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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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는 무얼까. 이 질문에 시원스런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혹은 사기꾼이지 않을까. 때론 신념과 이상을 위해 무모하리만큼 자신을 내던지고, 때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함의 극치로 치닫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런 면에서 여전히 많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책은 너무도 유명하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이라는 특정 사건,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다.

 

오랜 시간동안 봉건 왕조와 가톨릭으로부터 억압받아왔던 스페인 민중은 마침내 혁명을 일으켜 체제를 전복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하지만 그 혼란기를 틈타 마치 박정희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 한 프랑코 장군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스페인 민중들의 용기 있는 저항에 감동한 수많은 이들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농민, 노동자, 엘리트 지식인 모두. 그 중 한 명이 바로 조지 오웰이었고, 그는 그렇게 혁명의 도시 ‘카탈로니아’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에 처음 닿았을 당시 느꼈던 감격은 이내 시간이 흐를수록 의혹과 실망, 배신으로 치닫는다. 전체주의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이들이 점점 자신들의 입장차를 절감하며, 끝내 분열하고 반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은 프랑크의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책은 조지 오웰의 개인적 경험을 담은 르포르타주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국제여단이 어떻게 단결했고,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분열되었는지, 상세히 담고 있다. 아울러 오웰은 당시 유수 언론들의 행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비단 자본주의 국가의 언론 뿐 아니라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 역시 포함된다. 현장의 진실을 왜곡하며, 특정 세력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오웰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후 오웰은 언론이라는 기능, 혹은 역할 자체에 회의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오로지 진실을 왜곡하는 데 열을 올리는 언론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언론의 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우리 언론의 참담한 현실이 겹치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을 대표로 하는 보수 언론들은 말할 가치조차 없지만(개인적으로 그들을 언론이라 생각한 적은 물론 없다. 그냥 매우 부정한 기업일 뿐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조차 자본의 논리, 패거리 논리에 함몰되어 무책임한 기사들을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다.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를 양산하는 언론. 사실의 정확한 전달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위해, 이해를 위해 과장, 왜곡을 서슴지 않는 언론. 그걸 과연 우리는 언론이라고 불러야 할까.

 

기자, 언론이라는 태생 자체가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기자는 곧 광대와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동종업계에서 밥을 빌어먹고 사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양심적 가치, 기자적 신념마저 저버린 이들을 보면 부끄러움이 밀려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이처럼 역사적 사건에 직접 뛰어든 작가의 고뇌와 환희가 공존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가치와 신념을 위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러한 숭고함을 일거에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음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임을, 오웰은 말하고 싶어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책이 오웰에게 ‘찬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평등 사회, 누구나 당당할 수 있었던 꿈같은 시간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어떤 경험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경험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재 진보진영의 분열된 모습을 본다.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또한 확실히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절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한 나 역시 감히 그 어떤 논평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국민들이 느꼈을 실망과 좌절감. 순수한 당원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 진영에겐 커다란 숙제로 남을 것이다.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혹은 정말 사소한 이익에 함몰되어 진보적 사회, 세상이라는 커다란 가치를 망각하는 일은 정말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유머가 담겨 있다. 매우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해도, 그 안에는 분명 웃음이 숨어있다. 그러한 ‘쓴 웃음’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것,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다.

 

스페인 내전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신념과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한 얼마나 연약한지 그대로 보여준 이 책은 분명, 남아있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긴 여운과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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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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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저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좋은 성장소설은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모든 아픔과 상처, 고뇌와 함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작품에 담겨 있는 경우, 독자들은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 알려진 《연을 쫓는 아이》는 성장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 저자의 모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전통이 생생히 전달된다.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그들의 너무도 굴곡진 삶이 그대로 아프게 전해진다. 아울러 이념과 종교, 인종을 떠나 진정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주고 있다.

