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대만 소설이다. 대만 소설을 몇 년에 한 권 정도 읽는다. 예전에 번역된 소설들은 대부분 로맨스 소설이나 현대 소설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시아 문학선이란 기획 아래에 출간되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책과 저자에 대한 이력을 보니 이색적인 것이 보인다. 원래 제목이 이것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주인공 이름도 바뀌었다. 책을 쓴 시기도 일제 치하 1943년부터다. 작가도 말했듯이 이 책의 3부와 4부 내용은 그 당시에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출간된 것은 해방 후다. 현재 제목으로 바뀐 것은 1956년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일제시대 한국 소설을 떠올려본다. 과연 이 작품보다 낫거나 그 시대를 더 깊게 다룬 소설이 있는지.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일제 말기에 이런 종류의 작품을 출간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유명 작가들이 친일 행적을 펼치던 시기였다. 그러니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좀더 찾으면 없지 않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3부와 4부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충격적이다. 아마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기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사실적인 삶은 억제된 분노와 함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친다.

 

주인공의 이름은 후타이밍(胡太明)이다. 초판은 후즈밍이었다고 한다. 소설은 타이밍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후 씨 집안의 차남인 그가 일제 치하 대만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갔고, 대만이 그가 방문한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시대와 어떻게 불화하고 고뇌하고 견뎌내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은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대만이 일제 치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와 어떤 비슷한 점과 차이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통해 이것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

 

일제 치하를 경험한 두 나라의 비슷한 것은 역시 친일과 차별이다. 이 소설 속에서 대만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당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급여다. 하는 일에 상관없이 그들이 받는 급여는 대만사람들의 몇 배다. 일본인이 요직을 차지하고 권력과 금력을 누릴 때 황민화를 외치던 대만인은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기생한다. 이들이 보여준 작태는 일제시대 친일조선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생존을 말하며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권력에 기생하지만 그 알량한 권력은 일본인 앞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단지 그들은 대만사람들 위에서만 힘을 발휘할 뿐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일제시대의 친일과 차별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상식과 사실 앞에 고뇌하는 타이밍에 있다. 일제 치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에게 비하의 대상이 된 대만인의 아픔이 가슴 한 곳에 파고들 때, 무력한 한 지식인으로 시대의 거대한 파도 앞에 너무나도 무력할 때, 다른 친구들처럼 대만의 독립을 외치지 않고 중용을 외치며 자신의 길을 갈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의 선이 겹치는 몇몇을 경험한다. 시대의 거대한 변화 앞에 눈을 가리고 현실에 순응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은 또 다른 먹먹함을 준다.

 

이 아시아문학선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재간된 것은 예전에 읽었고 새롭게 번역된 것은 최근에 읽었다. 사실 이 시리즈가 나올 때 읽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이야 이전에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걱정이 없었지만 대만 소설은 어떨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타이밍의 삶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고 자신을 그 위치에 대입하면서 읽게 된다. 특별한 영웅 행위도 없고 반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지만 현실적인 그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현재 대만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본에 대한 호의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은 또 다른 감정의 폭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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