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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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이방인>을 제외하면 단편 한두 편 정도가 읽은 전부지만 말이다. 아마도 까뮈의 소설을 이렇게 읽지 않게 된 이유도 <이방인> 때문이다. 신입생 시절 읽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에 왠지 다른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다른 책까지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적 허영심에 다른 책들은 읽었다. 단지 읽었을 뿐이지만. 그러다 새롭게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페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이도 더 들었으니 이 책의 가치를 더 잘 알겠지 하는 생각까지 곁들이면서 펼쳤다.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 오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죽는다. 오랑은 알제리 해안에 위치해 있다. 이 쥐들의 죽음이 조금 이상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이것을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몇 마리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수 백 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사람들 몸 위에 검은 멍울이 생긴다. 증상이 페스트다. 하지만 이것을 당장 밝힐 경우 벌어질 사회적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변할 수 있다. 아직 정확한 병명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신중하게 접근한다. 어떻게 보면 이 신중함과 느린 대처가 페스트를 더 키운 것인지 모른다. 요즘 한국의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과 살짝 겹쳐진다.

 

페스트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도시는 격리된다. 오랑의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다른 도시에서 오랑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과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재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 산다. 도시가 거대한 감옥처럼 변한다. 외부 물품과 전기가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영화는 계속해서 재탕하지만 할 일이 없는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완전히 공포에 잠겨 집에만 살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놀 것은 없지만 놀 것을 찾고, 술을 열심히 마신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오페라를 감상한다. 약간 부족한 생활이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술자가 있다. 그의 정체는 끝에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의사 리유다. 처음 그의 아파트에서 경비가 페스트로 죽었고, 출근길 복도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 실제 리유가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잔혹한 일이 된다. 페스트가 심해지면서 그의 일은 환자로 보이는 집에 가서 검사를 한 후 그 당사자를 격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한 일이지만 심리적으로 강한 압박을 받는다. 그와 동시에 격리된 환자들의 죽음을 봐야 한다. 한 소년의 처절한 사투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이런 것을 계속해서 본다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 같다. 피로가 점점 쌓여 어느 순간에는 소독 절차를 생략하는 위험한 행동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리유가 의사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본다면 그의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태를 바라본다. 이들 중 몇 명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활동하고, 쌓이는 피로 속에서 이 삶의 무거움을 견뎌낸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작가가 아주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감정이입을 최대한 차단하여 설명하고 묘사한다. 덕분에 읽기는 더 힘들어진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헤매게 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문체 때문이다. 감정보다 이성에 의해 쓴 글인데 마지막에 그랑이 하나의 문장을 두고 고민하던 것에서 형용사를 뺏다고 한 것과 왠지 모르게 연결된다.

 

페스트가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감정은 절제되고, 자극적인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몇 개의 숫자로 이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지만 현실은 아직 심각함이 모든 곳에 스며들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병에 전염된 사람을 격리하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도 격리 수용하고, 방역에 더 많은 공을 들이지만 전염병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병이 사라진다. 이 얼마나 인간의 노력이 무력한가. 인간들의 과학은 단지 이 전염병이 더 넓게 퍼지는 것을 막을 뿐이다. 영웅도 없고 성자도 없는 상황은 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막는 역할을 한다. 읽을 당시보다 지금 그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더 냉정하게 상황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일까?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같은 책이나 아니면 다른 번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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