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완벽한 1년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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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거의 읽은 적이 없다. 다른 장르소설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로맨스 소설이라니. 이런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역시 저자의 이력과 미스터리 요소가 있다는 광고 때문이었다. 이전에 이런 광고에 속아 읽고 후회한 적이 있지만 작가의 이력은 다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택을 잠시 후회한 순간도 있었다. 너무 여자들의 사담을 늘어놓는다는 느낌이 들 때였다. 장광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평범한 이야기까지 길게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서 이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뻔한 결말이 기대되었다.

 

시작은 1월 1일 새벽에 요나단 그리프가 달리기 위해 집밖으로 나오면서부터다. 그 이전에 그는 함부르크 신문에 오타에 대한 메일을 보냈다. 이 작은 시작은 그의 성격을 알려준다. 그리고 집앞에는 전처가 놓아둔 초콜릿이 하나 있다. 전처는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서 떠났다. 어떤 다른 요청도 하지 않고. 이 이혼이 요나단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절친과의 결혼 생활이 금전적으로 풍족하지도 않기에 더욱 더. 송년 파티로 공원은 지저분하다. 이 또한 그에게는 불만이다. 이런 그의 자전거에 가방이 하나 매달려 있다. 이 속에 한 권의 다이어리가 들어있다. 다이어리에는 1년 동안의 계획이 모두 짜여 있다.

 

한나의 이야기는 이보다 2달 빠르다. 그녀는 어린이집 교사를 하다가 틈새 시장을 노려 친구 리자와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어린이집이 끝난 다음에 아이를 돌보는 사업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잠에서 깨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 상대를 모른다. 남자 친구 지몬은 아니다. 내심 지몬의 청혼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나가 지몬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 아주 많이. 요나단이 얻은 다이어리 속 1년 동안의 계획도 지몬을 위한 것이다. 왜 그런 계획을 세웠냐고? 지몬이 자신은 암으로 죽을 예정이라 사랑하는 한나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청혼을 예상하고 간 멋진 만찬에서 말이다.

 

요나단과 한나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단순한 구성이다. 두 사람의 시간을 다르게 흘러가게 만들면서 결국 만나게 한다. 작가는 얄궂게도 서로가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살짝 살짝 빗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성격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요나단이 깐깐하고 냉소적이며 강박적이라면 한나는 너무나도 긍정적이고 여유롭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 보면 요나단의 변화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완고한 사람의 변화가 늘 긍정적인 사람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실제 요나단의 변화가 단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커진다. 이 변화의 순간이 누군가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나단의 직업은 권위있는 출판사의 사장이다. 실제 업무를 처리하는 사장이 있지만 중요한 결정은 그가 내려야 한다. 실제 숫자에 대해서는 그가 무지한 것은 제외하고. 그의 출판사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보다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낸다. 해리포터를 무시한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다. 좋은 작품이 나오지만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다양한 장르 소설이다. 그런데 완고하게 고전의 반열에 오를 작품만 낸다. 당연히 매출이 감소한다. 가문의 권위와 현실의 부조화는 늘 있는 일이다. 대중 소설을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선택의 문제는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다. 놀라운 것은 한 인기 작가의 낭독회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처럼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고, 시간이 살짝 빗나가고, 몸이 부딪히지만 상대방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완벽한 1년을 적어 놓은 다이어리다. 만약 500유로가 다이어리에 들어있지 않고, 그가 분실물센터에 맡기려고 한 날 쉬지 않았다면 이 둘의 인연은 그 순간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창조자의 손길로 이들을 가늘게 연결한 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도 만들고,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도 만들었다. 그리고 왜 요나단이 이런 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도 같이 넣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지만 풍성한 이야기를 넣어 강한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로맨스 소설도 이제 나의 위시리스트에 넣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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