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우에서 온 편지
앤 부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책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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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시간은 나라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나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윤색하기 바쁘다. 어떤 나라는 잘 숙성시킨 와인처럼 역사의 진실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고 화장을 했다고 뻔뻔하게 진실을 왜곡한 채 자기 목소리를 내세운다. 이들이 하는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바꾼다. 밖으로는 화려한 말로 열심히 자신들이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 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과거사와 더불어 항상 같이 말해지는 단어가 있다. 용서다. 웃기는 것은 용서란 단어를 피해자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같은 부류끼리 모여 돈을 주고받은 것을 가지고 청산되었다니 이제 과거는 잊고 용서하자니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할 때라는 등의 말을 한다.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감정은 하나도 감안하지 않고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례는 바로 한국과 일본일 것이고, 유럽으로 넘어가면 유대인과 독일인이 될 것이다. 한일 사이는 제대로 청산된 것이 없다면 유럽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물론 미흡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게 역사를 끄집어낸 것은 이 소설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수용소가 있었던 곳이 바로 다하우다. 제목처럼 다하우에서 온 편지가 한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현실에 드러나게 만든다. 무대가 되는 곳은 영국이고, 주인공은 이제 중학생이 된 여학생 제시다. 여기에 외국 이주 노동자 문제를 같이 넣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과격한 장면이나 상황을 넣지 않고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하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일상의 모습과 실수를 제시에게 투영해서 잘못된 편견과 행동의 심리를 보여주고, 왜 그런 변명을 하게 되는지 알려준다.

 

과거 독일의 유대인과 현재 영국의 외국 노동자들은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으로 각 나라의 국민들에게 나쁜 이미지가 쌓인다. 이 이미지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증오의 배출구로 이용된다. 제시의 경우도 아버지가 파산한 후 프랑스로 일을 하러 간 것이 이 외국 노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닉을 밀어 다치게 한 사건에서도 가장 먼저 외국 노동자라는 편견을 드러낸다. 이것은 바로 잡히지만 그녀가 외국 노동자에게 질타를 했던 것과 자기 친척과 그 친구들이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행동에서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다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라고 하지 않고 누군가가 주입해준 이미지에 휘둘리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았다고 해도 바로 잡는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시에게는 좋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케이트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 하지만 탁월한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 배구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다. 이런 그녀를 깔보고 비하하는 무리가 있다. 그 중 한 명이 제시의 친척인 프란체스카다. 그녀가 케이트에게 내뱉는 말과 행동은 솔직히 유치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어린 케이트에게는 비수와도 같다. 그녀의 감성을 마구 헤집어놓는다. 케이트는 세상의 편견과 부당함에 대항해서 열심히 싸운다. 대단한 의지와 용기인데 그녀가 이것을 즐겨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도 잠깐 동안 내려놓고 쉽지만 현실이 그녀를 그렇게 몰고 간다. 제시와 케이트 사이에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갈등 몇 가지는 이 소설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진실과 사실은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왜곡된 안경을 통해 역사를 보면 제대로 볼 수 없다. 제시가 할머니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진실은 그 과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많이 사랑했던 할머니였기에 역사의 한 시기에 그녀가 저지른 잘못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용기가 과거에 받지 못했던 용서를 가져다준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구성이지만 이 만남이 우리 삶에는 필요하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잘 짜인 구성과 내용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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