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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꿈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아주 낯선 작가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유명 작가들의 추천글에 비해 너무나도 인지도가 떨어진다. 오히려 추천글을 쓴 작가들이 더 낯익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작가 이력을 보다 발견한 작품 중 한 권이 이전에 읽은 적 있는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이다. 이 소설을 아주 힘들고 어렵게 읽었던 기억만 있다. 아마 그 당시 읽었던 것도 공저자 보르헤스 때문이다. 그가 쓴 탐정소설이란 홍보에 혹해서 읽었고, 취향과 너무 달라 어려워했었다.
이번 작품을 읽게 된 이유도 역시 추천글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대표작이란 것과 몽환적 환상으로 채색되었다는 글에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1927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의 카니발 기간에 있었던 일을 3년이 지난 후 다시 재현한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을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억들은 뒤로 한 채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영웅들의 꿈’이란 제목만 보고 실제 영웅들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이 기대는 읽기 시작하자마자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대신 이 기대는 가우나의 솔직한 심리 변화와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생활상으로 대체되었다.
가우나는 자동차 정비공이다. 이발사의 추천으로 경마에서 1,000페소의 상금을 번다. 사실 이 금액이 현재 화폐로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이야기 속에서 큰 금액임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 돈을 자본으로 삼아 더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가우나는 존경하는 발레르가 박사와 친구들과 함께 이 돈을 모두 사용하기로 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 흥청망청 돈을 쓴다. 그러다 가면을 쓴 여자와 만난다. 정체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사흘 동안의 체험은 희미한 기억 속에 남겨진 채로 말이다. 뚜렷한 것은 가면 쓴 여자뿐이다. 이후 그는 이때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한다.
가우나의 삶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난다. 마법사의 딸 클라라다. 이 둘의 연애는 아주 현실적이다. 들쑥날쑥하는 감정의 변화는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솔직하게 드러난다. 미묘한 마음의 변화와 행동은 가우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쉽게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그 동네 최고의 미녀라는 클라라의 연인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감정의 변화는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 그 당시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일까? 이 과정 속에서 나의 과거 연애 모습들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의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랑이다. 물론 결론은 사랑의 확신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사흘 동안의 카니발 이야기와 클라라와의 연애와 다시 잊고 있던 카니발의 기억을 재현하는 마지막 부분이다. 작가는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한 번 더 가우나에게 경마에서 큰돈을 벌게 한다. 이 재현은 변화한 시대상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체가 불명확한 발레르가 박사 무리와 함께 그때를 재현하려고 한다. 이 상황 속에서 예측했던 것 하나가 맞았지만 다른 결말로 이어지면서 현실과 꿈의 사이를 되짚어보게 만들었다. 마지막 문장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고, 환상과 시간 속에서 한 인물의 운명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모두 읽은 지금도 그 환상 속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돌아보고 의미를 생각한다. 아직은 나에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