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키가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올림픽을 3주 정도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취재기다. 재미난 것은 그가 올림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의 요청에 의해 시드니 특별취재원이 되어 올림픽 현장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가 바라보는 올림픽의 모습은 이미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한 산업이다. 필요하지 않는 경기가 늘어나고, 엄청난 금액의 광고비를 낸 업체들의 홍보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에피소드 중 코카콜라와 펩시에 대한 것은 아주 작은 해프닝이지만 올림픽의 변질된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올림픽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개,폐막식을 잠시나마 본 적도 거의 없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지루하게 입장하는 것을 몇 시간이나 볼 만큼 인내력도 없다. 하루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비싼 돈을 주고 들어간 개막식을 중간까지 보다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근처에 앉은 이탈리아 청년들의 열정은 이 거대한 축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개막식과 폐막식에 대한 혹평을 날릴 때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인 것은 바로 나의 생각과 맞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루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달리기다. 그가 올림픽 종목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종목도 마라톤이다. 남녀 마라톤과 1만 미터 달리기에 대한 글들은 애정이 가득하게 묻어 있다. 문장의 리듬이나 힘이 다른 종목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전체 코스를 돌아보고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레이스를 보고,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포착해서 자세한 해설을 풀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달린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철인3종 경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열정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 취재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들이 바로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대한 기록이다.

 

특별취재원으로 왔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보고 갈 수 없다. 다른 경기도 봐야 한다. 대부분은 일본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는데 한국과 대결이 있는 경우 눈이 번쩍 뜨인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력을 더듬고, 어떤 경기는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새롭게 한다. 그가 본 경기 중 재미난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마쓰자카가 등판한 모든 경기를 봤다는 것이다. 한국과의 마지막 경기는 지금도 구대성의 멋진 투구로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 다른 경기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색하다 이때가 이봉주 시대였는데 하루키의 글 속에 이름조차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세계가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올림픽 관람기였다면 승리와 패배에 초점을 맞추고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갈등과 해결의 실마리를 보게 되었다. 코알라와 상어에 대한 글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경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역시 그가 얼마나 올림픽이란 행사에 관심이 없는지 잘 보여준다. 나중에 후기에서 ‘다시 올림픽을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였다. 하지만 약 3주 동안의 경험을 즐거웠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지만 새로운 내용이 더 들어가고 이우일의 그림이 덧붙여졌다고 한다. 읽으면서 이 그림이 이우일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표지를 벗기고 읽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간결하고 투박한 그림체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왠지 제대로 그리다 만듯한 그림체인데 하루키의 문체와 어우러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과 끝부분에서 남녀 마라토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는데 처음에는 이 둘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록에서 그 이름을 찾지 못했고, 작가의 글 속에서 그들이 그때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취재원과의 차이가 너무 두드려져 승리의 기록만이 아닌 그 경기장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의 열정과 감정과 생각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톡톡 뛰는 문장들과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