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양보
정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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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처음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두 남자의 존재감이 사라진 곳을 다른 사람들이 채운다. 그런데 이들도 주인공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공들 중 한 명이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 같은 인물을 소설 속에 집어넣고 그 유명했던 벤처 버블 시대의 풍경을 만화경처럼 보여준다. 이제는 기억에 희미해진 그 당시를 사실과 거짓으로 잘 엮어서 펼쳐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 현실로 이어지고, 이 현실은 이제 다시 과거가 되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간단한 약력이 나오면서 이들이 걸어온 길을 현실과 연결시키고, 단군 이래 최고의 거품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갔는지 보여준다.

 

소설 속에 중요한 몇 명은 현실에서도 아주 이름난 사람이다. 미래피아의 회장 김도술은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이고, 그가 투자한 회사 중 한 곳은 그 유명한 안철수연구소다. 가명 혹은 간접적인 이름으로 이들을 가렸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이 중에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은 김도술이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파격적이다. 그 당시 벤처 사업가들이 개미투자자나 정부 보조금을 이용해 어떻게 흥청망청 사용하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보여준다. 그 당시 김도술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엄청난 욕을 하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 돈은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겼을 돈이다. 그렇다고 김도술을 적극적으로 변명할 마음은 없다.

 

전직 문학가와 전직 기자 출신 광고인과 전직 및 현직 안기부 요원들이 엮어 만들어내는 하룻밤의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핵심이다. 고급술과 여자들에게 돈을 쏟아붓는 그들의 행동은 건실한 벤처인들을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갑자기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와 돈을 그들은 주체하지 못한다. 김도술은 이것을 가지고 그들이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 말한다. 이때의 경험이 그들의 10년을 혹은 평생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겨우 2년 정도다. 이때 충실하게 준비한 회사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고, 남의 돈 쓰는 재미에 단순히 빠졌던 사람들의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어둠의 양보는 소설 속에 몇 번 나온다. 가장 길게 나오는 것은 역시 김도술의 말 속이다. 그는 “빛은 어둠의 양보 덕분에 탄생한 거야.”라고 말한다. 빛을 계속 보면 눈이 멀기 때문에 완전한 어둠 속에 들어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긍정과 버림을 말하는데 실제 정문술이 보여준 기부는 이것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을 좇을 뿐이다. 김도술이 벤처기업들을 한 건물에 모아놓고 흥청망청 돈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그가 미래피아 사장으로 돈 잘 쓰는 권준도를 앉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아주 많이 재현했는데 어느 선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신정아도 있고, 국정원 출신도 있다. 그 유명한 풀살롱 탄생 비화가 사실인지도. 술에 찌든 천재 문학가나 섹스 중독에 빠진 광고인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사실인지. 노골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나타내는 말을 책 마지막 부분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다. 작가가 벤처기업에 일할 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당사자만 알 것이다. 솔직히 이런 부분이 읽으면서 가장 먼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특이한 만화경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혼란스러울 것이고,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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