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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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자동차다. 나는 미니밴 종류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미니밴이라면 카니발이나 쌍용자동차의 로디우스가 전부라 선택 폭이 너무 작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미니밴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사진의 차는 혼다의 프리드다. 소형차로 분류되는 배기량이지만 박스카 형태로 7인승이다. 다양한 수납공간과 넓은 실내공간이 자랑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는 많이 팔리는 자동차인데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는다. 만약 한국에 수입된다면 분명 잘 팔릴 것 같은데, 수입되지 않는다. 아! 그래서 수입되지 않나?

 

 

이 책은 귀엽다. 그림책이라 금방 읽는다. 그림이 너무 귀엽다. 저자가 그린 미니밴이 뭔지는 모르겠다. 대우에서 생산되던 다마스라고 하면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말그대로 미니밴을 많이 찾아 보는 나도 처음보는 차량이다.

결혼 후 아내가 처제와 일주일 정도 일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일본에 다녀와 아내가 내게 처음 한 말은 이것이다.

“자기가 좋아할 차 진짜 많아~~~!!!!”

진짜 예쁜 차, 귀여운 차, 작은 차가 정말 많더라는 것이다. 오래된 클래식 차량도 거리에 넘쳐 나고 아무튼 길거리에 서 있거나 카페에 앉아서 하루종일 차 구경해도 재밌겠다고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저자가 그려내는 그림은 파스텔톤이라 귀엽고 따뜻하다. 사진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기도 한데, 캐리커쳐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페달을 밟고 그림을 그렸어도 도쿄의 모든 거리를 볼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묘사된 도쿄는 내 일상과 내 기분에 따른 단편적인 모습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나의 시선은 여행자들의 수많은 시선 중 하나일 뿐이다.” (p.6)

프랑스인인 저자는 여자친구의 인턴십 기간 동안 도쿄에 머문다. 6개월 동안 이다. 6개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다른 서평에서 여러 번 말한 바대로 나의 첫 해외여행인 몽골여행은 1달이었다. 그 1달이 엄청난 사고의 전환과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6개월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러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만화 작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도쿄 시내를 돌아 다닌다. 돌아 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 장면이 있으면 의자를 펼쳐 내 앉아 그림을 그린다.

나는 무엇보다 저자의 자세가 좋다. 자기가 그리는 그림, 사진도 아니고 그림이다. 그림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순간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친구 몇 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좋은 장면이 있어서 멈췄다. 일단, 함께 자전거를 타던 다른 사람에게 그 장면은 딱히 좋거나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시선, 그림이 단지 한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짧게 다녀 온 외국 생활을 두고 두고 이야기 하는 사람. 마치 그 사람만이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한다. 얘기하는 사람이야 자기가 재미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내니까 재미있겠지만 듣는 사람은 고역이다.

 

 

저자의 그림은 아마추어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자폐를 가졌지만 한 번 본 장면을 그대로 캔버스에 스캔하듯 그려내는 사람 정도의 능력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그와 함께 한 자전거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다. 친절하게 도움말까지 덧붙여 그림에서 표현된 묘사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이 책을 읽는 묘미다. 거리풍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각, 그 순간 저자의 눈에 비친 도쿄의 거리의 모습은 디테일하다. 쉽게 사람과 사건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사람이나 사건에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오늘 내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 저자의 자전거와 도쿄의 복잡한 거리 모습을 보여줬다면 저자와는 다른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그림은 단순한 캐릭터같은 그림에서부터 위 그림과 같이 정밀한 묘사도 많다. 또 하나,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장이 시작될 때 마다 일본 파출소와 그 파출소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귀엽고 유쾌한 장면이다. 실제로 자전거를 탄 프랑스인에게 늘 친절했던 경찰들이라고 한다. 또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이 많다.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특정한 거리나 창을 통해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하고 있는 악세사리에 대한 묘사까지 자세하고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으로 생각까지 유추해 낸다. 물론, 정말 그 순간 그 사람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저자의 손에서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은 재미있다. 우리도 그러지 않나. 출·퇴근길 꽉 막힌 자동차 안에서, 내 옆·앞·뒤에 있는 차들은 도대체 어디에서와서 어디로가는 것일까?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는 걸까? 복잡한 상점이나 거리에서도 문득 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찡그리고 있을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저렇게 박장대소 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고도 하지 않나.

