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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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세 번째 읽었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더 많이 마음속에 다가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의 감성이나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책이 바로 <어린 왕자>였다.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상황과 문장은 그 가치와 재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깊은 감동을 줄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깊은 감동은 지금도 느끼지 못한다. 아마 내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번역자 때문이다. 최근에 자주 본 이름이 황현산이다. 그가 낸 산문집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그 흔한 번역자들의 이름으로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믿을 수 있는 번역자란 말에 혹했다. 그래서 다른 번역이라면 내가 그 재미를 잘 몰랐던 <어린 왕자>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다시 읽었지만 낯선 문장과 이야기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집 어딘가에 있을 다른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번역에 대한 감상을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찾지를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귀찮은 것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익숙하고 반가운 것은 변함없이 나오는 그림들이었다. 표지의 그림부터 이전에 읽은 책과 똑같았다. 이때 반가움이 지나간 후 아쉬움이 다가왔다.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장도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언젠가 다른 번역본을 찾으면 몇 쪽이라도 비교하고 싶다. 가끔 같은 원전을 다르게 번역한 문장을 비교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한다. 이럴 때면 원문을 한 번씩 찾아보고 싶다. 어려운 문장이라면 아무 의미 없겠지만 쉬운 문장이라면 나의 해석도 같이 비교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불어를 전혀 모르니 이 소설은 상관이 없다. 처음 기대했던 번역자의 차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자 차이인지 아니면 세 번 정도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만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세상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부분이 늘었다.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등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분명히 이전에는 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 자 한 자 차분히 읽으면서 어린 왕자의 혼잣말에 집중한다. 어른들이 이상하다는 어린 왕자의 중얼거림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보다 오히려 삶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철학자의 말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때 묻은 것일까?

 

가장 유명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시작하여 어린 왕자와 헤어진 후 감상으로 끝나는 여정은 그렇게 길지 않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실제로도 한 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차분하게 어린 왕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가의 그림에 시선을 붙들어 매놓다 보면 시간이 더 흘러간다. 간단한 그림이지만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아뱀 때문에 더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물론 있다. 혹시 중요한 뭔가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도 쓸데없는 기우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많은 실수 중 하나다.

 

모자라고 생각했던 어른이 나였고, 마지막 장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나다. 내가 이 소설에 깊은 감동을 받지 못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심으로 보아뱀을 보기 전에 먼저 보이는 것이 모자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모자라고 말하기 전에 다른 것이 뭐가 있는지 고민할 것이다. 보아뱀이라고 하면 왜 그런지 묻고,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혹시 실제로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말한 아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분석하고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아직 순수한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을 길들인다 라고 한 것은 소외의 한 모습을 표현한 것처럼 다가온다. 이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언젠가 다시 읽게 되면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기를 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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