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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일곱 살 소녀 밀리 버드는 어느 날 갑자기 쇼핑센터에 버려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던
그곳에 머문다. 그녀는 하나의 기록장을 가지고 있다. 죽은 것들의 기록장이다. 어린 소녀에게 죽음은 낯설고 신기한 것이다. 기록장에 죽은 것을
하나씩 기록한다. 처음은 집에서 키우던 개였고, 밀리의 아빠는 스물여덟 번째다. 그녀가 쇼핑센터에 버려진 것도 아빠의 죽음 이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며칠 동안이나. 정상적인 아이라면 울고 엄마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녀는 기다리라고 한
그곳에 숨고, 쇼핑센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터치 타이피스트 칼이다.
칼은 여든일곱 살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비를 잃고 슬픔에 빠져 산다. 터치 타이피스트라는
말처럼 그는 말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친다. 한 번 말을 순화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내 에비는 삶의 한 축이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손가락이 다친 것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강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 그를 보고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낸다. 요양원을 벗어난
그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밀리 버드다. 밀리가 온 것은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노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재를 이보다 더 무섭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애거서 팬서는 밀리의 길 건너편에 산다. 여든두 살이다. 남편이 죽은 후 집안에서만 살고
외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하나의 강박증세가 있다. 하루의 일과를 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자신의 노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밀리가 죽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나 칼이 타이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는 세상과 문을 닫았는데 창밖으로 몰래 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 집을 가꿀 생각도
없다. 몇 년을 이렇게 보내다 한 소녀의 등장으로 인해 집밖으로 나온다. 바로 밀리다. 세상으로 나온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외치고
소리치면서 말하고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밀리를 중심으로 모인다.
쇼핑센터에 머물면서 밀리가 쓴 문장이 하나 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표지에
수없이 반복되는 그 문장이다. 이 문장은 밀리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표시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쇼핑센터에서도 밀리는 오랫동안 머물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감시카메라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곳에서 만난
칼은 쇼핑센터 사람들이 아동성애자로 오해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는 마네킹은 다른 사람들에게 섹스용품으로 오해받는다. 조용하고 약간 여성적인 칼은
밀리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신 속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이것은 애거서도 마찬가지다. 셋이 모여 다니면서 좌중우돌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감정들이 밖으로 터저 나오면서 생긴 일일 뿐이다.
흔히 노인들을 지혜로운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칼이나 애거서는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기대어 삶을 살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제했다. 그들을 보면 괴팍하고 낯설어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밀리도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낯설다. 이 낯섦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읽으면서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달면서
다른 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억제된 욕망이 표출되고, 잊고자 했던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하나로 뭉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들이 느낀 상실과
아픔이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한두 개 중요한 이야기를 놓친 것이 더 심화시켰는지
모른다. 나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