아무튼, 책을 읽고 그림을 보면 저자가 사람에게 정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에서 배어난다.

 

 

저자가 일본에 있던 시절,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있었나 보다. 우리야 바로 북한과 직면해 있고 늘 상존하는 위협인데,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꽤나 걱정되고 무서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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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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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그랬어요? 몇 년 전인가,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때, 대학생이 한 인터뷰의 내용이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국민적인 여론을 등에 업으려던 찰나, 조중동이 가만있지 않았다. <연봉 6천만 원이 넘는 노조원이 파업을 한다>라는 뉘앙스의 제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연봉 6천만 원 받는 아저씨는 선망의 대상이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하고 공부하고 준비해도 들어갈 수 없는 직장에 있는 아저씨다. 그런 아저씨가 파업을 한다고 하니, 심정적으로 동조는 못할망정 조중동에서 만들어 낸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 똑같이 비판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대학생만이 아니라 많은 수의 국민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연봉 6천만 원 받는 노조원이 어떤 일을 얼마나 오랜 기간 해왔으며, 그 과정 중에서 그가 흘린 땀이 얼마나 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현상에 집착해 공격을 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들이 내게 묻는 건 이런 거였다. 즉 지금 하늘에 떠 있는 비행접시에서 조만간 외계인들이 무리 지어 내려올 예정이며, 난민 신세가 된 그들을 W시가 받아주는 대신 그 외계 생명체들에게 환경미화와 같은 단순 업무를 맡기기로 비밀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것. 따라서 외계인들이 내려오면 회사 소속 미화원들이 대량 해고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상최대의 쇼> 중, p.163)

 

 

어느 날 갑자기 W시에 미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났다. 강원도 영서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W시의 하늘을 뒤덮는 비행접시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공포에 떨었다. 공상과학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비행접시는 대부분 공격적이다. 지구를 파괴하거나 인류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전쟁을 한다. 인류와 외계인의 전쟁. 두려움에 떨던 W시민들의 머리 위를 6개월 동안 덮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비행접시는 도시의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연일 색종이를 뿌려 주기도 하고 고립되었던 W시의 경기가 관광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 글쎄 저 외계인들이 사실은 자기들 행성에서 쫓겨 왔대.”, “쟤네들 여기에 정착해서 살려고 하는 거래.”, “외계인들이 벌써 내려와서 일하고 산대.” 유언비어는 일파만파, 십만파, 백만파로 퍼지게 마련이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김판석씨는 동료들과 이 유언비어를 접한다. 외계인들의 값싼 노동력이 W시에 투입된다면, 아마도 자신들처럼 미화원로 채용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내 밥그릇을 뺏기는 건데? 이건 아니지. 절대 안 되지. 그러면 외계인 놈들을 쫓아내야 되겠네. 물러가라. 물러가라! 외계인 고 홈!!!

 

 

“도서관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던 이들이 이번에도 서로 눈을 내리깔며 모른 체하는 걸 보니, 새삼 일상으로 돌아온 게 실감났다. 벌써 몇 년째 여기서 각종 시험에 대비하여 공부를 해온 우리는,” (<지상최대의 쇼> 중, p.160)

 

 

불일 듯 일어난 유언비어는 군중을 끌어 모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목소리의 크기와 숫자가 이긴다. 비행접시가 W시 상공에 멈춰 있는 동안 W시에 떠돌던 수많은 유언비어는 하나도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언제 왔나 생각될 정도로. 그리고 W시에 남은 이들은 그들의 일상으로 홀연히 돌아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한때 라면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라면의 황제> 중, p.75)

 

 

라면은 완전식품이다. 라면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도 무수히 라면을 먹었다. 자취생활이 거의 10년 정도 되는 내게 라면은 동반자였다. 귀찮고 피곤하고 짜증나도 라면봉지 하나면 충분했다. 어느 정도의 물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삶긴 면발을 먹고 국물을 들이켜면 충분했다. 그런데 라면이 없다면?

 

 

 

“그건 진짜 최고의 음식이었어. 아마 자네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그 따뜻한 국물 맛을.” (<라면의 황제> 중, p.79)

 

라면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 맛있고 편리하고 저렴한 음식이 없어진다니.

