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김영명 지음 / 을유문화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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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94년.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라는 개정판이 아닌 《일본의 빈곤》으로 읽었다. 11쇄판을 구입했으니, 당시 꽤 팔렸던 것 같다. 당최 언제 책을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94년~95년 사이였으리라 추측해본다.

 

일단 책의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진다거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16년이 훌쩍 지난 ‘한물간’내용이라서가 아니다. 틀리건 맞건 저자가 그렇게 판단했고, 느꼈다면 그건 개인적인 그의 생각으로 존중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 일단 무엇보다, 고작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그것도 일본의 다양한 지역이 아닌, 동경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머문 경험으로 거창하게도 《일본의 빈곤》이라는 제목을 붙인 용기에 박수. 짝. 그리고 그럼에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을 다룬 책들이 당시 아주 적었거나, 종류도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생각.

 

구입 후 한 번 읽었던 책을, 16년이 훌쩍 지난 이제 다시 펼친 이유는 사실, 없다. 다만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궁금하긴 했다. 지금도 분명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비단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특이하거나,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기관을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북한을 연구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태반이 전혀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대해 그럴듯하게 전문가인양 말하는 이들은 넘치도록 많지만, 정작 제대로 중요한 문제를 꿰뚫어 보는 이들은 드물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처럼 남의 원고를 도둑질해 제 책인양 내는 인간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도둑X.

 

책의 내용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짧은 일본 체류 기간 동안 나름 많은 것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 머물기 전, 다녀온 후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보완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나름 많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려 노력했다.

 

저자가 일본이 빈곤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괴리, 부강한 국가와 빈약한 국민 생활의 괴리, 외국, 혹은 외국 것에 대한 숭배가 매우 배외적인 태도와 공존하는 있는 모순 등이다. 모두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일본은 국가가 부유함에도 국민은 가난한 모습을 보여 왔다. 토끼장 국민이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아울러 아직도 역사 청산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당당한 모습은, 일본의 갈 길이 여전히 멀었음을 보여준다. 12월 14일이면 정신대 할머님들의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이함에도, 여전히 일본은 반성을 모른다.

 

또한 일본의 서양에 대한 광신적인 추종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갸루는 영어의 ‘걸’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인데, 이는 서양 사람들에게 매우 호의적인(성적인 의미) 일본 여성을 비하해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쓸데없이 노래나 책, 방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을 남발하는 것에서도 그들의 유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16년 전 저자가 지적한 그러한 유아성이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보다 다른 것들을 앞세우며 인기를 얻는 아이돌들의 활약, 그리고 그 노래들에 무차별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어, 시청률 경쟁을 위해 저질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연예인들끼리 모여 잡담하고 상대방을 헐뜯는 방송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까지, 어쩜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제 종편까지 문을 열었으니, 저질 방송은 더욱 판을 칠 것이다. 벗기고, 농담 따먹기하고, 남 비방하고, 대신 깊이는 그 어느 때보다 깊지 않은, 그런 방송들이 판을 칠 것이다. 아, 재벌과 언론 족벌 들을 위한 찬양 방송, 독재자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방송들도 판을 치겠지.

 

암튼 책에서 저자가 말한 일본의 불쌍한 모습은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저자가 위대한 예언자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 테다. 정말 예측 가능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전히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라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경제성장 요인이 무조건 미국의 배경 아래 경제 발전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일 수 없다. 분명 국민들은 근면하고, 기업의 문화 역시 단점이 존재하지만, 장점도 있어왔다. 그들의 경제성장은 분명 배울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공격하고 비아냥거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동시에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비난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 그렇다.

 

영혼을 잃고, 다만 소비의 동물, 경쟁의 동물로 살아가서는 일본을 능가할 수도 없고, 일본보다 행복할 수 없다. 일본을 따라가는 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지만,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유아 같은 행동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그 사이 시끄럽고, 때론 갈등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으로 가야 후회가 없다.

 

저자는 나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영삼 당시 정권이 정신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게 공식적으로 사죄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칭찬한 것은 옳지 않다. 덕분에 일본은 1000회가 되도록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할머님들을 무참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정말 해선 안 될 짓을 한 거다.

 

앞으로도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로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어이없는 모습들이나, 꼴통 같은 짓거리에 흥분도 할 것이고, 때론 그들의 치밀함과 근면성에 감탄도 할 것이다. 그렇게 일본과 살아갈 것이다.

 

정답은 없다. 일본의 길이 있다면, 우리의 길도 있다. 평화적이고 영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며, 모든 이들이 적어도 의식주와 교육, 의료에 있어, 빈부의 차이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최선이다.

 

저자의 글 중 꼬집고 싶은 것은 참 많다. 하지만 난 오늘도 자랑스러운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자제 할란다.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최소한 그때의 생각에서는 진일보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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