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꿈
정보라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금 무거운 책이다. 빠르고 가볍게 읽을 것이란 예상을 했다. 착각이었다. 단순히 죽은 자를 본다는 것을 넘어 생사의 경계에 선 사람을 등장시키고 끈적거리면서 섬뜩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평범한 듯한 핸드폰 판매점 직원 김태경과 그의 여자 친구 성연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태경은 죽은 자를 볼 수 있고, 그가 본 귀신들이 그에게 다가온다. 성연도 귀신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온 귀신은 그녀의 몸을 빼앗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빙의되기 쉬운 몸이다. 물론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이 사연은 소설을 풀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장면은 태경의 꿈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 강문석의 약혼식과 묘한 부탁이 어우러진 꿈이다. 이 이후 친구이자 사장인 도영에게서 강문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장에 간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승승장구하며 권력자 집안의 여자와 결혼까지 했던 그가 죽은 것이다. 교통사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강문석이 자꾸 그 앞에 나타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이 부탁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하는 그의 삶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그가 찾아온 후 평온한 일상이 산산조각난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성연이다. 그녀는 죽음에서 살아온 존재다. 죽은 채 태어났다가 생명을 가진 것과 함께 땅에 묻힌 후 되살아났다.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 뒤에 초자연적인 삶이 숨겨져 있다. 그녀가 태경을 만나 섹스를 할 때 태경은 그녀를 때린다. 이 구타가 그녀에게 따스함을 준다. 단순히 마조히즘으로 풀어낼 수 없는 생기의 교환이다. 이 따스함의 생명력 때문에 그녀는 태경과 함께 가끔 나타나는 귀신들을 보면서도 그에게 끌린다. 그를 포기하고 다른 남자를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이것이 쉽지 않다. 만남과 구타와 섹스가 함께 이루어지는 이들의 관계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뭐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태경과 성연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강문석의 부탁에서 시작한 조사가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죽은 자의 꿈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분명한 실체와 정답이 없다. 귀신이 말해주면 간단할 텐데 죽임을 당했다는 것만 보여주지 누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잊고 살고 싶지만 꿈과 현실에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이 모든 상황을 성연은 알고 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와 함께 귀신들이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귀신이 그와 함께 있으면 자신의 욕망을 누그러트리고 그를 돌려보낸다. 왜 이러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듯한 이야기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추악한 사연들이 하나씩 나온다. 강문석이란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줄 때 그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삶도 죽은 자의 표식이 같이 묻어있다. 기본적으로 호러의 분위기를 가진 채 죽음의 원인을 찾는 미스터리 구성이다. 뭔가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원인을 하나씩 풀어낸다면 전체 그림을 명확하게 그릴 수 있을 테지만 왠지 모를 모호함이 가득하다. 이 모호함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그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작품 속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그것의 가장 분명한 존재는 바로 성연이다. 인간의 삶을, 따스함을, 생명력을 가지고자 하는 그녀의 선택이, 사랑이 이 모호함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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