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 김용규의 책 중 이 책 이전에 읽었던 것은 철학이 아니고 소설이다. 인문학 책도 몇 권 사놓았지만 일단 소설을 먼저 읽었다. 지식소설이란 부제가 붙어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냥 약간 어려운 소설가 정도로 생각했다. 한해가 시작할 때면 인문학 서적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이것은 잘 지키지 않는다. 늘 부족한 시간을 쪼개 책을 읽어야 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서 빨리 읽어야지 하는 조급증이 생기면서 항상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읽고 싶은 인문학 책보다 소설이 더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생활 중 내 앞에 나타난 이 책은 처음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예상보다 쉽게 다가왔다. 물론 그 정도와 깊이 아주 얕다.

 

회사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 중 하나가 ‘생각 좀 해라’다. 정말 직원들의 보고서나 메일을 볼 때면 얼마나 대충 정성없이 글을 썼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설명도 하지 못하는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그럼 나 자신은 잘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니요’다. 왜 그런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에 대한 답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허술하고, 훈련 혹은 공부가 부족했는지 알려준다. 시험용 공부만 한 사람들이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저자는 생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생각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무한한 대상들(자연, 사회, 인간 등) 앞에서 혼란스러워진 우리의 정신이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그것은 보통 다양하고 복잡한 대상들을 몇 가지 단순한 패턴에 의해 정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패턴들이 서로 모여 더 크고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간다.”(13쪽) 그리고 이 생각의 도구들로써 다섯 가지를 말한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등이다.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의문이 살짝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단순히 이 다섯 도구만 있으면 생각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도구를 제대로 사용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저자는 기원적 8세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철학사와 과학사 등을 연구했다. 그 연구와 통찰의 결과로 인류 보편의 문명을 창조한 가장 핵심적인 지혜가 바로 ‘생각’이란 것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식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생각 이전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역사 탐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 다섯 도구의 역할과 쓰임새를 자세히 알려준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창 시절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단순히 암기만 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앞으로 공부해야할 것들을 던져준다.

 

개인적으로 이 다섯 도구 중 가장 놀랐던 것은 문장이다. “문장은 단순히 생각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 안에서 세계와 그의 질서를 구성하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324쪽)라고 말할 때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 문법과 문장의 명확성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철학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설명한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명확하고 좋은 문장이 만들어내는 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이 논리의 모순을 뚫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실체를 정확하게 바라보게 할 때, 가슴과 머리로 동시에 들어올 때 엄청난 정신적 희열을 느낀다. 그 한 문장이 때로는 평생의 문장이 되기도 한다.

 

생각의 도구를 통해 동일성과 유사성을 계속 말한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근대적 이성이 동일성을 근거로 한 사유 방식이라면,‘logos'가 상징하는 생각의 도구들은 유사성을 근거로 한 생각의 패턴이다.”(461쪽) 여기서 동일성은 유사성이 딱딱하고 날카롭게 경직된 특별한 형태라고 규정하고, 경계에서 조화롭고 융합하는 유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흑과 백으로 구분하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에 대한 강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확하고 명확하고 분명한 문장이 아니라 생략되고 왜곡되고 뒤틀린 문장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에 대한 학습서이기도 하다.

 

지식과 생각을 구분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혼용한다.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사용하듯이. 알고 있다는 것과 이것을 이용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분명히 다르다. 예전에 일을 하면서 아주 미묘한 차이를 그냥 구분하지 않고 했는데 어느 순간 이 미묘한 차이가 아주 크게 다가온 적이 있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비슷한 것이었고, 이 비슷한 것이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더 깊고 넓어졌다. 이 과정들은 사실 학창시절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인데 그냥 넘어왔다. 어쩌면 그 당시 선생들도 몰랐는지 모른다.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요즘 지식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검색된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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