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3.9

 

230페이지, 23줄, 26자.

 

마샤는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여름방학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지냅니다.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여기 저기 돌아다녀야 합니다. 바렌부르크는 아주 지루한 동네입니다. 모든 게 정체되어 있지요. 심지어 새로 이사온 사람은 동네 사람으로 쳐주지도 않습니다. 기존의 주민들만 실재하는 사람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앞에 있나 했더니 뒤에 나올 이야기 때문입니다.

 

13살 또래의 애들은 6주짜리 뜨네기 친구를 사귈 의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왕따인 마샤는 가서 지내기엔 너무 나이가 든, 놀이터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습니다. 거기서 율리아와 막스를 봅니다. 율리아는 9살, 마그는 7살이네요. 율리아는 엄청나게 예쁘네요. 그래서 샘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배에 큼직한 멍 자국이 있습니다. 얼마 뒤 브란트너 댁에 갔습니다. 초인종이 안 울려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브란트너 씨가 막스를 폭행하는 걸 봅니다. 집에 와서 할머니, 이웃 아주머니 그리고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 이웃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봅니다.

 

하지만 오히려 주의만 듣습니다. 현상유지가 마치 지상목표인 듯한 동네. 그래서 율리아와 막스를 꾀어 가까이 있으나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푸른 집으로 데려가 가둡니다. 하지만 그 집은 물도 전기도 없네요. 그러니 갖힌 아이들은 고생을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샤는 생각이 복잡합니다. 결국 빨래감을 갖고 왔다가 들켜 경찰이 찾아냅니다.

 

막스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이기는 중이였고(그래서 매우 뚱뚱하여 코끼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율리아는 외면함으로써 극복하기에 부정합니다. 마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함구하였지만 너무나 무거운 약속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할아버지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제는 아동폭력입니다. 무관심해 보이는 주변의 어른들과 함께요. 어쩌면 자신의 사생활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기에 남의 사생활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내 생활을 하고 있을 테니 너도 거기서 너의 생활을 해라. 그러면 피차 거슬리는 것을 눈감을 수 있지 않겠느냐?

 

참 난감한 주제입니다. 객관적이라고 해서 그게 진짜로 옳은 건 아니거든요. 거두절미하고 이 사안만 본다면 율리아 등을 때리고 지내는 건 잘못입니다. 하지만 인간사에선 디지털 세계처럼 0과 1만 있는 게 아니라 0.5도 있고, 0.4도, 0.6도 있습니다. 0은 선이고 1은 악인데, 0.5는 뭐죠? 그래서 남에게 뭐라 말하는 게 늦춰집니다. 망설여집니다. 나도 0인 것은 얼마 안되고 1에 가까운 건 좀 되거든요.

 

책의 원제목이 <letfanten sieht man nicht>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코끼리일려면 앞에 E가 붙어야 할 터이니 아마 오식이겠죠?

 

150323-150323/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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