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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이 소설은 초반만 지나면 쉽게 읽힌다. ‘초반이 지나면’의 뜻은 등장인물에 적응하는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뒤로 가면서 쉽게 읽히지만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아픔과 슬픔으로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소설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취향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야기의 리듬과 구성과 소재가 적절히 버무려져 슬픔과 아픔과 시대와 새로운 논쟁을 제공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이전에도 사형제도에 대해 다룬 소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흉폭한 사건들은 그들의 격리만으로 쉽게 치유되거나 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들이 우리의 가슴에 숨겨진 폭력에 대한 원시성을 깨우면서 그들을 사형이라는 제도적 살인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소설을 접하면 사형제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한 순간의 실수에 의해 벌어진 일들로 괴로워하면서 집행일만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런 경우 그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은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두 형제를 팽개치면서 산다. 그런 어느 날 동생 은수는 눈이 멀고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자살은 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만 있고 어쩌다 만난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 짐이 된다고 애들을 다시 버린다. 그런 와중에 세상 천지에 먹고 살 걱정에 힘들어하는 윤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기어코 동생은 죽고 만다. 그의 비뚤어진 마음에 더욱 불을 붙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과거 중 일부이다.
또 다른 한명인 유정은 어린 시절 친척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인 부모의 대처는 너무나도 무력하였다. 아니 어린 소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행동이었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실을 시도하고 방황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인물인 모니카 수녀는 유정의 고모다. 이 수녀님을 통해 유정과 윤수는 자신들의 과거를 용기 내어 돌아보고 자신들이 버린 삶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닫는다. 용서를 빌고자하는 윤수와 용서를 하고자 하는 유정.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읽는 도중 몇 번인가 눈물을 자아내었다. 아울러 사회와 법이 용서보다 집행을 원하는 인물에 대해 용서와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면서 구치소에서 봉사하는 분들에게 깊은 존경을 가지게 되었다.
이 소설의 재미는 유정이 살인마 윤수에게 다가가는 과정과 그 중간 중간 나오는 윤수의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사형수를 만나러 간 그녀가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자신의 아픔만이 다른 사람들의 삶도 돌아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과 제도의 모순 속에서 고민하며 아파하는 마음에 있다.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재판의 결과는 분명 이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도중에 생각난 것 중 하나인 ‘광주 민주화 운동’ 확살의 범인에 대한 현재의 처분을 생각하면 더욱 열 받게 되지 않는가!
사회의 모순과 허점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성장과 아픔을 잘 섞어 단순한 슬픔이 아닌 의미 있는 작업으로 만든 공지영의 이번 소설은 다시 책을 펴 읽어도 그 슬픔과 아픔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