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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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입을 호호 불어가며 몇 십분 씩 기다린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도 않고, 냅다 지나가버린 경험. 그 때의 분노와 허탈감. 느껴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입에선 육두문자와 저주가 터지고, 인내심이 부족한 이들은 택시를 타고 그 버스를 추격하기도 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가끔 뉴스에 나왔다.

왜 버스 기사들은 그렇게 정류장을 지나쳤을까. 귀찮아서? 심심해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고, 또 절실하다.   


바로 살기 위해서다. 정해진 시간보다 5분이라도 빨리 한탕(한 코스를 도는 것)을 뛰어야 오줌 눌 시간이라도 벌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과거에 비해 버스 기사 분들의 노동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 그들은 엄청난 노동 강도와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현대의 정몽준이 언젠가 현재 버스요금을 “몇 십 원”으로 말했다 비난 받은 적 있다. 하기야 그네들과 같은 귀족들이 시내버스를 탔을 리 만무하지만, 십년도 전 버스요금을 기억하고 있는 정몽준의 무성의가 짜증나긴 했다. 아무리 볼만 차는 국회의원이라지만 적어도 서민 교통수단의 운임 정도는 알아두었어야 하지 않을까.

책의 저자는 20년 동안 서울에서 시내버스와 좌석버스를 몰았던 노동자다. 그리고 지금은 진보 월간지 “작은 책”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활 글쓰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는 열심히 일만 하는 노동자에서 삶의 어긋남과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로 변화해갔다.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싸웠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납치와 테러 등 생명을 잃을 뻔한 경험도 하며, 그는 끝끝내 자본의 개가 되기를 거부한 노동자였다.

만약 이 책이 비장한 노동자의 투쟁기로 일관했다면 그 열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감동은 덜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책은 우리네 삶이 소중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민들의 삶, 우리들의 아픔이 잔잔히 묻어난다. 노동자 문학이 가지고 있는 솔직함과 투박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귀한 글이다.

노동자들의 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쓸데없는 미사여구나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는 미덕이 있다. 아울러 억지로 감동을 주려는 불온하고 애처로운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을 나는 노동문학의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억지 감동, 잘난 척이 난무하는 활자 공해들 보다는 백만 배 낫다고 믿는다.

다음과 같은 글은 그냥 덤덤히 말하고 있는데도, 묵직한 여운과 아픔을 준다. 그와 함께 모진 고생을 함께 해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누라가 둘째 아기를 뱄다.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고 하는데 두말없이 지우라고 했다. 키울 자신도 없고 아기가 좋은 줄도 몰랐다. 병원에 가니 나중에 후회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마누라는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뭐 생각할 거 있느냐고 하며 아기를 지우라고 했다. 병원에서 표현한 대로 ‘아기를 죽여서’ 돌려 낳고 병원을 나왔다. 마누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원망했다. “괘씸아, 많이 아팠어.”

비단 버스 운전만 특별히 힘들다고 할 순 없다.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기가 막히고 화물차 운전, 건설 현장 장비 운전하시는 분들도 모두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노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살아있고, 적어도 떳떳하다. 하지만 그러한 노동의 가치는 지금 이 시대에 어느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을까. 자신도 5년 계약직이면서 이명박은 대한민국 비정규직을 모두 죽이려 하고 있고, 정규직 역시 여차하면 비정규직으로 떨어뜨린다며 공갈을 일삼고 있다. 노동자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불신하고 증오하게 부추긴다. 일제가 사용했던 방법 그대로이다.

환경 미화원, 버스 운전수, 택시 운전수 그리고 매일 매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 적어도 그들이 여의도 패거리들이나, 또 하나의 가족 운운하는 재벌 패밀리, 철통 밥그릇 사수 관료 집단들보다 아름다운 노동자임을 확인하며, 가슴 아팠던 책이다. 그들의 끈질긴 사랑이 눈물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눈물겨운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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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뒤늦게 리뷰를 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책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 (www.sbook.co.kr)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구독 신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