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J의 다이어리
전아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미스터 찹>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인 전아리가 다음 7인의 작가전에 연재하었던 글을 손봐 장편소설로 내놓았다. 공식적으로 218쪽이라고 하지만 실제 활자의 크기나 한쪽의 분량을 보면 조금 긴 중편소설의 분량이다. 덕분에 한달음에 읽을 수 있다.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으니 전아리풍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지만 경쾌하고 톡 쏘는 글이 상당히 매력있다. 시골의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병원으로 무대로 의사, 간호사, 환자 등의 이야기를 빠르고 유쾌하고 기발하면서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간호사 J의 이름은 정소정이다. 그녀는 라모나 종합병원에 오기 전 청담동, 홍대 등에서 좀 놀았던 언니다. 그녀의 이력을 듣다보면 놀랍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이 라모나 병원에 오기 전 실수를 하거나 잘못 때문에 병원에서 잘렸다. 간호사의 기본을 망각한 일도 있다. 이 병원에 오게 된 것도 느슨하고 한가한 일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놀다가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허술하고 나이롱환자 가득한 병원에 근무하면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그녀의 생각과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소정 간호사가 근무하는 병원에 한 할머니가 입원하기 위해 온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외롭기 때문에 병원에 온다. 시골에 홀로 사는 노인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한다. 박유자 할머니도 그렇다. 이 할머니에게 앙숙같은 할머니가 한 명 있다. 이순복 할머니다. 둘은 만나면 싸운다. 같은 방에 있어도 싸우고, 다른 방에 있어도 찾아가서 싸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천하에 저런 원수가 없지만 사실 이들은 깊은 정이 들었다. 아파서 보이지 않으면 걱정해준다. 이 소설 속에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 몇 개는 바로 이 두 할머니 때문에 생긴다.

 

이런 병원이라면 예상할 수 있는 보험사기 환자가 한 명 있다. 강배씨다. 그도 처음부터 보험사고를 낸 것은 아니다. 우발적인 사고 이후 이것이 더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자해공갈로 변했다. 덕분에 그는 이 병원의 단골손님이다. 그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욕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행동을 보면 웃게 된다. 치밀하게 계산해서 큰 사고를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이순복 할머니와 누가 더 강하고 아픈 사고를 덤덤하게 넘겼는지 하고 황당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엄청나게 아픈 상처를 입어도 상대방의 시선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모습은 가히 웃음 폭탄이다.

 

고등학생 꽃미남 환자는 이 병원에서 가장 제대로(?) 된 환자지만 늘 그를 숭배하는 여고생들이 병문안 온다. 좀 놀았던 언니 입장에서도 꽃미남 환자는 보는 즐거움을 준다. 그렇다고 이 미성년과 뭔가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정 간호사는 이 동네 연하의 미남 중국집 주방장 동석과 동거하고 있다. 동석은 병원장이 가끔 지나가듯이 유혹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필리핀 남자 환자가 한 명 더 있다. 돈을 벌어서 필리핀의 가족에게 송금하는데 이번에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그런데 그를 찾아오는 한 필리핀 여성이 있다. 애인인가 물으면 아니라고 한다. 둘은 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긴다. 외로움과 착각이 만들어낸 오해다. 이렇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롭다.

 

무겁지 않다 보니 잘 읽힌다. 놀던 언니의 생각과 행동이 곳곳에 드러나 툭툭 튀는 즐거움을 준다. J 간호사를 따라다니는 의사가 한 명 있다. 닥터 박이다. 그냥 한두 번 찔러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데이터를 요청한다. 정 간호사는 관심도 없다. 닥터 박과의 에피소드는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작은 재미를 준다. 하나의 중심 이야기가 펼쳐지는 와중에 소소한 이야기가 곁들여져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은 아쉽다. 너무 평이하고 바르다. 어떤 부분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속 한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던 이야기가 모범적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반전 같은 장면 하나를 넣었다. 그런데 이것도 코믹멜로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