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6일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산행을 둘러싼 연작소설이다. 산악소설하면 선이 굵은 작품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 아니다. 마흔 살 즈음의 여성이자 문예지 부편집장을 내세워 등산의 즐거움과 그녀의 삶을 무겁지 않게 다룬다. 제목인 <8월의 6일간>은 마지막 단편이자 그녀가 8월에 6일간 등산한 것을 요약해서 알려주는 정보다. 다섯 편의 단편이 모두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그녀의 일정과 시간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각 단편 앞에 코스가 나와 있어 만약 이 책을 읽고 그곳에 가보고 싶다면 참고할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대학생일 때 지리산 종주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당시 친구가 한 번 가자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때 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곳곳에 들었다. 물론 그때 며칠 간 종주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과 완전히 다르다. 그녀처럼 온천은 고사하고 늘 산장에서 자는 것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텐트와 침낭에서 자면서 며칠을 걸었다고 하는데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그런지 지금은 왠지 그것이 조금 부럽다. 그 후 다녀온 한국 산들은 모두 당일치기였으니 작가가 보여주는 몇 박 며칠의 등산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각 단편이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다 보니 등산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화자가 본 풍경의 아름다움과 등반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먹은 음식 등이 반복되고, 그 사이사이를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놓는다. 짧은 기간의 등산이 아니다 보니 잡지 부편집장 일을 마무리한 후 휴가를 내어 갔다와야 한다. 그래서 등산을 하기 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도 같이 나온다. 이것이 등산하는 중간에 단상처럼 흘러가고, 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과거의 인연들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등산이다 보니 같은 코스를 갈 때만 잠깐 같이 가고 분기점에서 자신들의 길을 간다. 인생의 한 모습과 아주 닮아 있다.

 

소설에 나오는 산들이나 봉우리 등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아마도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두 번 정도는 본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몇 명의 중요한 인물들이 있는데 그 관계도 재미있다. 일상에서 그녀와 친밀한 후지와라 씨나 한때 연인이었던 하라다나 혼자 등산하다 만난 사향노루란 별명을 붙인 무나가타 미치코 등이 바로 그들이다. 각각 현재와 과거와 등산의 인연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현실 속에서 뒤섞이면서 소소한 재미를 만든다. 몇 년 전에 헤어진 하라다의 결혼 소식이나 낯선 곳에서 만났을 때 감정의 흐름은 아주 묘하게 달랐다.

 

며칠 동안 하는 등산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소설 속에서 그녀가 싸는 짐을 보면 약간 놀란다. 아주 철저한 준비를 한 후 산을 올라가기 때문이다. 배낭의 크기나 간식이나 비상식량이나 물 등은 아주 현실적이다. 크게 공감하는 것은 오며 가며 읽으려고 들고 가는 책들이다. 내가 며칠 동안 여행을 갈 때 늘 이렇게 챙겨 가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루짜리 등산을 홀로 할 때 나의 호흡과 발걸음을 맞추면서 힘들게 산을 올라갔다왔다. 고개를 지나 능선을 걸을 때 느낌이나 정상에 섰을 때 바라 본 산의 풍경은 나도 모르게 산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얼마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가끔 마음이 복잡하면 이 등산이 생각난다.

 

스릴 넘치고 박진감 있는 등산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밋밋할 것이다. 하지만 등산에 약간이나마 관심이 있거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털어버리고자 하는 독자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낯선 지명과 밋밋한 등산 때문에 지루할 수도 있다. 작가가 곳곳에 드러내고 있는 섬세한 감정과 무리하지 않는 산행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잘 드러내어준다. 선이 굵은 산악소설들이 도전과 모험으로 긴장과 스릴을 가득 채웠다면 이 책은 그것을 벗어나 안정적이고 여성적인 감성으로 가득하다. 언제나처럼 이런 종류의 책들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등산에 대한 열망에 불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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