사안을 두고도 양쪽의 의견이 너무 팽팽하게 대립된다. 그것이 정치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정치적인 사안이 아닌데도 굳이 정치적인 사안인 것처럼 몰고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이 넘치고 논리가 가벼워지다 보니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음모도 넘쳐난다. 늘 그래왔지만 언론 나부랭이들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태생부터 그런 찌라시들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는 습성일 수도 있겠다. ‘한가지 주장에 근거와 이치가 따라야 한다.’는 순자의 주장이 머리를 때린다. 내가 중국의 철학자 중 좋아하는 사람이 순자라서 더 머리를 때렸을 수도 있다.

언론 찌라시 나부랭이들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되새겼으면 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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