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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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 사람의 모습일까?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이런 철학적인 문제는 금방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지혜로운 역사상 인물들이 남긴 수많은 문장과 책이 있고, 현세를 함께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서도 각종 정의와 분석을 소개 받는다. 하지만 결론은 개인이 주체가 되어 내리는 것이다. 시대와 기분에 따라, 입장과 관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철학적 담론을 개인적으로 체(體)화 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 세상은 그만큼 녹록하지 않고 패자부활 같은 배려는 없는 세상이니까.

이 책에서 학수는 ‘악’으로 그려진다. 명동 지하세계를 주름잡는 숨은 실력자 학수.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부하들도 무지막지하게 다룬다. 이미 버린 아들에게 “아빠야~”라며 다정하게 말할 만큼 위악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굳이 쓸개와 쓸개의 엄마가 숨긴 금덩어리를 손데 넣지 않아도 될 만큼 돈과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끝까지 그 금덩어리를 놓지 못한다.

 

 

학수가 처음부터 악마가 된 것은 아니다. 건실한 청년으로 주변 상인들에게 칭찬받았다. 순진하고 열정적이며 선한 청년에게 잘나가는 상점주인 아주머니는 자신의 가게를 학수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녀는 학수를 양아들로 삼는다.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함께 사업하는 형으로부터 대박 아이템을 제안 받는다. 그것이 ‘악마’가 된 경위다. 눈앞에 금덩어리가 보이고 당장 손만 뻗으면 그 금덩어리를 품에 넣을 수 있다면, 학수처럼 눈이 뒤집히고 ‘악마’가 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욕심을 끊어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금덩어리에 집착한 학수의 마지막 모습이다. 모르겠다. 처음 이 장면을 책에서 봤을 때는 ‘학수도 악마는 아니야. 맞아. 상황이, 사람 욕심이 다 그렇지 뭐.’ 생각했다. 그런데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잘 모르겠다. 작가는 마지막에야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은 학수를 그리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자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 그림에서 나는 오히려 더 무서운 학수의 모습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나와 같은 독자가 마음이 꼬일 대로 꼬여서 작가의 본래 뜻을 왜곡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진리와 같은 이 명제에 고개를 저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진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수도 과연 변한 것일까? 비로소 그토록 원하던 금덩어리를 품에 안자마자 아들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이 몰려온 것이 진실일까? 일단 나는 아니라고 보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잠깐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옥에 들어가서 판결을 받았다 손 치더라도 형기를 다 채우고 출소할까? 아니, 형을 받을 수는 있을까?

 

학수가 쫓은 금덩어리에는 다른 불나방도 뛰어 들었다. 강력한 정치인의 오른팔도 뛰어 드는데, 그것은 쓸개가 꾸민 덫이다. 한방에 학수와 정치인의 오른팔도 엮으려던 것이다. 결국 학수는 뜻을 이룬다. 학수와 정치인의 오른팔은 구속된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이 이상하다. 그 정치인은 영웅이 된다. 그들만의 난장판에서 영웅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맞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엄청난 특종이 터지면 그것을 덮는 또 다른 특종이 터지는 것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하게 보여 준 세상의 현실이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판단할 수조차 없다. 학수와 오른팔과 영웅이 된 유력 정치인은 삼위일체다. 금덩어리만 없었다면 자기들끼리 쿵짝쿵짝 하면서 해 먹고 또 해 먹고 봐 주고 또 봐 주고, 끌어주고 밀어 주면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만 영웅이 된다. 아니, 영웅으로 만들어 진다. 익숙하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을 만들어내는 프레임들. 학수와 오른팔은 반드시 만기를 채우지 않고 감옥에서 나올 것이다. 만약 쓸개 4권이 나온다면 그 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 현실적이니까.

 

 

쓸개가 덫을 놓고 그 덫이 성공할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은 학수의 부하 정환이다. 학수의 명령 한 마디에 목숨을 거는 인조인간 같은 정환은 어쩐 일인지 쓸개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래서 명함을 주면서 나를 “인질로 써”는 주옥과 같은 대사를 남긴다.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이다. 이 시대에도 이런 내부고발자(?) 혹은 양심발로자(?)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결말은 모조리 비극이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하던 일을 빼앗기고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잠시 그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돕고 싶다. 등등등. 그러나 잠시만 시간이 흐르면 깜빡! 하고 잊어버린다. 그것 또한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만약 4권이 나온다면 정관계 로비로 일찍 감옥에서 나온 학수에 의해 복수를 당하는 정환의 모습이 담겨야 한다. 그게 현실적이니까.

 

오늘 자 뉴스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며칠 전 대구에서 20대 청년이 뿌린 800만원 상당의 지폐에 대한 사연이다. 정신질환을 겪는 청년의 할아버지가 평생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이 800만원이라는 것이다. 사건을 접수한 지구대에서 혹시 그날 그 거리에서 돈을 주운 사람들에게 지구대로 돌려주면 당사자에게 전해줄 거라는 뉴스였다. 5만원권 160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얼마 전 홍콩에서의 경우처럼 돈을 주워가면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라고 하는데, 얼마나 지구대에 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나조차도 며칠 전 “800만원 길거리에 뿌려져”라는 기사를 보고 “아~~ 왜 나는 그 시간에 그곳에 없었던 것인가?” 낙담했었으니까.

진짜 연말이고, 내일이면 연시다.

며칠 후 “길거리에 뿌려진 800만원 모두 지구대로 돌아와 주인에게 전해져” 라는 기사를 꼭 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은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은 요즘이니까.

금괴를 두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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