 

 

 

“예를 들자면 라면금지법안의 통과 같은 것들. 라면은, 그보다 더 오랜 과거에 아편이나 담배가 겪었던 것과 같은 운명을 맞아야 했다. 이제라면 어디에도 없었고, 하다못해 집 뒷마당에 솥을 걸고 면을 튀긴 뒤 직접 만든 가루수프를 넣고 끓여 먹는 행위조차 단속 대상이 되었다.” (<라면의 황제> 중, p.83)

 

 

라면금지법이라……. 라면금지법이 통과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걸 입안하는 국회의원이 있을까? 그런데 가능할 것 같다. 싱글법도 제정하려고 폼 잡았던 한국 아닌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벌어지는 다이내믹 코리아. 아편이나 필로폰 같은 마약을 하게 되면 불법이다. 큰 형사적 처벌을 받게 된다. 이제는 담배도 피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런데 라면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세상이 된다?

 

 

라면을 먹기 위해, 그 향긋하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달콤한 면발을 먹고 구수하고 시원하며 매콤하고 속이 뻥 뚫리는 기가 막힌 국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특급 작전을 펼쳐야 한다. RO에 버금가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가입해야 한다. 신분을 확인하고 보장받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까다로운 절차와 장시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지하조직원으로 위장해 라면을 먹는 현장을 급습하려는 경찰과 정보당국의 위장 가입이 많기 때문에 3중4중10중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각, 모처에 모여 든 이들의 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까만 비닐이 들려 있다. 그들은 눈빛만으로 거사를 치루기 위한 암호를 주고받는다. 몇 달을 기다려 왔나? 버너와 냄비를 꺼낸다. 수저를 꺼내는 사람이 있다. 라면을 꺼낸다. 저 바스락거리는 라면 봉지소리! 물이 끓는다. 수프를 넣고 기다린다. 야채를 넣는다. 면을 넣는다. 뚜껑을 닫고 식기를 나눈다. 혹시 냄새가 새 나가지 않나, 멀리서 고배율의 렌즈로 촬영하는 사람은 없나 파수꾼이 360도 경계를 한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린다. 이미 약속한 대로 조용히 냄비 주위로 모여든다. 라면과 국물을 받는다. 그때!!

“그대로 멈춰!!!!!”

한 무리의 경찰과 사복을 입은 정보요원들이 무리를 급습한다. 밀고자가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어디서 기다렸다 튀어나왔는지 모를 경찰차와 시커먼 차들이 무리를 에워싼다. 5-6대의 차량에서 뿜어내는 라이트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모조리 바닥에 쏟긴 면발과 국물이 마지막 힘을 다해 토해내는 신음이다. 단 한사람도, 면발을 먹지 못했다. 국물도 홀짝이지 못했다.

다음 날, 이 사건은 대대적인 뉴스가 된다.

 

 

에이~ 이런 일은 절대 없겠지!!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 <교육의 탄생>,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 <개들의 사생활>, <어느 멋진 날>, <경이로운 도시>,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책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재미있었다. SF 장르지만 현실성을 담보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재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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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집권당과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비상식적 행보를 보면서 사람들은 지쳐 간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이하로 내려갔다는 뉴스가 이슈가 되었다. 사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더 지치고 짜증 나는 것은 야당의 행태다. 예전부터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아무리 들어도 야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차피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자신을 뽑아줄 테고, 한 번 뽑아주고 나면 별다른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큰 무리 없이 임기를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정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정권의 실책과 실수와 명백한 잘못이 거듭되었음에도, 야당은 단 한번도 여론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 속이 터진다. 더 심각하고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제1야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은 너무 힘이 없고 도무지 마음을 주기에는 믿을만한 곳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과 제1야당만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한국전쟁 전 대구경북 지역이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여당과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를 보내는 지역이니까 말이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이런 내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 될 것 같다. 

