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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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존 버든. 뉴욕 경찰의 전 에이스. 지난 사건이 끝난 후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그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전편에서 기대했던 훈훈한 마무리는 현실 앞에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게 삶이다. 그리고 그의 삶이다. 경찰학교에서 강의하지만 경찰 일은 더 이상하지 않고 있다. 지난 사건이 그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조금은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이런 일상을 깨트린 것은 잭 하드윅이다. 이상한 사건 하나를 그에게 소개하고 그 사건의 미스터리가 그를 유혹하게 만든다. 형사는 아니지만 다시 현실 앞에서 컨설턴트가 된다.

 

한 결혼식에서 신부가 살해됐다. 그 결혼식은 4대의 카메라와 1대의 헬기가 사방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유명한 신경외과의의 딸 질리언과 유명한 정신분석의 애슈턴의 결혼이었다. 모두가 축복하는 현장에서 잠시 사라진 신부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된 것이다. 그녀가 죽은 집은 애슈턴의 멕시코인 정원사였던 헥터 플로레스가 살던 곳이다. 당연히 제1 용의자는 헥터다. 그녀의 죽음과 동시에 그가 사라졌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살해 흉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옆집 여자도 함께 사라졌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가 살인자임을 말하고 있다.

 

전직 형사였던 그에게 이 사건이 오게 된 것은 잭이 이 사건에서 쫓겨나고 조금도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범인 헥터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은 질리언의 엄마다. 연봉 4천만 불을 벌고 있는 남편을 둔 그녀에게 돈은 조금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거니는 이 사건을 바로 수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아내 매들린과 현재의 삶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뛰어나고 이 일을 사랑한다. 잭이 준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 사건에 빠지고 2주 동안만 이 사건에 관여하겠다고 말한다. 아내와의 관계가 다시 삐걱거린다.

 

사건 현장을 찍은 비디오를 보여줄 때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범인이 있었다. 하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의 목을 자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주는 현장과 이야기와 증거와 증언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헥터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있다. 왜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그는 애슈턴의 정원사와 비서로 얌전하게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파헤치는 과정에 결코 유쾌하지 않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질리언의 과거다. 그녀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성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가해자로 살았다. 애슈턴과 만났던 것도 성 가해자들을 위한 학교 메이플쉐이드에서다.

 

이야기의 중심은 이제 번역 제목인 악녀에게로 향한다. 질리언에 대한 주변 사람과 엄마의 평은 최악이다. 그녀가 지닌 엄청난 미모와 너무나도 뛰어난 지능은 어린 시절 성 학대와 성 가해로 빛을 조금 바랬다. 그녀에게 당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헥터를 금방 찾을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 거니는 사건 보고서를 다시 검토하고 의문점을 메모하고 다시 한 번 더 DVD를 본다. 뭔가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많은 의문이 생길수록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하고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간다. 그의 한 발 다가가는 행위가 상대에게는 점점 더 강력한 압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은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한다. 단숨에 읽었다. 책 중에서도 다뤘지만 우리가 흔히 여성을 성 학대의 피해자로만 보는데 이 소설은 우리의 인식을 단박에 깨트린다. 여성 가해자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미 다른 소설에서 여자들이 성 매수자가 되어 어떤 가해자가 되는지 읽었기에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읽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면 그 가족은 더할 것이다. 악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반응인데 이 부분을 극대화해서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시킨다. 작가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범인을 흩뜨리고 독자를 엄청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 헤매게 하는 그 힘은 정말 대단하다.

 

640쪽이 넘는 소설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거니의 삐걱거리는 결혼과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 때문에 너무나도 이상한 살인사건이 충돌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밀실살인의 조건을 갖춘 현장은 혹시 비밀 공간이 있나 의심하게 만들지만 결코 없다. 이런 이상한 현장과 난무하는 이야기와 증언들은 작가가 단서로 앞에 깔아둔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조사할수록 점점 많아지는 희생자의 단서와 경찰 내부의 알력과 검사의 권력욕은 충돌하고 협력하면서 굴러간다. 조직의 힘은 아무리 뛰어난 형사 거니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하지만 거니는 그 수많은 형사들이 결코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날 때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처음 품었던 의문을 다시 품는다. 원제가 지닌 의미가 드러날 때 넘실거리는 악의의 무서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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