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89년 12월 31일 국회. 전두환은 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증언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그는 “광주 발포 문제는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의 작전지침이 하달된 것으로…”운운하며 자신의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때 당시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뛰쳐나와 외쳤다. “당신은 살인마야!”

그러자 역시 당시 민정당(그러니까 현 새누리당이 맥을 잇고 있는) 의원들이 발끈해 일어났다. 감히 각하한테 살인마가 무슨 망발이냐는 반발(!)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당시 민주당 노무현 의원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명패를 그들에게 집어 던지며 외쳤다. “전두환이가 아직도 너희 상전이냐!”

정말 슬프지만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했던, 야심으로 가득 찼던 군인 전두환과 노태우. 이 두 군인이 만들어놓은 한국 현대사는 민중의 피와 눈물, 그리고 끈질긴 저항과 투쟁의 역사였다. 그들은 박정희가 남긴 독재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해 사용했고, 민중을 죽이고 탄압했다.

 

‘화려한 휴가’로 명명된 5·18 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그리고 그의 충실한 친구이자 수하로 권력을 이어받은 노태우. 이들에 대한 역사와 민중의 심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울러 이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하사’받은 집단과 그 후예들이 여전히 사회의 기득권, 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있는 지금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적어도 내게 이 명제가 부정당하는 순간, 삶의 진보를 향한 노력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의 반동 역시 분명 이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는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때문에 동시에 무책임한 발상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지금도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황강에서 북악까지》란 책이 있다. 전두환을 미화·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책에서 전두환은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될 정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해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영화와 스포츠, 섹스 산업을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다. 아울러 언론인들에게 대기업 직원과 같은 연봉과 대우를 해줘가며,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의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이후부터 조중동과 같은 쓰레기 매체에서 기사다운 기사를 찾을 수 없었고, 국민들은 프로야구에 목을 매달고 여전히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서로 지랄들이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사용했던 낡은 수법에 불과하다.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적인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미국에서 스포츠와 섹스산업이 번창하고, 경제동물 일본에서 세계 1위의 포르노산업이 돌아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을 역사에 맡기자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무지의 극치다. 그냥 덮고 가자는 것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한 것은 그에겐 용서와 화해의 차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화해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를 훼손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현실. 역사가 언제나 옳지는 않다.

 

책은 만화다. 하지만 페이지 넘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당시 전두환에 저항하며 싸웠던 이들, 그로 인해 또 다른 권력을 차지한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두환을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명패를 집어던졌던 노무현은 이제 없고, 전두환 일당을 용서했던 김대중도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전두환은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정의와 상식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두환은 삼청교육대를 통해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곤 그 명분으로 ‘정의사회구현’을 내걸었다. 이명박은 그 자신부터 측근 거의 대부분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공정사회’를 외쳤다. 소름끼치도록 닮은 두 정권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과연 무엇일까.

 

귀찮고, 알아봤자 속만 상하는 일들. 쓰레기 언론과 방송. 병신 같은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오로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차가운 소주 한 잔과 프로야구, 그리고 행여나 하는 로또 당첨번호. 진보에게 표를 줘도 실망하고, 이명박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박근혜에게 표를 주자니, 무언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이젠 지치고 귀찮다. 이게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바로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의사회’를 외치며 불의와 학살을 저지르고, ‘공정’을 외치며 ‘불공정’을 사회에 정착시킨 그런 정권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 들어, 전 정권들의 노력으로 10년 동안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 집행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되었다. 흉악범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통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면, 단연코 그 첫 대상은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1980년 5월을 피로 물들인 집단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용산의 참사를 불러온 이들, 진실을 은폐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광주에서 숨져간 이들의 정확한 수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지금이다. 살인이 아니라 학살이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쓰지만 반드시 마셔야 할 책이다. 80년 5월의 희생자들과 2009년 1월 용산에게 스러져간 이들에게, 그리고 국가의 권력으로 인해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전두환, 노태우. 당신들은 살인마다.

 

아, 1980년 5월의 학살을 모르쇠 했던 《조선일보》의 당시 사설을 옮긴다.

 

〈우리는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