 

 

 

 

 

2. 불평등의 창조

 

 

 

 

 

 

 

 

 

 

 

 

 

고고학, 인류학. 고등학생이던 시절 대학 전공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것 중 상위에 랭크된 학문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끔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면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BBC에서 만든 이집트와 피라미드에 대한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대학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해 유학을 가고 학위를 받거나 연구소에 취직해 이집트와 남미의 고원과 정글, 호주 대륙을 누비는 것을 상상했다. 나의 장미빛 기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면서 단번에 깨졌다.

"너희 집 돈 많아? 서울대 갈 자신 있어? 그러면 고고학이든 인류학이든 해"

나는 전혀 거리낌 없이 포기했다.

 

이 책은 역사 이래로 존재하고 어쩌면 현재까지 지속되는 불평등의 기원과 과정을 고고학과 인류학을 절묘하게 섞어 풀어낸다고 한다. 불평등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예전 역사에서는 뚜렷하고 공적 영역에까지 드러났던 것이고 현재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만연해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불평등의 존재는 분명한 사실이다. 책의 제목처럼 불평등의 창조 과정을 알아야 지금의 불평등이 갖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 것 같다. 

 

 

 

 

3. 현대 중동의 탄생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군에 대한 뉴스가 쏙 들어갔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프리랜스 언론인이 참수당했다. IS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주로 참수와 인질, 테러였다. 뭐 늘 그렇듯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격하겠지 했다. 그런데 IS를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군기자 이자 분쟁지역을 전문으로 취재하는 김영미PD가 출연한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다. 그녀의 여러가지 이야기 중 요지는 이것이었다. 세계가 IS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 이다. 미국도 유럽도 잘 모르는데 한국이 알리가 없다.

중동은, 아랍은 역사적으로 피해자였다.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십자군 정쟁, 1차 세계대전, 아랍의 유전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침투 등. 그들의 입장에서, 즉 중동과 아랍의 입장에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면 절대 가해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이런 말을 늘어 놓으면서 그들을 1%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대 중동이 왜 지금에 이르렀는지, 왜 IS같은 조직이 태동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중동의 탄생>은 중동을 제외한, 아니 중동을 포함한 세계인이 되도록 많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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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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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대학 입학.

98년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팠다. 본격적으로 국가 전체가 IMF체제 안에 들어갔다. 국가가 부도가 나 IMF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괴물에게 잡아 먹혔다. 실제로 아버지는 주식으로 기천만원을 탕진했다. TV뉴스에는 연일 기업들의 부도와 가장들의 죽음이 보도 되었다. 나는 수능에 실패했다. 듣도 보지도 못한 대학에 입학했다. 편입을 목표로 1,2학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와 토익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을 만났다. 과방과 단대학생회에서 그들에게 듣게 된 말과 글, 음모와 이론은 신기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 98년과 IMF는 모든 가치를 해체시켰다. 친구, 낭만, 동아리, 지성, 정의 같은 것들이 주된 해체 대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의 신입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신입생들은 과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중앙도서관과 단과대 열람실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과 토익을 대비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2년 전, 내가 입학한 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했다. 총장의 비리와 학내 운동권세력 탄압에 대한 항의로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지역 내에서는 꽤 이슈가 되었다. 교수회의마저 총장에게서 등을 돌렸다. 당장 총장이 퇴진할 줄 알았는데, 그는 지역사회의 기득권 중에서도 갑이었다. 몇 년을 질질 끌다 퇴진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총장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도. 96년 총장 퇴진 운동 이후 학내 운동 진영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IMF라는 폭탄을 맞고 입학한 신입생들은 더 이상 학내 운동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곧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데, 너 같은 놈들이 또 후배들 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활개 치게 놔둘 수는 없지. 축제 기간 동안만 잠깐 머리 식히고 나와라. 너만 쳐 넣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p.300)

 

“그제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았다. 남영동. 나는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있었다.” (p.202)

 

 

 

2002년 한일 월드컵.

이 책의 저자와 나는 같은 시기 대학에 다녔다. 2002년 나는 휴학생인 채로 한일 월드컵을 시청했다. 역사 상 최초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한 김대중 정부에서 월드컵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대학 운동권 학생들을 탄압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IMF체제가 본격화 된 후 4-5년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2002월드컵은 마취총과 같았다. 갑자기 붉은색이 거리와 가슴과 본능을 사로잡았다.