 

주인공 아무르가 성장하는 과정, 어른이 되고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잘못을 바로 잡아나가는 용기 있는 모습에서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하산의 눈물어린 우정과 그의 아들인 소랍이 겪는 아픔은 독자들로 하여금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동시에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까지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겹쳐짐을 느낀다. 물론 두 민족의 역사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두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는 결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외세에 의한 고통과 절망, 같은 국가 구성원끼리의 갈등과 피비린내나는 살육, 다시 탈레반의 폭정과 미국의 무차별 폭격 그리고 학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스스로의 인간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고통 받고 있고, 또한 강대국에게 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되어 오랜 시간 고통받아야 했고, 그 이후 이데올로기 전쟁의 한 복판에서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논리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땅에서 주권의 온전한 행사를 펼치지 못한 채 식민지 국민처럼 살아간다.

 

역사상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반세기가 넘는 외국군의 수도 주둔에 대해 무감각하고,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문다.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국가, 국민, 민족에게 온전한 주권이 제 발로 찾아오진 않는다. 스스로 노예임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행복한 것일까.

 

어처구니없는 종북논쟁이 이어지고, 독재자의 자식이 차기대권을 예약한 것 마냥 설치고 있는 후안무치의 시대에,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고통에 눈감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쩜 속편한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을 느끼는 행복과 함께 저자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평화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선 안 될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탁월한 문장력과 진솔함으로, 행복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묵직한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동시에 전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행복이긴 했다.

 

소비가 전부이고, 생존이 진리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본디 주어졌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이 무엇인지, 오래 전 잊고 지냈던 옛 고향의 포근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생각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다.

 

하산이 아무르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아무르가 소랍에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용기와 사랑. 그 따뜻함이 간절히 그리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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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통신 - 유쾌한 지식여행자가 본 러시아의 겉과 속 지식여행자 13
요네하라 마리 지음, 박연정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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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양대국에 인접한 일본은 자주 ‘평화 바보’라고 불리지만 나는 ‘냉전 바보’라고 생각한다. 일본만큼 냉전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나라는 없다. 한반도 특수나 베트남 특수로 일본 경제가 받은 ‘은혜’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

이제껏 일본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핵우산 아래 편입되어 명확한 국익 의식조차 가지지 못한 채 주변 여러 국가를 보스(미국)의 눈을 통해 바라보던 습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적절하게도 독일의 콜 수상에게 ‘일본에게는 벗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라가 없다’라는 말을 들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연 일본은 다이내믹하게 변모하는 주변 여러 국가와 대등하게 직접적인 관계를 쌓아 갈 수 있을까?”

 

우리에겐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 일본에서 이렇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발언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균형 잡힌 의식으로 자국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보듬었던 이가 바로 요네하라 마리이다.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작가였던 그녀는 생전 “유쾌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진중하고도 묵직한 진실을 톺아보는 달변과 달필”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2006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가 남긴 글들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물론 묵직함과 함께 말이다.

 

이른바 ‘요네하라풍’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마력, 내공이 담겨져 있는 그녀의 책들은 대부분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 내게 첫 인연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문화탐색가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리는 그녀. 그녀의 제2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유쾌한 재담 뒤에는 따스한 애정이 담겨져 있다. 이상적으로는 완벽하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소비에트 체제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극도로 물질화,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아니면 체제 붕괴 이후 급속도로 황폐화되어가고 있는(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러시아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측면에선 여전히 러시아는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순간순간 날카로운 그녀의 ‘눈’을 느낄 때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느끼게 된다. 그녀의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힘을.

 

“어떠한 경제발전도 기술 혁신도 그 주체인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법”이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강하고 아름답다. 무거운 주제를 소소하고 유쾌하고 따스하게 풀어가는 힘. 그녀는 진정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제 첫 데이트를 마친 후, 소감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다. 그녀와의 즐겁고도, 중간 중간 필히 적바림(메모)해야 할 데이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진정 내가 만나고픈 여성의 매력을 소유한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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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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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국회. 전두환은 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증언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그는 “광주 발포 문제는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의 작전지침이 하달된 것으로…”운운하며 자신의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때 당시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뛰쳐나와 외쳤다. “당신은 살인마야!”

