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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작가 이름과 남극 탐험에 혹해서 선택했다. 조금 무거운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는 조금 가볍다. 무게 잡고 남극 탐험의 혹독함을 다룬다기보다 두 남자의 삶과 운명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남극 탐험의 혹독함을 생각한 것은 펭귄 고기 때문인데 나의 착각과 얼마 전 읽는 생존기도 한몫했다. 이런 몇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머릿속으로 언제 떠나는거야?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겼다. 소설 중반까지 그들이 살아온 삶을 교차하면서 보여줬기에 이 의문은 더 강했다.
소설은 두 개의 교차 서술로 진행된다. 하나는 화자인 나와 현재의 섀클턴 박사고, 다른 하나는 나와 섀클턴 박사가 뭉친 후 100년 전 섀클턴 경의 이야기다. 이 두 개의 교차 서술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를 조용히 비현실적 존재가 비집고 들어온다. 첫 번째는 말하는 곰이고, 두 번째는 하늘을 나는 펭귄이다. 이보다 더 비현실적 일은 아마도 아마추어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탐극 탐험을 떠난 일일 것이다. 아무리 현대 장비가 좋아졌다고 해도 단 두 사람이 스노모빌을 타고 다니기에는 남극은 너무 크고 거대하고 위험한 곳이다.
섀클턴 박사는 생후 2달 만에 시력을 잃었다. 영국 귀족 가문에서 자란 덕분에 교육도 받았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장애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여기다 귀족이 평민들이 다니는 학교에 왔으니 좋아할 리도 없다.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섀클턴은 이것을 극복해낸다. 소설 중반까지 섀클턴 박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교차하는데 둘의 삶의 궤적이 너무나도 다르다. 나의 삶이 결코 평범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류지방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수학도 못하고, 학점 잘 주는 국문과 수업에 들어갔다가 국문과 운동경기의 용병으로 활약하는 정도 뿐이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를 했고, 이때 닦은 실력으로 특출한 위력을 발휘했다.
섀클턴 박사가 케인즈주의자가 되어 신자유주의 경제를 반대할 때 ‘나’는 아직 학생이었다. 이 둘의 첫 만남은 그가 뛴 마지막 경기였다. 이 만남을 그 당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의경으로 군복무한 후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지만 임용고시에 떨어진다. 그런데 그냥 쓰고 싶었던 글을, 돈이 필요해서 보낸 소설이 문학상을 받는다. 작가의 탄생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무너지면서 추락한다. 그 후 삶은 우리의 청춘들과 비슷하다. 이런 때 섀클턴 박사를 만난다.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된 사연도 조금 억지고, 교수직을 던지고 한국에 머문 것은 더 억지지만 넘어가자. 이 만남 후 진짜 남극 모험을 하게 된다.
남극 모험 이야기는 한 편의 판타지다. 앞에서 말한 말하는 곰과 하늘을 나는 펭귄이 등장하면서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들이 겪게 되는 모험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소설 전체가 판타지다. 100년 전 섀클턴 경이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삼류대학 교수가 내뱉는 말에서 지독한 현실의 처절함이 그대로 묻어나고, 계속 흥행작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는 매일 밥벌이를 걱정해야 한다. ‘나’의 이 현실은 어쩌면 작가가 절실하게 경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의 경험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박사처럼 귀족은 아니었다.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읽지 못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몰입해서 금방 끝냈다. 가볍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녹여내어 작가의 생각을 잠시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엮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는 작가이다 보니 읽는 내내 즐거웠다. 어둡지 않고 유쾌한 이야기와 돌출적인 존재들이 적절하게 어울려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그의 판타지 소설을 읽었던 이력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래도 변함없이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