남영동. 대공분실. 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불쾌하다. 1980년에도 그랬고 2002년에도 마찬가지다. 아니, 당시, 그러니까 2002년에는 남영동과 대공분실이 현실에서 사라진 존재로 생각되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학생들이 남영동으로 끌려갔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재미가 픽션과 논픽션의 절묘한 줄타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아니라 르포나 역사서를 읽는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내 기억을 떠올리며 읽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맞다. 그때도 그랬다.

 

대식이는 단대 학생회장이었다.

98년 새내기로 처음 맞은 대동제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단대 깃발을 함께 만든 후 노천강당으로 걸어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휘청휘청 거대한 단대 깃발을 겨우 붙들어 들고 들어선 노천극장에서 본 것은 절망과 초라함이었다. 한때 지역 학생운동의 거점이었던 곳이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다. 200백 명? 도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이 모였다. 나는 깃발을 놓고 노천극장을 빠져 나왔다.

대식이는 200백 명도 되지 않는 학생운동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식이는 한복 비스 무리한 옷을 입고 강의와 강의 사이 시간에 자주 들어와 학우들에게 참여와 관심을 호소했다. 함께 98년 대동제 깃발 제작을 위해 밤을 새우던 동희가 들어와 울부짖었다. 대식이가 구속되었고 탄원서를 제출해야 하니 도와달라고.

 

 

 

“나는 주체사상의 정서적 호소력이란 것에는 중독되지 않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는 단박에 중독됐다.” (p.63)

 

 

맞다. 그때도 그랬다.

학생들은 대식이의 구속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희의 울부짖음도 외면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모여 든 학생들로 PC방은 매일, 매시간 만원이었다. 사회적 정의, 지성의 추구, 연대의 가치 보다 학점과 토익, 공무원 시험과 각종 자격증, 워킹 홀리데이와 교환학생이 화두였다. 책에 등장하는 진우는 마지막까지 학생 운동의 중심이 되고 졸업 후에도 운동권으로 성장하고 고착되지만 내 주위에는 진우 같은 친구는 없었다. 대학 졸업 한참 후 대식이가 지역의 중견기업에서 영업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나는 진우의 이름을 불었다. 대석 형은 내 이름을 불었다. 전학협 간부가 대석 형의 이름을 불었다. 청년진보당 간부가 전학협 간부의 이름을 불었다. 민주노총 간부가 청년진보당 간부의 이름을 불었다. 침묵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223)

“우리를 여기에 끌어들인 선배들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우리는 떠나게 된다. 평범한 세상으로, 진우보다 내가 먼저였다.” (p.477)

 

 

책에서 그려내는 태의, 진우, 미주의 대학생활은 길고 고단했지만 낭만적으로 읽힌다. 아주 잠시, 학생운동 끄트머리에 발가락 하나 얹어 본 기억 때문일까? 실망과 좌절을 안고 그 세계에서 발을 뺐지만 지금까지 내내 목구멍 한 쪽에 낀 고기 가시처럼 뱉어낼 수 없고 토악질 할 수 없는 대식이와 동희의 울부짖음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까?

실제로 태의나 진우, 대석처럼 시위대의 선봉이 되어 전경과 마주쳐 전투를 치르기도 하고 수배되어 경찰서나 대공분실 같은 곳에 끌려가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저자가 그려내는 청춘들의 처절함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선배들처럼 친구와 후배의 이름을 대고, 자연스럽게 운동에서 발을 슬며시 빼는, 그런 과정마저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의 룰로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글 솜씨가 대단해서 일까? 모르겠다.

 

 

 

“늙은 남자는 오래전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내가 입학하기 전부터 졸업한 뒤까지도 학교에서 살았다.”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다들 미친 남자라고만 불렀다. 왜냐하면, 그가 미쳤기 때문이다.” (p.113)

 