그러자 역시 당시 민정당(그러니까 현 새누리당이 맥을 잇고 있는) 의원들이 발끈해 일어났다. 감히 각하한테 살인마가 무슨 망발이냐는 반발(!)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당시 민주당 노무현 의원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명패를 그들에게 집어 던지며 외쳤다. “전두환이가 아직도 너희 상전이냐!”

정말 슬프지만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했던, 야심으로 가득 찼던 군인 전두환과 노태우. 이 두 군인이 만들어놓은 한국 현대사는 민중의 피와 눈물, 그리고 끈질긴 저항과 투쟁의 역사였다. 그들은 박정희가 남긴 독재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해 사용했고, 민중을 죽이고 탄압했다.

 

‘화려한 휴가’로 명명된 5·18 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그리고 그의 충실한 친구이자 수하로 권력을 이어받은 노태우. 이들에 대한 역사와 민중의 심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울러 이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하사’받은 집단과 그 후예들이 여전히 사회의 기득권, 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있는 지금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적어도 내게 이 명제가 부정당하는 순간, 삶의 진보를 향한 노력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의 반동 역시 분명 이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는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때문에 동시에 무책임한 발상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지금도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황강에서 북악까지》란 책이 있다. 전두환을 미화·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책에서 전두환은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될 정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해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영화와 스포츠, 섹스 산업을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다. 아울러 언론인들에게 대기업 직원과 같은 연봉과 대우를 해줘가며,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의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이후부터 조중동과 같은 쓰레기 매체에서 기사다운 기사를 찾을 수 없었고, 국민들은 프로야구에 목을 매달고 여전히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서로 지랄들이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사용했던 낡은 수법에 불과하다.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적인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미국에서 스포츠와 섹스산업이 번창하고, 경제동물 일본에서 세계 1위의 포르노산업이 돌아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을 역사에 맡기자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무지의 극치다. 그냥 덮고 가자는 것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한 것은 그에겐 용서와 화해의 차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화해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를 훼손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현실. 역사가 언제나 옳지는 않다.

 

책은 만화다. 하지만 페이지 넘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당시 전두환에 저항하며 싸웠던 이들, 그로 인해 또 다른 권력을 차지한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두환을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명패를 집어던졌던 노무현은 이제 없고, 전두환 일당을 용서했던 김대중도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전두환은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정의와 상식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두환은 삼청교육대를 통해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곤 그 명분으로 ‘정의사회구현’을 내걸었다. 이명박은 그 자신부터 측근 거의 대부분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공정사회’를 외쳤다. 소름끼치도록 닮은 두 정권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과연 무엇일까.

 

귀찮고, 알아봤자 속만 상하는 일들. 쓰레기 언론과 방송. 병신 같은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오로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차가운 소주 한 잔과 프로야구, 그리고 행여나 하는 로또 당첨번호. 진보에게 표를 줘도 실망하고, 이명박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박근혜에게 표를 주자니, 무언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이젠 지치고 귀찮다. 이게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바로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의사회’를 외치며 불의와 학살을 저지르고, ‘공정’을 외치며 ‘불공정’을 사회에 정착시킨 그런 정권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 들어, 전 정권들의 노력으로 10년 동안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 집행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되었다. 흉악범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통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면, 단연코 그 첫 대상은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1980년 5월을 피로 물들인 집단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용산의 참사를 불러온 이들, 진실을 은폐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광주에서 숨져간 이들의 정확한 수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지금이다. 살인이 아니라 학살이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쓰지만 반드시 마셔야 할 책이다. 80년 5월의 희생자들과 2009년 1월 용산에게 스러져간 이들에게, 그리고 국가의 권력으로 인해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전두환, 노태우. 당신들은 살인마다.

