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그녀
박수봉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한 쪽에 든 그림이 너무 작아 집중하기 힘들었다. 간결한 그림체는 보기 편안했지만 너무 많은 여백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었고,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빠져들었다. 사랑에 빠진 20대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연출은 보는 내내 설렘을 느끼게 만들었다.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타났을 때 서로 엇갈린 감정 때문에 이들 앞에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했다. 간결한 그림체와 많은 여백이 이 이야기에 상상력을 키워주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제목처럼 수업시간 주인공의 옆자리에 한 여자가 앉는다. 순간 그는 빠져든다.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멋지게 보이려고 왁스도 바른다. 하지만 어색하다. 이것을 지적하는 친구가 나타난다. 그 친구는 여자다. 키가 커지도 않고 잘 생기지도 않는 주인공의 장점은 순수하고 착한 것이다. 그의 이 장점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빛을 발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는 흔한 말로 호구다. 친구와 선배가 연애에 대해 그를 조언한다. 실질적인 도움은 별로 없다. 흔히 보았고 겪었던 과거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러다 둘이 하나의 조가 되어 과제를 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사랑에 빠진 20대의 순수함과 열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든다. 그가 꿈꾸는 사랑이 하나씩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쁨이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친구가 등장하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삼각관계가 긴장감을 심어준다. 서로 다른 곳을 본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연출 속에 두 사람의 순수함은 엿보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간결하게 연출하면서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감정의 세밀한 표현이 얼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눈이 사라진 자리를 간결한 움직임과 얼굴 윤곽과 절제된 대사로 가득 채운다. 볼 때는 몰랐는데 신기한 연출이다.

 

주인공과 수업시간 옆자리 그녀와의 관계, 주인공과 친구인 여자와의 관계가 뒤바뀐 위치에서 비슷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순수한 두 친구는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고백하려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한 여자의 선물을 사고 등록금에 조그만 돈을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에게 수업시간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도 그의 친절함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술 기운에 정체를 알려줄 때 둘 사이에 있었던 감정의 흐름이 주인공의 일방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친구의 감정을 알게 된다. 엇갈린 감정은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둘이 맞다면 사랑이 꽃피겠지만 짝사랑은 언제나 엇갈린다. 이 감정을 정리하고 바로 잡으려고 할 때는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런 사랑을 작가는 아주 멋지게 연출했다. 어떻게 보면 쉽게 보아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도 어떻게 구성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전달되어지는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 많은 대사나 화려한 그림체는 없지만 감정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짚어내는 대사와 간결한 그림체는 왜 이 만화를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는지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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