내가 다닌 학교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선배들은 그를 ‘김군’이라고 불렀다. 새까만 피부에 작은 눈, 스포츠머리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몸냄새, 양 손에 들고 있는 우산과 신문. ‘김군’은 열람실에도 중앙도서관에도 학생식당에서 프리패스로 다녔다. 학생들이 밥을 사주기도 하고 커피를 건네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미친 남자처럼 특정한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리지는 않았다.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졸업 후 한참 뒤 다시 찾은 학교에도 여전히 ‘김군’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지금, ‘김군’이 그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 거지. 나는 너희를 혐오한다. 너희는 역겨워. 너희에 비하면 무장 강도가 차라리 순수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p.407)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력처럼 나는 실제적으로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386에게도 마찬가지였다. 30대 이전까지는. 민주정부 10년 이후 이제는 정치 기득권이 되어 그들이 학생운동에서 그렇게 빠져 나갔듯이 ‘슬며시’사회의 정중앙에서 똬리를 튼 채 완전 변태했다. 그리고 그 완전변태가 시대와 역사적 흐름에 맞는 것인 양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지루하고 역겹다.

 

 

 

“우리가 떠나도 미친 남자는 여기 남는다. 늘 그랬듯이. 미친 남자는 우리 가운데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p.489)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인정한다. 하지만 변하더라도 곱게 변해야 한다. 좀 많이 변하더라도 미치지는 않아야 한다. 미친 사회를 살면서 미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맞닥뜨리다 보니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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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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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말이 많다. 낡아빠진 진영 논리를 가져와 트위터에서 쓸데없는 말이 오가는 꼴을 지켜보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나는 보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보여 드렸다. 영화를 보신 어머니는 재미있었다고 하시면서 “옛날 그런 고생한 거 보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 하셨다. 뒤에 덧붙이신 말씀은 “차라리 님아 인가 그거를 예매하지 그랬냐?”라고 하셨다. “엄마 님아 그 영화가 더 짠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내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내 부모님 세대 다른 분들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 스물아홉에 결혼하신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 오셨다. 충청북도 단양에서 경상북도 포항까지. 지금이야 도로도 좋고 자가용도 있어서 3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 명절을 맞아 포항에서 단양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린 내 손을 잡고 나보다 2살 어린 내 동생을 업고 두 분 양 손에 집채만 한 짐 보따리까지 챙긴 후 포항 단칸방에서 포항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를 타야 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 터미널까지 간 후 버스를 타고 경주역으로 가야 했다. 부산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단양역까지 5시간을 가야 했다. 밤 8시쯤 도착한 단양역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할아버지 댁에 오가는 길에 대한 기억은 안동역쯤에서 먹었던 가락국수 정도인 내게 부모님의 고달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세대 갈등에 대해서 많은 책과 기사, 보도와 논평이 쏟아졌다. 십년쯤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앉은 대화 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본격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첫 세대래”라고. 쉽게 말한다.

추운 겨울, 개울가 얼음을 깨고 시집 식구를 빨래를 해야 했던 이야기, 단칸방에서 아들 둘을 키우며 정신도 없이 곤로에 밥을 하고 연탄을 갈고 천기저귀를 빨아야 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나는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말이야~ 멀쩡한 중소기업이나 조그만 회사 놔두고 왜 그렇게 대기업이나 공무원 될려고 그래~ 젊은 것들이 고생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절망과 좌절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책 「폭격」을 읽으며 왜 아직도 박정희를 추억하고 암울하고 뒤틀렸던 60-70년대를 2014년 현재로 부활시키려 하는 세대가 많은 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허모씨나 변모씨가 차라리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범하나 지역에 자그마한 토굴들만이 밀집해 있는 이곳을 놈들은 군사적 목표라고 한다. 죽은 부모와 오빠, 동생의 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어찌 죽음을 주지 않고 참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죽음으로,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미 공군의 공중 폭격으로 가족 6명이 모두 사망하고 홀로 남은 안영실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종군 기자들을 향해 토로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 받았던 내용은 흰 옷을 입은 무리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이다. 그리고 미 공군은 적군인 북한군과 중공군을 향한 폭격, 북한의 군수시설과 보급시설에 대한 폭격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 대한 폭격.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했다는 명목상의 이유를 집어던진 채 한국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공중폭격의 배경과 전개과정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을 통해 지나치게 우상화 혹은 악마화된 미국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00년 즈음부터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문 문서 약 10만 장을 수집·분석했다.” (p.6)

 

이 책은 쉽게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처음 미공군의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부터 1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이것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문서를 분석했다. 10년이 걸렸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된 한국전쟁 당시 문서를 뒤졌다. 책에 덧붙인 주석과 참고문헌의 양이 70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지루하며 골치 아픈 것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이 있어서 나와 같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 당시의 진짜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으니 충분한 고마움을 표현해도 마땅하다. 단순히 몇 가지 자료와 책을 발췌하거나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 연구에 대한 가치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고 많은 연구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자료가 소개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너무 게으른 거 아냐~’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차를 두고 공개된 미국과 옛 소련의 군사기밀들에 접근하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학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데, 아직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느 정신 나간 단체에서 내게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듯한 논문 한 편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흐흐흐.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 흐흐흐.

