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소녀
박정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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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의 소설은 처음이다. 이전처럼 한국 문학 단편집을 자주 읽었다면 그렇게 낯선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낯익은 책 제목이 딱 하나 있다. 제2회 혼불 문학상을 수상한 <프린세스 바리>다. 이 소설도 아직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성장을 멈추고 거부하는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란 소개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했다. 당연히 밝고 경쾌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장이 이처럼 상당히 몽환적이고 분열적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소녀들의 이야기도 어떤 부분에서는 섬뜩했고, 또 어딘가에서는 안개 속을 더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인데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책을 받고 든 생각은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었다. 늘 그렇듯이 이 자신감은 첫 단편인 <초능력 소녀>를 읽으면서 무너졌다. 임신 후 결합쌍생아란 판정을 받았는데 17주차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서 일란성 쌍둥이로 바뀌었다. 이 둘의 이름은 수와 화다. 그렇게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이 둘의 사연을 집어넣고, 수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다. 미스터리 기법을 사용했지만 분명한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두 소녀의 등에 난 상처가 딱 맞물려 만들어내는 초능력이 작가가 책 끝에 말한 초능력과 살짝 연결된다. 그리고 화와 함께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모습을 짧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단편집에 계속 나오는 것은 모호함과 소녀와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보통이나 평범 같은 단어를 거부한다. <트레일러 소녀> 속 소녀는 허세를 부리지만 가슴 한곳에 슬픔을 묻어두고 있다. 엄마의 불륜과 자살로 상처받았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표제작 <목공 소녀>는 첫 장면에서 이상함을 느꼈는데 스스로 성장을 멈춘 소녀와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소요>는 소요가 현재 어떤 모습을 가졌고 생활을 하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녀의 현재가 불안하다. 이 불안감이 극에 달한 작품이 <파란 평행봉>이다. 자살을 시도하면서 관심을 가지려는 소녀와 화자의 관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의 사연이 힘든 삶보다 행복한 죽음에 있음을 보여줄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남아선호사상과 장애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이 두 곳에 자리잡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파국을 다룬다. 죽음 놀이로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소녀들을 보면서 애잔함을 느꼈다. <내 곁에 있어줘> 속의 소녀는 약을 팔면서 살지만 그 외로움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관계가 약과 돈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이 사이는 쉽게 매워지지 않는다. <미역이 올라올 때>는 처음에 쌍둥이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모와 조카라는 관계가 젊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드러날 때 그들이 받은 상처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모습에 가슴이 살짝 아린다.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는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소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 중년의 남자 또한 상반신 화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도배를 하면서 일당을 벌어먹고 살지만 베트남 처녀와의 결혼이란 환상을 품고 산다. 이 결혼이 성사된 후 삶은 또 누군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희망도 관심도 없는 모습으로 그냥 살아갈 뿐이다. <초능력 소녀>의 ‘화’처럼 복수라는 감정이라도 지니고 살면 좋을 텐데. 이렇게 이 단편집은 나를 깊은 어둠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섬뜩함을 느끼고, 그 상처와 버림받음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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