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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책 뒷장을 가득 채운 엄청난 수상경력은 사실 그냥 지나가기 어렵다. 한때 순위와 목록에 열광했던 과거를 되새기면 더욱 그렇다. 이런 수상경력이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는 것 때문에 더 많이 읽히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소년과 그 가족의 삶이 너무나도 기독교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덕분에 왜 그렇게 미국 기독교 보수들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되고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도 아마 이런 종교적 성장 과정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 영화나 다른 기독교 영화에서 쉽게 다루지 않은 부분을 심층적으로 파고든 점도 있다. 아마 그 문화권에서는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나 감정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크레이그가 경험한 왕따와 신에 대한 사랑과 연애는 읽는 내내 잔잔히 가슴으로 파고든다. 어떤 부분은 너무 사실적이라 작가와 부모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주인공 크레이그는 작은 키에 순한 성격이고 다른 학생에게 놀림을 받는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에게 학교와 집 모두 탈출구가 없는 공간이다. 이런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 역할을 한 것은 동생과 함께 잔 침대와 그림이다. 유년기에 들은 목사의 천국에 대한 설교는 성경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 매일 밤 성경을 읽어야 잠들 수 있을 정도다. 그의 일상은 너무 단순하다. 이런 일상에 변화가 온 것은 겨울 성경학교에서 레이나를 만나고부터다. 편지가 오고가고 둘의 감정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리고 방학 동안 크레이그가 레이나 집으로 놀러간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레이나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조심스럽고 간절하다. 크레이그 상황보다 좋지 않은 레이나 집 사정 때문에 더 그렇다. 부모의 이혼이란 큰 문제 앞에 이 둘의 사랑은 깊어진다. 위태롭다. 두 집안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십대 둘이 붙어 다니는 것을 용서하지만 육체적 쾌락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크레이그 경우 매일 밤 성경읽기를 통해 다져진 인내력에 그 사랑의 순수함마저 왜곡될 정도다.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레이나의 아버지가 이 둘이 벗고 자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의 흐름과 레이나의 얼굴 표정은 진한 여운을 준다. 이것은 그가 이혼할 예정인 아내가 집에 들어올 때 차 안에서 보던 장면과 이어진다.
흔히 우리가 보던 그래픽노블이 아니다. 그림체가 화려하지도 억지로 꾸미려는 장면도 없다. 간결한 선을 통해 드러나는 감정과 장면들은 짧은 대사와 더불어 흡입력을 놓인다. 인용된 성경의 문장은 크레이그의 감정을 대변하고, 어릴 때 동생과 경험한 일들은 가족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자신이 믿는 바를 강요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란 크레이그가 다른 삶을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다양하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레이나와 사랑에 빠진 그가 레이나의 또 다른 관계를 힘들어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담요란 제목은 레이나가 그에게 준 선물이자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왜 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그렇게 견고하게 쌓아놓았던 신의 성전이 한방에 무너졌는지 알려줄 때 이 담요는 그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려주고 위안을 준다. “꿈에서 깨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을 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을 돕기 위해 의식을 행한다.”(574쪽) 이 문장은 지금까지 부정적이었던 의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적 삶이란 거대한 틀 속에서도 사랑은 살아 움직이고 열정은 불탄다. 지금 순간 백지처럼 텅 빈 듯한데 시간이 지나면 그 공간을 여운이 채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