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사쿠라바 가즈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한 집안 여성 3대를 다룬 <아카쿠치바 전설>이다. 개인적으로 그해 나온 미스터리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몇 작품을 읽어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가 많은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당연히 전작 작가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몇 작품 읽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길을 끌게 된 것은 작가 이름과 함께 ‘대출 광고’라는 단어 때문이다.

 

지금도 케이블에는 대출 광고가 넘쳐난다. 몇 년 전 유명 탤런트가 대부업 광고에 나왔다가 혼 줄이 난 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저축은행이나 비슷한 금융권을 통한 광고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리로 착취하는데 그 빚의 고리를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대부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2-3년 안에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출하게 되지만 실제 원금은 그대로인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한때 카드 돌리기 신공을 발휘해서 카드 값을 막았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대부업을 통해 대출한 사람들은 대출을 통해 돌려막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원금이 사라질 수가 없다. 한 번에 몫돈이 생기기 전에는.

 

작가는 대출광고에 넘어가 다중채무자가 된 두 사람을 중심에 내놓는다. 사바쿠와 사토루다. 다루고 있는 시간은 2009년 팔월부터 2020년 유월까진데 실제 중심이 되는 시간은 2009년 십이월까지다. 불과 사개월 정도다. 하지만 이 시간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각 장의 제목으로 나오는 단어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데 읽다보면 크게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뒤로 가면서 하나의 큰 틀이 되어 이야기에 맞물려 돌아간다. 단어와 인물이 연결되면 더 분명해진다.

 

사실 읽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적지 않게 사용된 쉼표가 몰입을 방해했다. 단순한 호흡만 흐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앞뒤 문장의 의미를 되짚게 만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장치가 너무 쉽게 읽으면서 이 상황들을 지나가지 않게 하면서 좀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장치는 외국어 차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모두 ‘사’로 시작하는 이름으로 각 장을 꾸민 것과 묘하게 연결된다. 그냥 빠르게 읽다 보면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고 지나가는데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금방 이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목차로 돌아온다. 과연 작가의 의도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프롤로그 두 번째 장은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제목처럼 토막난다. 왜 살인을 했을까 의문을 품자마자 이야기는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만났고 어떤 만만을 이어왔는지 각자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각 화자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피해자가 되는 사바쿠도 살인자가 되는 사토루도, 사토루의 대학 동기인 사토코나 헌책방 주인인 사토도. 각 화자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을 말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시대가 만들어낸 환상이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다.

 

사바쿠도 사토루도 다중채무자다. 사바쿠는 프리터로 겨우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는 반면에 사토루는 대학을 다니면서 진 빚으로 고생하고 있다. 빚의 성격은 다르지만 둘은 이 때문에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사토루의 경우는 사실 자신의 부유한 아내에게 말하면 쉽게 갚을 수 있는 금액인데 왠지 모르게 그는 이 빚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 대학교수와 번역가라는 직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실 그가 사바쿠를 죽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인데 그녀의 빚도 그와 같은 3백만 정도다. 이 금액은 사토루 집 애완견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들어간 금액과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이 돈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부유한 사람에게는 자기 위안을 위한 조그만 지출일 뿐이다. 양극화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이다.

 

이 둘 외에도 등장하는 화자들은 돈이나 다른 것에 대한 빚이 있다. 삶이 지닌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는데 삶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얼마 전 한국영화로도 제작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신용카드로 인한 한 인간의 파멸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대출로 인한 비극이다. 실제 주변에서 ‘아차’하는 순간 이런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기에 더 공감이 간다. 일본과의 경제적 차이와 두 나라의 시간 차이를 생각할 때 지금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다.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생각할 때 결코 멀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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