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에세이란 말에 혹했다. 푸른 하늘과 맥주란 단어가 젊은이의 여름이란 단어와 함께 나열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하늘을 향해 맥주병을 치켜든 뒷모습도 휴가를 계획하는 나를 사로잡았다. 한 젊은이의 대단한 썸머 아웃도어 어드벤처라는 조그만 광고 문구도 한몫했다. 여기에 나의 착각도 덧붙여졌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친구와 아웃도어 어드벤처를 즐길 것이란 착각이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자마자 이런 착각은 산산조각났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나라나 장소를 돌아다니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인 모리사와의 청춘 시절 이야기를 다룬다. 대부분 십대 후반과 이십대다. 오토바이나 차를 몰고 하천이나 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사실 지명은 낯설고 위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곳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한국의 하천이나 바다를 살짝 떠올려보는 정도다. 이런 한계는 분명하지만 젊음의 열기 혹은 치기가 곳곳에서 묻어나올 때 나의 이십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순간의 충동 혹은 열정으로 동해로 차를 몰고 가서 해돋이 보고자 했거나 며칠 만에 제주도를 걸어서 한바퀴 돌겠다는 무지함 등. 그것이 상당히 일시적이었다면 작가의 그것은 상당히 지속적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이 에세이로 드러난다.

 

모리사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황당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야외노천탕을 만들려는 계획이나 103세의 건강한 할머니나 헤엄치며 똥 누기 등등이다. 가장 먼저 나온 ‘일본에서 가장 짧은 급류타기’는 예상한 결론이지만 생사의 순간을 경험한 그들의 모습이 긴장감을 불러왔다. 친구와 함께한 이런 경험은 살아가면서 평생 이야기 거리가 된다. 그런데 이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도봉, 이와이, 미야지마, 아폴로 등이다. 후기에 이들의 현재 삶을 간단히 알려주는데 젊을 때 열심히 산 그들이 지금도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모리사와는 성공한 작가고.

 

살다보면 젊을 때 열심히 같이 놀았던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하지만 이들과 만나면 그 시절의 이야기로 밤 깊어가는 줄 모른다. 그것은 그 경험이 얼마나 황당한지, 위험했는지, 재미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시간이 나면 혹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일본 산천을 돌아다닌 모리사와의 열정은 다양한 경험과 체험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잘 관리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들이다. 물론 이런 여행에서도 좋은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관리된 한계 속에서 대부분 벌어진다. 아니면 순간의 일탈에 의해서 생길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면서 이십대가 순간순간 떠오른다. 대부분 친구들과의 여행은 짧았지만 기억 속 한 곳에 조용히 자리잡고 갑자기 뛰어오른다. 성공하지 못한 무모함도 살짝, 무지함이 무모함으로 변했던 순간도 살짝. 기억은 추억으로 바뀌고, 이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로 조금씩 다가간다. 아마 작가도 이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보면 잊게 되는 그 시절의 기억들 말이다. 뭐 지금도 늦지 않았는지 모른다. 좋은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 배낭 하나 메고 혹은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면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작가처럼 황당한 경험을 하고, 애수에 젖고, 즐겁게 웃거나, 공포에 질릴 순간을 경험할지 모른다. 물론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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