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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 참 무서운 것이다. 새러와 잭의 사랑이 그렇다. 운명적인 이 둘의 사랑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잭은 아내와 아들을 버리지 못하고, 새러는 사랑의 감정 앞에 무너진다. 사랑으로 충만한 이야기가 갑자기 굴러 떨어지게 된 것은 그 유명한 매카시즘 때문이다. 2권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그 때문에 비롯한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각자에게 너무나도 파란만장한 사연도 그 삶이 끝나는 순간 소멸한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알려준다. 그 어떤 환상도 낭만도 과장도 없이.
다시 만난 두 연인의 사랑은 불탄다. 오빠 에릭도 코미디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매카시 광풍은 에릭의 공산당원 전력을 문제 삼는다. 공산당원을 고발하라는 압력이 에릭에게 내려진다. 낭만적이고 연약한 그에게 이 압력은 너무나도 무섭다. 양심을 팔고 옛 동료를 넘겨 지금의 화려한 삶을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양심이다. 이 때문에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동시에 연좌제처럼 퍼지는 매카시즘에 따라 새러도 신문사에서 쫓겨난다.
에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매카시즘 광풍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요즘 조,중,동 등에서 떠들고 있는 종북 논란이다. 하나의 틀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사방에서 압박을 가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고 이 전략이 그 시대처럼 완벽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종복 논란을 되풀이하는 것을 본다. 무섭고 끔직하고 황당하다. 지금도 이런데 1950년대 미국은 어땠을까? 뭐 한국의 80년대 이전만 해도 종북은 곧 사회적 매장과 죽음과 동의어였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고 협박하고 조장한 인간들이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현실은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이다.
소설 속에 드러난 새러의 재능은 대단하다. 하지만 시대의 높은 벽 앞에 그 재능이 쉽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역지에서 다시 명성을 얻게 되지만 남편 없는 임산부라는 사실이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마음껏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을 할 정도는 아니다. 불행한 시대의 현실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두 남자를 떠나보내게 만든다. 읽는 동안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잭이 ‘나는 몰랐다’고 말할 때 앞에 깔아둔 장치 중 하나가 겹치면서 우리사회에서 낯 두껍게 그 시절을 정당화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진심을 담아 반성하고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게 제도적 법적 사회적 장치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흔히 내가 살아온 것을 책으로 쓰면 소설 책 몇 권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누구나 굴곡 많고 힘들고 어렵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왔다. 나만 그런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나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무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다 사라지게 돼. 내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지.”(367쪽)라고 말할 때 이 소설이 추구하는 행복과 개인의 삶이 어떤 것이 조금은 윤곽을 잡게 된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한 순간을 도려내어 책으로 낸다면 한 편의 멋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를 뒤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했지만 결코 완벽하지 못했고, 그 사랑으로 고통스러워 한 사람이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배신 이야기라는 역자의 표현에 일부분 동의한다. 이 모든 것을 현실과 사회의 높은 벽에서 비롯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 명의 개인이 이것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그 사랑이 아린지 모르겠다. 하나 덧붙인다면 1권에서 예상한 결말이 없다는 것과 이 결말에 고개 끄덕이게 된 것이 반갑고 고맙고 즐겁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 새러의 일생은 읽는 내내 감정의 높낮이를 극단적으로 오르내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