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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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빠르게 지나간 한 해였지만, 올해 유난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분들에겐, 하루가 1년 같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모두들 어려운 시기에 너무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어리바리한 제가 독서 목록을 처음 작성한 것은 1996년 12월이었습니다. 재수 끝에 대학입학이 확정된 직후,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문득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그 어떤 분들의 충고나 조언 없이, 아무런 기준과 생각 없이 이것저것 책을 잡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시절 까지 제가 과연 제대로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었을까 생각하면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천둥벌거숭이마냥 제 하고픈 일에 매달렸고,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책을 읽긴 했겠지요. 하지만 독서목록 작성의 이전과 이후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나름대로 기록을 남기며, 책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했습니다. 엉뚱하게 제 수준과는 한참 동떨어진 책을 붙잡고 밤새 씨름하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기막힌 깨달음과 감동에 떨기도 했습니다.

 

1996년 12월 처음 기록한 ‘1호’책은 바로 조반니 모스카의 《나의 학교 나의 선생》이었습니다. ‘ABE’라는 문학 전집 시리즈의 1번 책이었는데요. 어찌나 재미있고, 감동적인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4번으로 적혀 있습니다. 정확히 1997년 3월, 즉 제가 늦된 새내기가 되어 처음으로 캠퍼스를 밟을 그 시기였습니다.

 

정말, 그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을 만큼 까마득합니다. 아마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제 인생의 1997년은 여전히 기억과 혼동으로 어지러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 이 책을 읽었고, 사랑을 했으며, 음악에 빠졌고, 우정에 환호하며, 젊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올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문득 오래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저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무 하던 시기, 무심코 잡은 이 책은 그야말로 역사에 대한 무궁한 흥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고지식한 부하 그루쉬 장군 때문에 역사적인 전투였던 워털루에서 패배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나폴레옹, 또 단 하룻밤 만에 프랑스의 국가를 작곡했지만, 정작 그 노래가 전 세계를 휩쓸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무명의 작가 루제, 대서양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한 ‘대담한 몽상가’ 사이러스 필드와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만든, 그러나 본인은 지독한 가난과 조롱 속에 죽어갔던 수터 등 인류 역사의 커다란 변화를 만든 이들의 사소한(!) 일화, 일생은 역사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저자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만, 역사는 어느 위대한 한 영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름 없는(이는 아주 잘못되었지만, 흔히들 쓰는 표현입니다. 이름 없는 이들은 없습니다.) 민중들이 이 지구상 곳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불같이 태워가며, 역사는 발전해 왔습니다. 때문에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다소 과장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특정 인물, 특정 사건이 향후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분명 돌이켜보면 역사의 반전을 일으킨, 혹은 인류의 발전에 촉매제가 된 인물, 사건은 있어왔습니다. 꼭 책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 9·11 테러가 없었다면? 과연 후세인, 빈 라덴, 카다피 등이 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요? 물론 미국이 그들을 결국엔 제거하려 했겠지만, 아마 또 다른 명분을 찾느라 고생했을 겁니다.

 

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어쩌면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요. 아, 이 생각을 하면 또 피가 거꾸로 솟구칠 것 같으니, 그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2011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사건과 만나게 됐습니다. 바로 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입니다. 과거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 어리석은 김영삼 정권의 잘못으로 우리는 커다한 위기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실수를 또 현 정권이 반복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일단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이 조문길에 올랐으니 다행이지만, 앞으로 이 한반도의 격동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지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과 신중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역사는 분명 수많은 민중들이 만들어 갑니다. 만약 모든 이들이 자신의 할 일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의 중단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그 역사는 다음 세대들에 의해 또 다시 가공되고, 신화화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연과 광기가 겹친 사건 하나가, 한 인물 하나가 부각되고, 또 사라질 것입니다.

 

내 삶 자체가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면 허투루 사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잉여 인간으로 살고픈 욕망에 살짝 금이 가게 됩니다. 내 안의 역사, 내 몸이 기록하고 증언하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일생 고민할 문제입니다.

 

이 책은 당시 꽤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 같습니다. 다른 저자가 이 책 제목을 빌어 2권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자가 인용했듯, 괴테는 역사를 ‘신비스러운 신의 작업장’으로 표했습니다. 이 말이 꼭 종교적 의미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5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와, 지금 다시 페이지를 든 ‘나’는 과연 같은 하나의 인간일까요, 아님 전혀 다른 ‘나’일까요. 두렵고도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전 그동안 15년이란 세월을 온전히 내 역사로 만들어 왔을까요.

