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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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밥 못 먹는 애들이 있어? 없잖아~”

 

 

며칠 전 장모님이 저녁상에서 하신 말이다. 남쪽 어디에서는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무상보육 정책도 없어질 것 같은 상황을 두고 가벼운 대화가 오가던 중이었다. 아직도 밥 못 먹는 애들이 있어? 없잖아~ 라는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큰 장벽을 느꼈다. 무상급식이 이제는 보편타당한 가치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셨음에도 여전히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윗세대를 나는 설득하지 못한다. 전쟁과 기아,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이후의 세대들은 그것들은 오롯이 경험한 세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20대 중반 이후, 한국의 현대사와 그것이 가져 온 현실 사회의 병리를 나름대로 터득하고 이해한 나는 줄곧 부모님을 포함한 윗세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은 딱 한번, 설득 당하신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투표를 해주셨다(?) 다른 이들은 결코 설득할 수 없다. 실제로 그 시대와 그 현실을 살아보지 못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겪는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30줄이 넘어선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이다.

국가와 지역이라는 거대 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가족과 내 동네 주변에서 겪었던 갑작스런 외부자극의 충격과 무너지는 공동체성의 허무함은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몇 년 만에 찾은 고향의 동네와 골목, 거리와 도로는 너무 낯설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놀이터와 야산에는 빼곡하게 고층아파트가 자리를 잡았고, 전화 통화 없이도 5분이면 만날 수 있던 동네 친구들과 형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지.

 

 

“오콩코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서지고 산산이 조각나는 부족의 처지를 한탄했고, 우무오피아의 도전적인 남자들이 여자처럼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이 유약해져 버린 것을 애도했다.” (p.215)

 

 

오콩코는 우무오피아의 전사다. 우무오피아를 대표하는 사나이고 우무오피아의 자랑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부족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 모르는 양아들은 도끼로 내려찍을 정도로 잔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무오피아의 지구 반대편에서 이 책을 읽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원칙이고 그들의 문화와 부족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었다. 오콩코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강인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을 수 없는 남자였고 가장이었다. 자신의 뒤를 이을 강인한 아들이 없는 것을 애석해 하고, 오히려 자신을 쏙 빼닮은 딸아이를 보며 내내 안타까워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가족,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험난한 길도 기꺼이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북소리와 춤이 다시 시작되어 그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오콩코의 총이 발사되어 총알 하나가 아이의 심장을 관통한 것이었다.” (p.147)

 

 

그런 그가 실수를 한다. 축제 중 발사된 자신의 총에 한 아이가 죽는다. 그래서 7년 동안 유배를 떠난다. 미필적 고의라 하더라도 사람을 죽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관습대로 7년 동안 부족에서 내쫓게 된다. 우리들의 상식에서야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들에게는 부족이 전부였다. 전부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죽음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외삼촌이 있는 부족에서 7년을 지낸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이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백묵만큼이나 하얗다는 백인들의 이야기 같군요.”

“그런데 사람들 얘기가 그 백인들은 발가락이 없다던데요.” (p.91)

“지난 파종기에 한 백인 남자가 그들 부족에 나타났지요.”

“문둥이 말인가?”

“문둥이가 아니었네. 전혀 다르다네.” (p.163∼164)

 

우무오피아의 남자들도 백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들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우무오피아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는 백묵처럼 하얗다고 하고, 누구는 발가락이 없다고 하고, 누구는 문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발가락도 있고 문둥이도 아니며 별 거 아닌 것처럼 치부할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교회와 함께 정부도 가지고 왔다. 이들은 재판소를 세워 지역의 치안판사가 주민들이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 판결을 내리게 했다.” (p.205)

 

백인들은 우무오피아와 오콩코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에 정령이 깃들어 있고 그들 조상의 혼령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백인이 말하는 유일한 신은 그저 많은 신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이 가져 온 정부와 재판소도 무엇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부족의 어른들과 장로들이 모여 판결을 하고 앞일을 점치고, 부족의 길흉과 화복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저 부족의 땅에서 조금 떨어진 ‘버려진 땅’에 교회를 짓게 하면 버려진 땅의 정령들이 그들을 방해하거나 죽게 할 거라 믿었다. 비웃었다. 그런데 그 백인들은 살아남았다.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워 부족의 아이들을 데려갔다. 옷을 입히고 교육을 시켰다.

 

 

 

“내 딸 아케우니는 쌍둥이를 몇이나 낳고 버렸는지 물어보게나.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 있는가?” (p.160)

“우무오피아의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오콩코와 달리 새로운 체제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돈이 우무오피아로 흘러들었다.” (p.209)

 

우무오피아가 지켜 온 전통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모른다.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해온 것을 따라 배웠다. 그것이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쌍둥이를 낳으면 죽이는 전통, ‘오수’라는 일종의 불가촉천민 집단을 설정해 이들을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치하면서 일방적 차별을 하는 전통들은 부족 내 갈등과 상처의 씨앗이 되었다. 이 씨앗을 발아하게 만든 것이 백인들과 그들이 가져 온 교회와 문화다. 부족의 약자들, 여자와 아이들, 오수는 백인들의 교회로 흘러들어 갔다. 이들에게 백인과 교회와 그들이 가져 온 문화와 교육은 오콩코가 느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산산이 부서진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살아볼 만한 세상이 찾아온 것이었을 테다. 쌍둥이를 죽이고 같은 사람임에도 차별하는 이상하고 폭력적인 전통보다는 최소한 나은 것이었으니까.

 

 

 

“그의 삶은 하나의 큰 열정, 즉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용수철이었다. 그때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p.155)

 

 

오콩코는 7년 동안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우무오피아로 돌아온다. 돌아온 자신의 부족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콩코의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남자들은 힘을 잃어 버렸고 여성들과 아이들, 자신의 장남 은워예조차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단순히 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잠시 잃은 것이 아니라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더 이상 부족 사람들은 오콩코를 우러러보지 않았다. 오콩코가 우무오피아를 책임지고 이끌 촌장이라며 추켜세우지도 않았다. 오콩코는 복수를 결심하지만 죽는다.

 

 

“이것 외에도 포함할 것이 너무나 많아. 자세한 사항은 과감히 잘라 내야 할 것이다. 그는 많은 생각 끝에 이미 책의 제목을 정해 놓았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p.244)

 

오콩코에게는 전부였던 우무오피아가 백인의 눈에는 그저 그런 원시 종족 중 하나에 불과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넓기만 한 황무지 같은 땅에 사는 원시 종족 중 하나. 자신의 발이 닿는 곳이면 자신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강력하고 폭압적인 자부심이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발상. 그렇게 우무오피아와 다른 그렇게 그런 수많은 원시 종족은 하나하나 백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저 그런 자신의 책을 내는 데 몇 페이지 정도 할애할 수준의 그것에 불과했다.

 

이 책의 저자 치누아 아체베가 겪고 본 조국 나이지리아의 현실, 우무오피아와 오콩코가 겪은 현실은 우리가 쉽게 단정 지어 생각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박정희 향수로부터 생긴 눈곱을 벗겨 드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아무리 장모님과 그 세대를 설득하려 해봤자 헛일이다. 그것은 눈곱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 그 자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무오피아의 낡은 전통과 비인간적인 관습을 지금 시점에서 비판하고 당연히 무너뜨려야 할 악습 정도로 폄하하는 것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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