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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ㅣ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평점 :
제목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의문이 먼저였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란 문구가 특히 그렇다. 그리고 뒤에 소실형이란 단어가 붙어 있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자를 보지 않았기에 형벌의 종류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왕따와 같은 사회적인 무시로 인한 징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형벌은 로버트 실버버그의 소설 속 무시형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그 소설을 읽지 않아 어떤 식인지 모르지만 놀라운 착상이다. 여기에 작가는 한 가지 덧붙인다. 배니싱 링이란 특수 금속을 목에 채운 것이다.
처음 이 링의 설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것은 손오공의 머리띠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채운 고리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번에도 이것을 더 발전시킨다. 이 링을 목에 걸면 여기서 나오는 전파 때문에 사람들이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옆에 존재하지만 알지 못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링에 몇 가지 금지사항을 집어넣었다. 1미터 접근 금지, 편지나 자살용 도구 사용 금지 등의 다양한 기능이다. 간단한 작동 원리는 생각에 링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목을 조이면서 다음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SF적 발상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보니 소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이 곳곳에 나올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으면 편할 것이란 생각을 막기 위한 설명들이 이어지고, 보이지 않으면서 생길 수 있는 위험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형벌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조금씩 알려준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이야기의 틀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아이디어에 안주했다면 조금은 지루했을 것이다. 주인공인 아사미 가쓰노리가 왜 처벌을 받고, 어떤 마음에서 이런 형벌을 선택했는지, 그의 과거는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몇 가지 사건들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 아이디어가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고, 다음 전개를 예상하게 만들면서 가독성을 높인다. 뒤로 가면서 갑작스럽게 튀는 전개로 조금 아쉬웠지만.
잘 만들어놓은 이 소설도 몇 가지 의문이 있다. 가장 먼저 드는 것은 가쓰노리가 왜 그렇게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마성의 여자 나카하라 아야나에 완전히 반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도 아니고,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소실형이란 형벌이 전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 실험에 대한 조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실형을 받은 죄수가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죽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것이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이야기를 축소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에 존재하나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존재를 두고 사람들이 귀신 같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소재의 빛나는 상상력이 사실 이 소설의 반을 차지한다. 그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은 그 다음의 문제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도하게 벌이지 않으면서 빠른 전개를 펼친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뒤집으면서 문제를 만들고, 이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투명인간이 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투명인간의 위력을 그는 보여주지 못한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배니싱 링이 조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편지를 보낼 수도 없다보니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살도 불가능하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소실형이 실제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형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