 

올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책과 함께 사색하고, 성찰할 수 있는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운명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도 결코 지나치게 너그러움을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신들은 아주 드물게만 한 인간에게 한 번 이상의 불멸의 행동을 허용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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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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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번은 선생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혀 보고 싶어졌다. 선생님 얼굴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이 떠올랐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내 배에 한 손을 올려놓음으로써 내 짐작이 맞다는 것을 시인했다. 함께 있으면서도 그 사람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립니다. 이제 정말 한겨울이라는 실감을 합니다. 옷깃을 여미게 되고, 괜시리 움츠려 듭니다. 자칫 몸과 마음 모두 작아질 수 있는 계절입니다.

 

솔직히 지크프리트 렌츠라는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가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대작가 중 하나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왜 그에게 그런 찬사를 보내고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금지된 사랑, 결코 행복으로 결말지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다면, 우린 어떻게 그 끝을 향해 달려갈까요? 결국 파탄으로, 엄청난 상처와 좌절,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랑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격정으로 그 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작품은 19살 고등학생과 영어 선생님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발트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어부들과 그 자식들. 그곳에서 고등학교 13학년 학생 크리스티안은 아름답고 쾌활한 영어선생님 슈텔라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결코 들켜서도, 말해서도 안 되는 사랑입니다.

 

크리스티안은 난생 처음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당황하면서도, 그 사랑이 행여 깨지지 않도록, 이 행복이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슈텔라 역시 제자와의 사랑이라는 금단의 벽 앞에 망설이지만, 크리스티안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슈텔라의 불의의 죽음으로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멈추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침묵의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 갑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오직 둘만의 비밀로 그렇게 사랑은 남습니다.

 

자칫 흔해빠진 신파극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절제된 감정과 냉정함으로 담담히 그려냅니다. 역자는 작가의 ‘순결한 에로틱’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랑이란 게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 오래 가슴 속에 남는다”는 것을.

 

사랑의 부질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사랑은 찰나의 격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크리스티안과 슈텔라의 짧은 사랑처럼, 절정에 순간에 허무하게 끝나버린 그 사랑으로, 오히려 영원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임을.

 

아직은 사랑을 믿고 싶은 철부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당신의 가슴이 내 등에 닿고, 내가 등을 돌려 당신을 어루만지고……. 그곳에서는 기억 속의 모든 것이 되풀이될 거예요. 지나간 일이 다시 일어나고 영원히 반복될 테죠. 아픔과 두려움이 함께 하겠지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다시 살려 내려고 애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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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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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합니다. 순박한 농군 그리고 평생 그와 함께 한 늙은 소의 이야기였습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그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주위를 둘러봤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지만, 의외로 젊은 세대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영화에 공감하고, 함께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중 태어나 단 한 번도 소를 직접 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또 소의 등을 쓰다듬거나, 여물을 쑤어 준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적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저 모두 우직한 소의 일생에 같은 감동을 느꼈을 뿐입니다.

 

이 책은 격동의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아온 소들의 이야기입니다. 120년 간 한 집의 외양간을 대대로 지켜온 어떤 소의 가문 이야기입니다. 노비제가 존재했던 먼 옛날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까지, 사람은 4대, 소는 12대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강원도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을 지켰던 많은 소. 그들은 주인과 함께 땅을 일궜고, 자손을 낳았으며, 때론 고기로 때론 주인집 아들·딸의 혼사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팔려나갔습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를 제 식구로 여겼습니다. 먹을 것, 자는 자리 하나 하나에도 사람과 같은 정성을 다했습니다.

 

작가의 유년기가 녹아있는 이 소설은 때문에 묵직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때론 너무 느려 터져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묵묵히 주인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온 소들. 평생 논밭을 갈고, 많은 새끼를 낳고, 그러다 자신의 몸뚱이마저 온전히 사람에게 내어주는 소들. 개와 더불어 소는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특히 이 땅의 소들은 온전히 인간과 함께 지내온 가족이었습니다.

