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 아이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작가가 바로 조이스 캐럴 오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한 번도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몇 권을 사놓았지만 어딘가 책장에 꽃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들과 달리 굉장히 많은 소설을 내놓았다. 최근에 나온 것만 해도 상당한 숫자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 비해 한국에 출간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뭐 나 자신이 많이 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단편이 각각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슷하다. 그것은 심리묘사와 상황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인데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은 섬뜩함 그 자체다. 평온한 일상으로 생각했던 것 뒤에 있는 뒤틀리고 일그러지고 섬뜩하고 왜곡된 감정들은 현실의 화사한 그림을 찢어내고 민낯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든다. 그래서 상당히 불편하다.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운이 남겨져 있을 경우 그 감정은 더 찝찝하다.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더 스산하고 무서워진다.

 

표제작 <이블 아이>는 나이 차이가 30살이 넘는 부부의 이야기다. 실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아내인 마리아나다. 이 둘이 결혼하게 된 데는 마리아나 부모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죽은 후 마리아나는 심신이 약해진 상태였다. 이때 오스틴이 그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었다. 나이 많은 남편의 친절과 관심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런데 결혼 후 오스틴이 보여준 말과 행동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첫 아내가 자신들의 집을 방문하고, 그녀가 이상한 말을 한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은 이미 사라졌다. 첫 번째 아내가 마리아나에게 뿜어낸 독설은 그녀의 영혼을 잠식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짓던 희미한 미소의 의미가 섬뜩하다.

 

<아주 가까이 아무때나 언제나>는 여고생을 사랑했고, 그녀에게 집착했다가 파멸에 다다른 한 남자 데즈먼드 이야기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여고생 리즈베스다. 이 둘은 도서관에서 만났다. 데즈먼드는 유식하고 여자에게 예의가 바르다. 빠져든다. 그녀의 엄마도 빠져든다. 그런데 이 소녀의 마음 한 곳에 돌을 던지는 언니가 나타난다. 이 작은 돌은 상당히 큰 파문을 일으킨다. 어느 순간 리즈베스는 그를 멀리하고, 데즈먼드는 그녀를 스토킹한다. 이 단편의 제목인 ‘아주 가까이 마무때나 언제나’란 글이 적힌 사진도 보낸다. 이 일은 어린 시절의 삶을 뿌리째 뽑는다.

 

<처단>은 가장 잔혹한 단편이다. 스무 살 대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부모를 죽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이 존속살인은 어머니가 발견될 때 한 말 때문에 바트를 살인자로 지목한다. 바트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어머니의 증언도 있다. 살인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머니의 마음이 변한다. 그런데 이 변화가 처음에는 모성애의 발로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으로 오면서 어머니의 다른 모습이 살짝 드러난다. 평범한 모자의 모습이 아니다. 섬뜩하고 스산한 기운이 흐른다.

 

<플랫베드>는 어릴 때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진 한 여자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그녀의 삶을 보여준다. 현재는 남자 친구도 있지만 과거는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성폭행의 나쁘고 아픈 것 너머에 왠지 모를 감정을 내품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가장 이상했던 부분이다. 그녀의 애인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되살리고, 그녀의 복수를 하려고 한다. 이 복수가 예상할 수 있는 멋진 장면이 아니다. 추악하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 복수 뒤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강렬하다. 오르가슴을 느낀다. 이제 새로운 둘만의 비밀이 생긴다. 잔혹한 관계에 대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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