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시선의 변화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싫은 여자
가쓰라 노조미 지음, 김효진 옮김 / 북펌 / 2017년 3월

가끔 큰 기대하지 않은 작품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이때의 감동과 즐거움은 기대한 재미를 만났을 때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책을 이전보다 더 많이 만난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한 권이다. 솔직히 말해 호기심은 있었지만 아주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책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다른 인생을 산 두 여인의 삶을 대비했다는 소개에 조금 끌렸던 정도였다. 하지만 진도가 조금씩 더 나가면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최근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영화를 검색하고,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는지 찾아봤다. 그리고 영화 속 나쓰코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하다. 각장의 앞부분에 변호사에게 나쓰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변호사인 데쓰코가 이 의뢰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며 그 속에 데쓰코의 삶이 조용히 녹아 있다. 재미난 설정 중 하나는 소설 속에 나쓰코가 직접 등장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겠지만 최소한 소설 속에서는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모두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상황 속에서 등장한다. 이 때문에 그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데쓰코다. 그녀는 친구가 없어 공부를 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여자가 변호사가 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 탓에 작은 변호사사무소에 들어간다.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툰 그녀에게 오기와라 변호사와 직원 미유키는 최고의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이 관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바로 나쓰코의 의뢰다. 먼 친척이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데쓰코를 찾는 그녀다. 처음에는 뭐지? 하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오면 이 둘의 사이가 처음 예상한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쓰코. 질투심 많고, 돈에 욕심내지만 참으로 서툰 사기꾼이다. 사기 치는 것도 허술하다. 이 때문에 상대방에게 들통나고 고소도 당하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수호천사와 같은 데쓰코가 있다. 우린 데쓰코를 통해 이 허술한 사기꾼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꾸몄는지, 이 사기가 그 대상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알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나쓰코가 그 대상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 대상에게 무슨 의미인지, 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아주 감상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고 공감했던 부분들이라 가슴속에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나쓰코의 평가는 ‘심보가 고약’하고, ‘타고난 사기꾼이지만 빈틈이 많다’로 요약할 수 있다. 심보가 고약해서 그녀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이다. 데쓰코가 의뢰로 주변사람들을 만나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는 인물들도 있지만 꼭 화를 내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매력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지만 허술해서 언제나 역공을 당한다. 데쓰코의 첫 의뢰도 결혼사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사기로 어느 정도 돈을 모으지만 그녀 자신도 호스트에게 빠져 파산한다. 날카로운 지성이나 꼼꼼하고 완벽한 계획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이 허술함과 그녀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꿈꾸고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나쓰코의 삶은 보통 사람이라면 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식을 버리고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다거나 조그만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등 아주 많은 나쁜 일을 한다. 그녀 자신이 허술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기를 치면서 자신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간다. 이 와중에 사기의 상대방도 행복함을 느낀다. 나쓰코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자 매력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녀가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데쓰코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나쓰코의 사건 의뢰로 시작하면서 시간의 변화를 알려주는데 이 또한 삶의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나쓰코가 나이 들고, 늙어가면서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나이가 많이 있지만 주변의 삶을 보면서 생각한 것과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곳곳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넣었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준다. 사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데쓰코에게 더 집중한다. 드라마 속 데쓰코 역의 배우가 영화감독이 되었고, 영화 속 나쓰코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개인적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이 두 여자의 삶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아!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니 이전에 재밌게 읽은 소설과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