 

소에 대한 작가의 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돕니다. 이렇게 한 가족과 같은 소들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말입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만든 추악한 시스템으로 소들을 가두고, 살찌우고, 다시 도축하는 과정. 그리고 그 비정상적, 반자연적 행태로 인해 생겨난 병들로, 다시 소들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인간마저 위험에 빠뜨려 버린 지금. 우리는 과연 소보다 나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끄럽고 무참하고 너무나 미안합니다. 소들에게, 모든 자연의 친구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 가장 먼저 한 짓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었습니다. 어떤 후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사육된 소를 죽여 만든 고기를 수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바다 건너 헤아릴 수 없이 먼 곳에서 키워지고, 죽임을 당한 소들의 고기를 먹습니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물론 싸다는 그것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혜택이지만.

 

생명에 대한 경시, 자연에 대한 무책임은 온전히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소가 건강하지 못한 세상, 강이 건강하지 못한 세상엔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이 만든 돈 때문에, 소중한 소들을, 소중한 자연을 무참히 살육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을, 자연의 생명들을 헤쳤습니다. 굳이 종교적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 죗값은 반드시 치를 것입니다.

 

한없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아온 소들의 이야기. 떨어지는 제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그런 이야기, 그런 책이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잠시나마 함께 살았던 소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유년시절 함께 했던 내 생애 첫 강아지, ‘복실이’가 그리워집니다. 때론 사람들보다 말 못하는 짐승들이 더 그리워질 때가 있나 봅니다. 오늘은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술 한 잔 해야겠습니다.

그냥 이유도 모르게 주책없이 가슴이 허전한 분들에게 권합니다. 그냥 그렇게 우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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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노동자 - 前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동에세이
이석행 지음 / 북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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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길지만 그가 어떤 말을, 어떤 약속을 했었는지 한 번 봅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정말, 눈물이 다 납니다. 그의 약속과 희망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는 모두 땀 흘린 만큼 대가와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아시죠?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죠.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는다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새삼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동을 팔아 그 대가로 삶을 유지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그들이 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의혹의 대상입니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전혀 생뚱맞게 빨갱이란 말들이 오갑니다. 세상에 자신의 임금을 올려 달라, 복지수준을 향상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빨갱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뭐든 이념의 색깔을 씌우면 통하던 세상, 물론 지금도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노동과 연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에, 그는 다시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말합니다.

 

김진숙 동지의 목숨을 건 고공투쟁,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 여기저기 경쟁력 강화와 국가경제의 회생을 이유로 해고당하고, 죽어나가는 노동자들. 여전히 대한민국은 노동 후진국가요, 복지 후진국가요, 인권 후진국가입니다.

 

대기업과 정부, 일부 특권층의 욕망을 위해 대다수 국민들이 희생해야 하는 불의의 시대, 이 땅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기차를 보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빼앗긴 노동자들.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이미 다른 노동자들이 그 일을 합니다. 또 다시 신자유주의, 경쟁력 강화, 노동 유연성 강화라는 폭주 기차는 노동자들을 덮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안 해본 게 없다며, 뭐든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봤다고 자랑(!)하는 그는 정작, 노동자들의 삶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직 대기업과 1%의 세력들을 위해 복무할 따름입니다.

 

여전히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시간, 부족한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자. 그들의 노고와 아픔과 분노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흔들리면 우리가 흔들립니다. 그들이 아프면 우리도 아픕니다. 그들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일하면 그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일한만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 그 상식을 이제는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석행 전 위원장의 바람대로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거대한 자본 권력을 누르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더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 자주성을 갖고 어떤 외부 권력으로부터도 억압당하지 않는 그날까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복직을 위해 몇 년간의 거리 투쟁에 매달려도 되는 않을 그날까지, 수많은 이주 노동자가 강제 추방의 공포와 사회적인 차별대우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그날까지, 수많은 문화 예술 노동자가 끼니 걱정 없이, 생활비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해도 될 그날까지 나는 더 크게 연대를 외치고 더 날카롭게 권력에 쓴 소리를 날려야 하며 더 오랜 시간 투쟁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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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김영명 지음 / 을유문화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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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94년.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라는 개정판이 아닌 《일본의 빈곤》으로 읽었다. 11쇄판을 구입했으니, 당시 꽤 팔렸던 것 같다. 당최 언제 책을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94년~95년 사이였으리라 추측해본다.

