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때기 포트
김이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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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의 검>을 재밌게 읽었기에 선택했다. 한국형 느와르라는 소개글도 한몫했다. 인천의 재개발 지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해서 7~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깔때기 포트’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현실의 공간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 살고 있거나 관계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하나의 풍경일 뿐이지만 많은 매체를 통해 간접 경험했기에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돈을 둘러싼 각종 인간의 욕망이 그곳에서 충돌한다.

 

영민은 가난한 대학생이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 중이다. 열심히 잡지를 배달해서 한 달 살 돈을 번다. 이때 고등학교 친구인 상구가 자신의 후임으로 그를 추천한다. 그 일이란 것이 불법 약품 배달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한 후 현찰을 받아오는 일이다. 이전 일에 비해 일도 쉽고 보수도 높다. 다만 불법이란 것이 문제다. 하지만 하류인생에게 이런 불법 배달은 큰 문제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구는 깔때기 포트로 옮겨가서 깡패가 되려고 하고, 영민은 약 배달 사업에 참여한다.

 

일이 잘 풀리면 그냥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대학을 졸업해서 다른 직장을 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짓밟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현실의 바탕 위에 하나씩 풀어놓는다. 인천상륙작전의 피해자 모임이나 재개발지구의 생활자 등을 옆에 놓고 우리 삶의 주변부를 살짝 들춘다. 이들을 주연으로 등장시킬 마음이 작가에게는 없다. 하류인생이지만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조배가 데리고 간 술집에서 만난 다해가 그 대상이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본 후 자기만의 공주였던 그녀인데 술집에서 만났다. 조배가 늘 찝쩍거렸던 그녀이지만 그녀는 영민에게 더 끌린다. 여기서도 나의 생각을 벗어나는 결말로 이어진다.

 

어떤 조직이나 위계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조배가 선배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그 이유다. 영민에게 허세를 부리고, 사장에게 가끔 대들지만 그 바탕에는 상승 욕구가 있다. 깡패 특유의 허세와 자랑질이 딱 그곳에서만 허용된다.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진짜 무서운 인간들은 언제나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움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과도한 욕심이 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영민은 너무나도 자기 절제가 강하다. 한 번의 폭주가 그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지만 작가는 이 상황을 아주 흥미롭게 만들었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자세하게 풀어준 에필로그는 어떻게 보면 사족이지만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삶의 순환 고리 중 한 단면이다.

 

소설은 잘 읽힌다. 과도하게 설정하는 부분도 없다. 현실의 욕망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삶을 보여주는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 거리두기가 과도한 감정의 소모를 막아준다. 감정이입이 절제되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영민과 다해의 로맨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격렬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보이지도 가슴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자기절제가 강한 영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삶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의 삶이 앞으로, 위로 향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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