 

 

“당대 전폭기 조종사들은 북한군 점령하의 남한지역 도시와 농촌을 향해 일상적으로 폭격작전을 수행했고 흰옷을 입은 민간인 무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기총소사를 가하곤 했다. 조종사들은 그 같은 자신의 행위를 군사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화했다.” (p.166)

“독도폭격사건이 발생했던 1948년 6월 8일, 오끼나와 카데나기지에서 1분 간격으로 이륙했던 B-29기들은 카미노시마 북단에서 회합하여 11시 47분에 첫 번째 폭격시발점인 울릉도 상공에 도착했다.” (p.77)

 

거대한 폭격기 B-29기는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가리지 않았다. 책의 단 한군데만 발췌했지만 책에 실리지 않은 무고한 양민을 향한 폭격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기독교가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해 성장한 평양지역과 북한의 서북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B-29기가 자기 머리 위를 날아다녀도 미국 선교사가 세운 교회당 안에 대피하면 당연히 무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너도나도 집을 버리고 교회당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은 공중에서 보기에 가장 좋은 폭격 대상이었다.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가리지 않은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교회당과 민가,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공터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폭격,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레이더 기술이 온전치 않아 미공군은 자체 관제시스템이나 조종사 각자의 육안식별로 폭격을 가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그들에게 북한 폭격을 위한 연습 대상이었다. 분명히 작은 배와 민간인으로 식별 했음에도 공중 폭격은 멈추지 않고 이루어 졌다.

 

 

“9시 45분에 모스키토 와일드웨스트와 접속되었다. 배정된 목표는 겉보기에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이었다. 통제관은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라고 말했다. 네이팜탄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모두 죽었다.” (p.226)

 

네이팜탄으로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 미공군 조종사의 임무보고서다. 짧은 문장이 더 섬뜩하다. 군인이 사용하는 문서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 공중폭격이 자행되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전선의 상황이다.

 

 

“미공군은 한국전쟁 초기 급작한 전선의 상황 때문에 다수의 B-29기들을 원래 용도와는 달리 지상군 근접지원작전에 대거 동원했다.” (p.237)

“북한 지상군은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령하며 연이어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지만, 실제 38선 이북의 전쟁 후방지역에서는 연일 충격과 공포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p.148)

 

 

전쟁 초기 북한군은 터진 둑의 물처럼 남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대통령이 도망친 수도 서울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고 제대로 된 준비조차 하지 않았던 남한군은 남쪽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제대로 된 준비나 훈련 없이 투입된 미공군은 북한 후방지역 폭격에 집중했다. 전선 후방으로부터의 보급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북한에 집중된 공업화는 미공군의 폭격의 주된 대상이었다. 초기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의 방침은 정밀폭격이었다. 민간과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기 B-29기 폭탄 하나로 가로 5미터 세로 150미터 크기의 타깃을 적중시킬 수 있는 확률은 0퍼센트에 가까웠고, 최소한 100-200발의 폭탄으로 대량폭격을 가해야만 50-80퍼센트의 타깃 적중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는 웃기지도 않는 적중률로는 정밀폭격이 불가능했다. 이후 지역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이 바뀌기는 했지만 민간에 대한 피해는 줄일 수 없었다.

