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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메이드 인 차이나!
라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이유만으로 구매의욕은 한없이 떨어지고 다시는 눈에 담지 않았으며 옆 사람이 혹시 살라 치면 어이구~ 어떻게 메이드 인 차이나를 살려 그래!
라며 호통을 날리기도 했다. 이제는 점점 옛날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 보니 중국의 샤오미가 LG 스마트폰의 시장 점유율을
넘어섰다고 했다. 샤오미라는 브랜드를 처음 들어본 내게, 이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워낙 기계에 관심이 없고 스마트폰 같은 것은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무시와 괄시, 압력에도 꿋꿋하게 구입하고 있지 않다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구입했을 정도다. 아이폰6을 사기
위해서 밤을 새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최근 구입한 스마트폰이 LG제품이다. 그 전에 쓰던 제품보다
훨씬 카메라 화소도 좋고(이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스마트폰 구입 이유) 화면도 크다. 스마트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철지난 기기지만
내게는 최신이다. 전화하고 문자하고 카톡하고 사진 찍고 동영상 찍는 것으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부족한 내게는 최신 중의 최신이다.
그런데 그런 최신 핸드폰을 만들어 낸 LG를 제친 곳이 중국의 샤오미?
샤오미든 LG G시리즈든 공장에서 만들었다. 애플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열광하는 그 제품들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내는 그 무시무시한 폭스콘도 공장이다. 폭스콘에서 만들어내는 멋지고
간지나고 뭔가 앞서나가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애플의 제품들도 결국 폭스콘이라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제품이다.
모든 것의, 대부분이 메이드 인
공장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공장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
지하철 공사장과 택배 상하차 등 힘들다고 소문난 몇 가지 일은 단기적으로 해본 적이 있지만 공장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들이
공장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공장에서 태어난 후 각 가정의 거실과 방 곳곳에 들어올 때는 말끔하게 디자인 된 형태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공장을 바로
매치하기는 어렵다. ‘공장’이라고 하면 뭔가 어둡고 지저분하고 춥거나 덥고 시끄럽고 위험한 곳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람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데, 적어도 내게 ‘공장’은 위에 열거한 곳이다. 나고 자란 곳이 대규모 철강공단이 위치해 있는 해안도시다. 아버지도 철강공단에서 두
번째로 큰 공장에서 30년을 일하시고 정년퇴직 하셨다. 가장 큰 공장은 포스코다. 예전에는 포항제철로 불렸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포항제철
견학을 갔다. 도무지 뭔가 알 수 없는 시뻘건 것들이 귀를 찢을 듯한 소리를 내며 오가는, 우리 집보다 수백 배는 커 보이는 공장의 거대함과
기괴함이란.
공장은 그만큼 우리의 일상과 먼 거리에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공장을 가까이에서 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기회는 적다. 공장이라는 건물 자체도 이제는 도심 외곽지역이나 시골로
밀려나 있는 터라, 철강공단이 대규모로 입주해 있는 도시에 살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공장에 견학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먼 우리의 일상과 공장과의 거리를 소설가가
좁혀준다. 김중혁의 작품은 재미있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다. 견학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출판사의 편집팀과
상의해 방문할 공장을 정한 후 직접 방문해 공장을 둘러보고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책을 읽는 묘미다. 귀엽고 센스 넘치는 일러스트는 입 꼬리를 올라가게 만든다.
“편집자가 ‘브래지어 공장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마음속에서 ‘흐음’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흐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p.50)
브래지어를 만드는 공장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말고
브래지어 공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 공장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공장에 직접 방문하거나 견학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단지 ‘브래지어’라는 단어 하나로 ‘흐음’하는 감탄사를 흘러나오게 만들었다는 모든 남성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브래지어가
여성이 착용하는 속옷에 불과한데 왜 그러냐? 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남자들은 브래지어에 대한 뭔지 모를 판타지가 있다. 그래서 작가가
부러웠다.
작가, 그 중에서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내자는 제의도 들어오고, 일반인이라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브래지어’공장에 갈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수백, 수천 개의 브래지어가
쌓여 있는 브래지어 공장을 직접 본다면 그간 가졌던 브래지어에 대한 환상이 단번에 깨질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기는 하다.
“1그램당 100만 마리 이상의 효모들이 뒤섞이고 끓어오르면서 6개월 동안 간장을
만들어낸다... 간장을 만드는 가장 큰 원리가 시간이라는 점” (p.75)
“핸드백 같은 경우는 평생을 배워가면서 해야 해요. 원단 자체가 생명체예요. 이게 다
남의 가죽이란 말이죠. 가죽이란 게 하나하나 다 달라요.” (p.86)
“공장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파인차이나’이고 또 하나는
‘본차이나’이다. 두 제품의 생산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본차이나’는 젖소의 뼈를 태워서 생긴 재, 즉 ‘본 애시(Bone Ash)’를
50퍼센트 이상 함유한 제품으로 일반 도자기에 비해 강도가 높고 가벼운 게 특징이다.” (p.143)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요리가 라면일 것이며, (아버지처럼)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가 라면일 것이다.” (p.238)
“라면 한 가닥의 길이는 약 65센티미터이고, 라면 한 봉지에는 대략 75가닥의 면발이
들어간다. 라면의 총 면발 길이가 49미터에 달하니”
간장공장, 가방공장, 도자기공장, 라면공장. 작가가
방문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생필품이다. 가방도 여성에게는 생필품이지 아마? 일단, 모르는 것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혼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정말? 이야~ 이렇게 만들어 지는구나~”였다. 우리는 정말 모르는 것이 많다. 굳이 몰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본차이나’가 당연히 ‘중국에서 태어난’ 정도로
이해했었는데, 젖소의 뼈를 태워서... 강도가 높고... 가볍고...
라면 한 가닥의 길이가 65센티미터, 총 면발 길이가
49미터.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수치이지만. 왜 65센티미터와 49미터라는 특정한 수치가 나왔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라면이라는 것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완전체 음식이고, 기업 간 경쟁도 굉장히 치열한데, 책에 소개된 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라면만 65와
49라는 특정 수치를 가진 것인지 다른 기업의 제품도 그런 것인지 문득 궁금했다. 아니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고객의 데이터와 제품에 대한
연구데이터가 쌓여서 나온 지극히 과학적인 통계는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를테면, 라면 한 가닥의 길이가 64센티미터이거나 총 면발의 길이가
48미터라면 포만감이 부족하다든지, 66센티나 50미터라면 포만감이 지나쳐 라면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고 구매욕까지 떨어뜨린다든지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분명 뭔가 더 노골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ㄱ팀장님의 설명에 따르자면, 지구본이 불티나게 팔리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렇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리비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지구본이 팔린다.” (p.107)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장은 지구본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숙련된 직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를 맞춰 하나의 지구본을 만드는 행위도 뭔가 창조적이라 생각되었는데,
지구본이 가장 잘 팔리는 때가 전쟁이 일어날 때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온 지구가 평화롭고 지구상
어느 구석에서도 아주 작은 내전조차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구본을 만드는 공장의 사장님은 슬퍼해야 할지, 그래도 좋아해야 할지... 참... 이상한
세상이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p.9)
나와 당신은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다. 그리고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원자재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가 맞춰지고 섞이고 분해되고 조립되고 떨어져
나가고 뭉뚱그려 지면서 사는 것이 공장이다. 세상이다.
재밌는 공장, 이상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