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996년에 처음 나온 후 몇 번의 개정판을 거친 작품이다. 개정을 하면서 열여덟 편의 산문을 추가했다고 한다. 이런 개정증보판을 최근에 그의 시선집이나 산문집에서 자주 보던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전에도 쓴 글이지만 최근에 가장 많이 읽은 시인이자 산문집의 작가가 바로 시인 정호승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 열광하는 편이 아닌데 기회가 많이 닿았다. 오래 전에 산 시집 <서울의 예수>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기억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언제 읽을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읽지 않은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최근에 시인들의 산문집이나 여행에세이에 손이 많이 간다. 아마도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시인의 감수성과 관찰력에 대한 예찬을 들은 후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읽으면서 몇 번 감탄한 적도 있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의 젊을 때는 에세이집보다 소설과 시집을 더 읽으라고 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 나의 귀는 얼마나 얇은가. 덕분에 소설을 더 열심히 읽었고, 잘 모르는 시집도 사서 이해도 못하면서 읽었었다. 지금도 시는 어렵고 힘들다. 가능하면 하루에 한 편은 꼭 읽으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하루 세 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분의 1로 줄었는데도 말이다.

 

이 산문집은 괜히 비판적으로 읽게 되었다. 사소한 트집 같은 것을 잡는데 그것은 나의 오독이나 보충설명이 곁들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첫 이야기인 ‘나를 먼저 용서합니다’를 읽으면서 베드로와 가롯 유다의 일화의 해석이 과연 용서의 문제인지, 아니면 용서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속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이 생략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그가 세상을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낸 이야기 속에서 나의 뒤틀린 감성과 이성이 약간의 불만이나 트집을 잡는 경우가 있다. 실제 이런 경우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와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보니 이 몇 개가 부각되어 다가오는 모양이다.

 

이런 차이가 부각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은 그의 생각과 통찰이 더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조카의 파혼 소식에서 나온 이야기나 십자고상 등이 대표적이다. 나의 이성이 과학과 철학적 분석으로 그의 글을 나누다보니 그의 감수성과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생긴 간극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 등은 읽으면서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정채봉 작가와의 일화는 가슴이 먹먹했지만 부러운 마음도 생겼다. 이런 관계라면 누가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고.

 

시인에 대한 두 글이 있는데 하나는 탈북 시인 장진성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리뷰한 글이고, 다른 한 편은 고 박정만 시인 이야기다. 탈북 시인의 시는 너무 직설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삶을 사는 북한의 실상이 드러났다. 초근목피를 먹는 것으로 알고 쌀밥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나 쌀밥 먹었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선배였던 고 박정만 시인이 필화로 고문을 받고 알코올 중독의 폐인이 되었고, 그 여파로 술로 그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는 글에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얼마나 광범히 하게 퍼져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분단체제 아래 남북의 같은 민족들은 각각의 독재자들에 의해 엄청난 억압과 고통 아래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그리움과 추억과 사랑이다. 옛 추억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사람과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잔잔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감싼 채 고요하게 다가온다. 비판적으로 읽었던 몇 가지 이야기도 있지만 시인의 삶과 철학이 녹아있는 이 책에서 나의 삶도 같이 되돌아보게 된다. 아직 나의 마음에 시인처럼 모든 것을 담을 그릇도 여유도 없어 이 산문집을 비판적으로 읽었는데 아마 나도 시인의 나이가 되면 이 세상과 사람들을 지금과 다르게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맙습니다’는 자주 사용하는데 ‘사랑합니다’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이 좀더 나올 수 있게 나 자신을 만들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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