 

 

“소각과 파괴를 위한 초토화정책 (scorched earth policy to burn and destroy)을 되풀이하여 강조” (p.284) 맥아더

“다른 소도시들도 시험 삼아 불태우고 파괴하시오 (burn and destroy as a lesson any other those towns)” (p.286)

 

전선이 고착되고 중공군의 참전이 이루어진 이후, 미군은 급박했다. 맥아더는 초토화정책을 지시한다. 이미 도시 기능과 산업 기능이 마비된 북한 지역 곳곳에 대한 초토화가본격화 되었다. 앞서 소개한 안영실이라는 북한의 양민도 이 초토화정책으로 인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중폭격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이미 집이 없어 토굴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연합군 참전과 미공군의 공중폭격으로 압록강까지 차지한 후 종전을 기대한 미군 수뇌부는 워싱턴을 향해 장밋빛 보고를 남발했는데,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전선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공중폭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 몇 명의 즉각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 몇몇의 짧고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군이 가진 인종차별주의와 미공군 조종사들의 결여된 인간애다.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증오’를 북한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p.153)

“기초교육과 훈련과정에서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지식을 배제한 채 기능주의적인 전쟁기계로 육성된 미공군 조종사들의 전시 행동양식은 폭격의 구조와 양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분석대상이다.” (p.188)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에 대해 질려버린 미군은 편집증적으로 동양인을 일본군과 동일시했다는 주장이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2차 대전 시 유럽 동부 전선에서 겪었던 살인적인 추위보다 적도 인근 수많은 섬과 정글에서 마주한 살인적인 더위와 기꺼이 자살을 감행하는 일본군의 무모한 군인정신에 질려버린 것일까? 미공군 조종사들이 뻔히 보이는 피난민 무리에, 자신들은 민간인이라며 입고 있던 흰 옷을 벗어 흔드는 무리를 향해 기총소사를 가하고 네이팜탄을 투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군인이 가진 명령복종의 구조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폭력이다. 저자는 당시 미군의 상황에 주목한다. 아직 불안정한 유럽의 정세에 더불어 유럽과 미국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극동의 한반도에 공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조종사를 선발하고 훈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석이다. 워싱턴 당국과 미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미공군 조종사들에 대한 특전을 제시했다. 일정 정도의 임무를 완수하면 진급을 보장한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조종사들은 격추의 위험도 작고 타 대륙의 전선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한국전쟁에서의 임무가 어렵지 않았다. 출격해 미공군 자체 관제시스템의 명령하달을 완수하면 그만이었다. 조종석에서 바라본 폭격 대상이 민가이고 피난민 무리라도 상관없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고 기지로 돌아가 임무보고서를 작성하면 끝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기능적인 전쟁기계로 양산된 당시 미공군 조종사들에게 어떠한 인간애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 내지는 혐오는 이것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1950년 11월 5일 맥아더는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공세적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워싱턴은 맥아더의 조치를 묵인했다.” (p.7)

“소위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미공군의 대량폭격은 이렇듯 남과 북에서 대규모의 한국 민간인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었다.” (p.331)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폭격은 ‘한국인의 자유’도, 그들이 꿈꾼 북한군과 중공군의 섬멸도 성공해내지 못했다. 무고한 대규모 북쪽과 남쪽의 양민 학살은 전쟁이 멈춘 뒤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대로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폭격의 주체인 미국은 자신들이 치른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공중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밝힌 적이 없다.” (p.385)

 

 

전쟁은 멈춘 상태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숫자가 얼마 만큼인지 파악은 하고 있을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행해진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니 말이다. 밝힐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모르니까.

 

차마 서평에 삽입할 수 없었던 사진이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인데, B-29기에서 폭탄을 낙하산에 실어 떨어뜨린 장면이다. 공중에서 촬영된 사진인데 민간인 남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과 그 끝에 달린 물체가 신기했던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채 다가오고 있는 장면이다. 그 사진의 장면 이후가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게 큰 비행기와 그렇게 무시무시한 폭탄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폭탄을 맞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는 장면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 세습 왕조의 코미디 같은 독재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미제, 미군의 비행기, 그 비행기의 폭탄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어떤 것인지는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공군의 폭격을 경험한 남쪽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친지에 의해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과 또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내 부모님 세대를 나와 같은 세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전쟁은 직접적인 것이었다. 직접 폭탄이 터지는 것과 그 터진 폭탄으로 인해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한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게 된 세대는 그만큼 더 알지 못한다. 이것이 한 번 더 전해지면

그만큼 더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무슨 소리를 해도, 그것은 각자의 자유다. 경험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각색되어 체화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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