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보이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4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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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작가가 방송 작가로 일할 당시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피디가 좀 고치자고 하면서 원래 의도했던 이야기가 상당히 바뀐 채 방송되었다. 소설가로 데뷔한 뒤 낭만적 사랑 이야기를 제의 받으면서 이것을 전적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쓴 소설이다. 처음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가 1996년이었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다. 뭐 요즘이야 이런 연상연하가 유행처럼 지나가고 있지만. 그리고 현실과 마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여운을 남긴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이 시리즈들이 그렇게 많은 분량을 담고 있지 않다. 최소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그렇다. 적은 분량이다 보니 이야기는 깊이 파고들지도 않고 이야기의 곁가지를 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 즉 주인공인 정은영 아나운서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데 유일한 실패가 결혼이었다.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한 번 결혼한 적이 있었다. 사기 결혼을 당한 것이다. 그녀의 이혼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명했던 한 아나운서의 사연이 겹쳐보였던 것은 왜일까? 냉정했지만 치밀하지 못했던 그녀는 이혼을 하지만 양육권은 빼앗긴 채 방송국에 복귀한다. 결혼 당시도 유망한 아나운서가 아니었던 그녀는 라디오에서 성공을 노린다. 그런데 이 방송의 청취율이 영 시원하지 않다.

 

시간적 배경은 지금이 아니다. 그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가 전국을 뒤덮었던 2002년이다. 그중에서 한국과 스페인전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해 봄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정 아나운서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애인이 있다. 정우다. 같은 방송국 피디다. 대학 동창이자 입사 선후배 사이인데 어느 날 둘은 몰래 연애를 시작했다. 정우가 그녀의 집에 와서 머물다 간다. 밤을 세는 경우는 없다.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정우가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녀는 농담처럼 말하면서 거절한다. 이후 단 한 번도 둘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국 안에 그의 결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때 그녀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녀의 방송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한 애청자가 전화를 한다. 사연을 말한다. 마법과 누나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이름은 천온희다. 이때만 해도 그녀와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생일에 집안 가득 꽃들이 놓여 있었을 때도 그녀는 정우의 선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우는 그녀의 생일도 몰랐다. 그녀의 집근처 편의점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녀가 먼저 생각한 것은 스토커다. 그런데 그의 알리바이를 편의점 사장이 보증한다. 정말 마법일까? 천온희가 집에 뭔가를 처음 놓아둔 것은 하얀 새의 깃털이다. 실제 이야기도 바로 이 깃털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마술이 아닌 마법을 공부한다는 그의 말은 아주 현실적 사랑과 연애에 살짝 판타지를 덧씌운다.

 

소설 속에서는 두 개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정우이고, 다른 하나는 천온희다. 정우는 과거가 되면서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면 천온희는 그 틈새를 아주 잘 파고들어 그녀에게 평온함을 안겨준다. 정우의 결혼 소식보다 더 큰 상처를 준 것은 다른 여자와의 만남을 그가 속여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쿨한 척한 행동 뒤에 숨겨져 있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난다. 결혼 실패를 바라는 마음이다. 치졸한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단지 둘 사이의 몰래한 연애를 다른 사람에게 폭로하는 것으로 변한다. 감정을 정리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리고 천온희가 있다.

 

천온희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거짓으로 꾸민 부모의 이야기나 비현실적 마법 이야기는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아름답다. 하지만 의심이 살짝 자랄 때는 그녀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그가 어떤 폭력을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일시적이다. 온희는 정우와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해주고,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둘 사이에 마법은 현실의 어둠과 높은 벽을 깨는 도구다. 그 도구의 정체가 드러날 때 새로운 현실이 둘 앞에 놓인다. 이때 감정은 변한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런 감정의 변화를 잘 포착해서 그려낸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가벼운 이야기를 집어넣어 잠시 동안 무거움을 털어내면서. 드라마로 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마지막 감정을 연출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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