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부탁해
레나테 아렌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3.8

 

372페이지, 23줄, 25자.

 

혼자라면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 생각 속에서는 자신이 항상 옳아도 되고, 또 그걸 문제 삼는 사람도 없지요. 둘이 되면, 좀 달라집니다. 옳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리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한다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동의하는 말도 있고요. 셋이 되면, 아주 달라집니다. 여전히 내 생각이 옳을 수도 있지만, 다르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틀렸다는 지적도 늘어납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때로 나라는 존재가 무시된다는 것이지요. 소외. 내가 고집을 부린다면 더 심각해집니다.

 

프랑카는 독신의 40대 여류작가입니다. 드라마를 주로 쓰나 봅니다. 얀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애인으로 두고 있습니다. 얀의 아들 그레고리는 20살이 넘은 성인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느닷없이 여동생 리디아와 조카인 메를레가 나타납니다. 벌써 30년 정도 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는데 말이지요. 역시 사이가 틀어져서 떠나려던 리디아가 현관 앞에서 졸도합니다. 병원으로 옮겨 진찰 받으니 C형 간염이 간경변이 되었다고 합니다. 간이식만이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리디아는 마약을 한 지 30년 가까이 됩니다. 아마 그 여파겠지요. 메를레의 신상이 문제가 됩니다. 리디아는 날 선 상태이고, 메를레는 아무런 말도 안합니다. 기껏 하면, 엄마가 말하기를 이모는 마녀래요 정도. 애를 키워 본 얀이나 프랑카의 친구 에스터도 두손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같이 살면서 지내다 보니 말문이 트입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여 엄마의 동의를 얻으러 갑니다. 반대하지만 곧 굴복합니다. 아무래도 사회복지사의 입김을 당할 수는 없겠지요. 독일이니 아마도 전액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자마자 엘리자라는 짝쿵을 사귀는 메를레는 크게 달라져 보입니다. 리디아도 일단 반대 후 굴복 내지 타협 패턴이고요.

 

이야기는 수시로 과거의, 즉 어렸을 때 둘 사이의 이야기를 비추면서 회상하는 장면이 삽입됩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자매가 같이 살다 갈라서고, 따로 살다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해는 해도 용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요. 결국 제 3자인 메를레에 대한 공통 교감만이 둘을 연결해 주는 단서입니다.

 

리디아의 경우 제도권에서 보면 이단아입니다. 제도권은 현 사회가 유지되는 걸 지상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리디아 입장에서는 제도권이 자기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느끼겠지요. 그 말도 옳습니다. 제도권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 프랑카 입장에서는 리디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입니다. 반대로 보면 갖혀 사는 동물과 비슷한 것이고. 자기의 시각에서 보면 주변인들이 다 결함이 있지요. 그리고 그 주변인도 그의 주변인들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요.

 

어쨌거나 리디아가 프랑카 앞에 나타난 것은 나름대로의 화해의 몸짓이었겠죠. 그리고,  메를레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고. 왜냐하면 현 사회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이니까요.

 

150508-150508/1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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