 

일단 책의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진다거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16년이 훌쩍 지난 ‘한물간’내용이라서가 아니다. 틀리건 맞건 저자가 그렇게 판단했고, 느꼈다면 그건 개인적인 그의 생각으로 존중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 일단 무엇보다, 고작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그것도 일본의 다양한 지역이 아닌, 동경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머문 경험으로 거창하게도 《일본의 빈곤》이라는 제목을 붙인 용기에 박수. 짝. 그리고 그럼에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을 다룬 책들이 당시 아주 적었거나, 종류도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생각.

 

구입 후 한 번 읽었던 책을, 16년이 훌쩍 지난 이제 다시 펼친 이유는 사실, 없다. 다만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궁금하긴 했다. 지금도 분명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비단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특이하거나,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기관을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북한을 연구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태반이 전혀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대해 그럴듯하게 전문가인양 말하는 이들은 넘치도록 많지만, 정작 제대로 중요한 문제를 꿰뚫어 보는 이들은 드물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처럼 남의 원고를 도둑질해 제 책인양 내는 인간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도둑X.

 

책의 내용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짧은 일본 체류 기간 동안 나름 많은 것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 머물기 전, 다녀온 후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보완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나름 많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려 노력했다.

 

저자가 일본이 빈곤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괴리, 부강한 국가와 빈약한 국민 생활의 괴리, 외국, 혹은 외국 것에 대한 숭배가 매우 배외적인 태도와 공존하는 있는 모순 등이다. 모두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일본은 국가가 부유함에도 국민은 가난한 모습을 보여 왔다. 토끼장 국민이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아울러 아직도 역사 청산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당당한 모습은, 일본의 갈 길이 여전히 멀었음을 보여준다. 12월 14일이면 정신대 할머님들의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이함에도, 여전히 일본은 반성을 모른다.

 

또한 일본의 서양에 대한 광신적인 추종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갸루는 영어의 ‘걸’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인데, 이는 서양 사람들에게 매우 호의적인(성적인 의미) 일본 여성을 비하해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쓸데없이 노래나 책, 방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을 남발하는 것에서도 그들의 유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16년 전 저자가 지적한 그러한 유아성이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보다 다른 것들을 앞세우며 인기를 얻는 아이돌들의 활약, 그리고 그 노래들에 무차별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어, 시청률 경쟁을 위해 저질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연예인들끼리 모여 잡담하고 상대방을 헐뜯는 방송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까지, 어쩜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제 종편까지 문을 열었으니, 저질 방송은 더욱 판을 칠 것이다. 벗기고, 농담 따먹기하고, 남 비방하고, 대신 깊이는 그 어느 때보다 깊지 않은, 그런 방송들이 판을 칠 것이다. 아, 재벌과 언론 족벌 들을 위한 찬양 방송, 독재자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방송들도 판을 치겠지.

 

암튼 책에서 저자가 말한 일본의 불쌍한 모습은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저자가 위대한 예언자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 테다. 정말 예측 가능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전히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라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경제성장 요인이 무조건 미국의 배경 아래 경제 발전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일 수 없다. 분명 국민들은 근면하고, 기업의 문화 역시 단점이 존재하지만, 장점도 있어왔다. 그들의 경제성장은 분명 배울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공격하고 비아냥거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동시에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비난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 그렇다.

 

영혼을 잃고, 다만 소비의 동물, 경쟁의 동물로 살아가서는 일본을 능가할 수도 없고, 일본보다 행복할 수 없다. 일본을 따라가는 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지만,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유아 같은 행동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그 사이 시끄럽고, 때론 갈등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으로 가야 후회가 없다.

 

저자는 나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영삼 당시 정권이 정신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게 공식적으로 사죄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칭찬한 것은 옳지 않다. 덕분에 일본은 1000회가 되도록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할머님들을 무참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정말 해선 안 될 짓을 한 거다.

 

앞으로도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로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어이없는 모습들이나, 꼴통 같은 짓거리에 흥분도 할 것이고, 때론 그들의 치밀함과 근면성에 감탄도 할 것이다. 그렇게 일본과 살아갈 것이다.

 

정답은 없다. 일본의 길이 있다면, 우리의 길도 있다. 평화적이고 영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며, 모든 이들이 적어도 의식주와 교육, 의료에 있어, 빈부의 차이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최선이다.

 

저자의 글 중 꼬집고 싶은 것은 참 많다. 하지만 난 오늘도 자랑스러운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자제 할란다.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최소한 그때의 생각에서는 진일보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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