 

아, 1980년 5월의 학살을 모르쇠 했던 《조선일보》의 당시 사설을 옮긴다.

 

〈우리는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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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에세이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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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혹자는 그의 글이 너무 비관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는 너무 회의적이라고.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진보적 미래를 위한 희망보다는, 과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될 것인가 끊임없이 묻는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가 선생의 글을 탐독하는 이유다. 사실, 그렇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역사의 진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신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러나, 선생의 글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비관하지만, 절망 속에 침묵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자신의 삶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단절과 불안의 시대에 ‘경계에 서 있는’자로써의 역할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책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보여주는 행태에 적잖이 실망해, 유심히 읽지 않았던 터라, 그의 글만을 모은 책이 더욱 반가웠다. 가슴 아픈 일이다.

 

선생은 그동안 책들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성과 평화 그리고 공존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의 증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해왔고, 그 덕분인가 어느새 우리들에게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잘 알려진 대로 ‘이산(離散)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선생과 같은 재일조선인도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이라는 외적인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보자. 과연 우리는? 우리 역시 엄밀한 의미에 디아스포라가 아닐까.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은 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갈 곳을 몰라 떠도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여기에 물질적 숭배와 무한경쟁만이 남은 지옥과 같은 세상을 꾸며놓고, 마치 그것이 본래부터 존재했던 삶터 인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리가 감히 선생과 같은 재일조선인을, 탈북자를,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신부들을 또 다른 타인으로 규정짓고 배척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아니다. 생각해보니, 서울과 지방의 기형적 차이,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편 가르기의 논리, 비싼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거주민을 가르는 차별과 무시의 논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비정한 ‘돈’의 논리.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빌어먹을 ‘머조리티와 마이너리티’의 현실이 아닐까.

 

때문에 선생의 글을 다만 ‘우리’와 다른 ‘타자’의 글로써 인식하고 공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감과 소통이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의 거울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선생이 진정 원하는 바일 것이다.

 

선생을 통해 크게 깨우친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조국’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끊임없이 버리고 버리려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찌꺼기가 바로 ‘국가’다. 권력으로서의 국가, 통제와 탄압의 수단으로서의 국가, 얄팍한 애국심을 선동해 기득권의 유지에 복무하는 국가의 개념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와 타자를 나누는 무시무시한 배제의 논리. 그 속엔 국가라는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 국가가 시킨다면,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국가를 위해…. 이렇게 우리는 형체도 없는 괴물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유보한다.

 

선생은 “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듯한 애매한 혈연 공동체적 정서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공공적인 연계로서의 ‘조국’이라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를 계속해감으로써 새로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나에게는 바람직한 ‘조국’”이라 말한다. 지극히 동감이다.

 

일본에선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가치구미(승리조)’라 하고 진 사람은 ‘마케구미(패배조)’라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가치구미가 되기 위해 이웃과 친구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마케구미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렇게 만들고 있는 시스템이,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는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선생은 끊임없이 ‘국민주의’에 저항해왔다. 국민과 비국민으로 갈리는 순간, 이미 그 속에 인권과 평화, 공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비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현실은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지독한 차별과 구분을 없애기 위함이다.

 

선생이 꿈꾸는 세상,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는 것이 지구상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꿈만 같은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그 날을 간절히 바라본다.

 

“2018년 4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에 내렸다… 5년 전에 탄생한 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극적인 전환을 호소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결과 남은 에너지는 북한에 원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0년 전에 50퍼센트를 넘었던 비정규직 비율은 한때 70퍼센트 가까이 올라갔으나 새 정부의 정책 덕에 30퍼센트까지 내려갔다… 징병제에서 지원병제로의 전환을 실행에 옮긴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군대를 폐지해서 국경 경비나 재해 구조를 목적으로 한 경찰부대로 대체할 구상을 세워놓고 있었다… 재작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이 마침내 폐지되고 형법상의 간통죄도 철폐됐다… 정주 외국인 노동자나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이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일상생활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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