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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에세이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서경식 씨의 책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책이 <나의 서양음악 순례>다. 이 책을 통해 그냥 이름만 기억하고 있던 그를 어느 정도 윤곽을 잡게 되었다. 이번 책은 그에 대한 좀더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마일리지로 사놓은 다른 책들도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솟아났다. 나의 독서 취향 상 단숨에 그의 다른 책을 읽지는 않겠지만 머릿속 한 곳에 그의 책들이 자리를 잡고 똬리를 틀고 앉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너무 쉽게 보아 넘기고 당연하게 여러 가지 현실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발전을 보여줄 것 같다.
이번 책은 머리말에서부터 나의 이성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국민’이라는 걸 의심해본 적 없는 독자에게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6쪽)이다. 한 번도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고, 이 국민이란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에게 최근에 이런 글들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내가 이중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산산조각난다.
여기 실린 칼럼은 <한겨레>에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과거 4년간 한국, 일본, 세계의 사상 등을 응시하며 쓴 글이다. 모두 네 꼭지로 나누었는데 칼럼 순서가 아닌 분야별로 묶어놓았다. 첫 꼭지가 기억의 싸움을 다루는데 특히 이제 곧 다가올 5월과 6월이 기억의 계절이라는 대목에서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은 평화와 인간성을 위한 싸움이다.”(46쪽)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림으로써 파시즘이나 독재자 등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을 볼 때 정의도 윤리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집단적 죄’와 ‘국민적 책임’을 구분한 내용을 곱씹어볼만하다.
두 번째는 재일조선인으로 사는 문제다. 한국과 일본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인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을 예전에 집시라고 불렀던 로마들에 대한 프랑스의 대처를 나치의 그것과 연결한 부분에서 우리 속에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다시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어지면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용어를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재일조선인의 북송사업이 일본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역사적인 기만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놀아났는지, 그것이 현재와 미래와 과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꼭지에서는 시대를 통찰하는 예술의 힘을 다룬다. 이전에 읽은 저자의 다른 책이 간간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특히 한국문학과 민족문학의 차이에 대한 고찰 부분은 용어가 우리 인식의 한계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베네수엘라의 기적으로 불리는 국가적 음악교육 시스템이다. 우리도 최근에는 사교육으로 악기 하나는 배우게 만들고 있지만 국가적인 지원이나 예술로의 발전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란 점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뭐 한국에서는 음악이나 미술 교육이 하나의 스펙 정도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은 젊음과 그 뒤안길에 대해 다룬다. 병원에서 가족들이 간병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와 일본의 현실을 비교한 부분은 핵가족 사회로 변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간병인이 점점 상식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전문가 집단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가족에게 그 부담을 지우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3년 간병에 열녀, 호부 없다는 옛말을 생각하면 사회적 분담에 대한 논의가 더욱 더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지해 전혀 그 가족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국인’이기에 ‘국민’이기에 잊고 있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꼭 집어서 보여준다. 이것은 저자의 말처럼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그의 인생 역정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역사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그의 통찰은 가슴 깊이 담아둬야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우경화가 우리와 다를 것이라는 역사학자의 인식은 기억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충돌한다. 이 칼럼 모음집을 통해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 하나를 더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