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한 노인의 불륜 이야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제목처럼 오래오래 지속된 사랑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이것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 개인적인 의견은 후자다. 엄숙한 도덕과 윤리의 잣대에서 본다면 이 둘의 만남은 분명히 불륜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륜에 빠져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것이 단순한 열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작가가 독자 앞에 풀어놓은 이야기가 충분히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의 사랑이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지속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분명히 재미라는 측면에서 많이 떨어졌겠지만.

가브리엘은 뛰어난 원예가다.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선조들은 유명하고 탁월한 바람둥이들이었다. 어린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닮지 않고자 노력했다. 평온한 원예가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정에 비교적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유전적인 원인 때문인지 아니면 운명처럼 그를 강타한 한 만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두 아이의 엄마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사랑의 시작은 그가 즐겨 찾던 식물원의 아주 짧은 마주침과 접촉을 통해 구체적으로 일어난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그는 그녀를 찾아다닌다.

엘리자베트. 그녀는 프랑스 무역 외교전문가다.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여왕이다. 여왕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는 남자에게 휘둘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룬 가정을 포기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것도 아니다. 그녀 속에 있는 법도는 사랑에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가브리엘이다. 그녀의 남편이다. 아이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그녀의 불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정신없이 바쁘고 힘찬 그녀의 삶이 이어지면서 그들 삶에 일어난 아주 큰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이 긴 소설 속 아주 짧은 부분에서 가브리엘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흔들리는 그녀를 보여주지만.

가브리엘이 그녀를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한다. 두 아이들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길 바라지만 쉽지 않다. 프랑스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열정적인 사랑에 처음 빠진 그가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곳이 바로 평소 연결되지 않고자 했던 아버지다. 아버지의 두 연인과 함께 그의 길고 오래오래 지속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에 무관심했던 그에게 아버지와 두 연인은 여자와 사랑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한다. 물론 그는 그녀가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편 전략은 아이들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는 것이고, 그의 노력과 정성은 결국 결실을 맺는다.

단순한 사랑만을 다루었다면 조금 지루했을지 모른다. 작가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속에 문학과 예술과 원예 등에 대해 끝없이 널어놓는다.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타고 흘러나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은 새로운 아이를 낳게 만들고, 대문호를 기대한다. 두 사람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 강한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특히 안젤리나에서 차를 마시며 벌어지는 조그만 에피소드는 아버지의 두 연인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또 가브리엘이 어떤 사랑을 나누는지 잘 알려준다. 만약 튈릴리 공원 앞의 그 카페라면 그 풍경은 정말 볼만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의 쇼콜라 쇼가 그렇게 단 것도 이런 일들을 유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 만나는 작가다. 하지만 6백여 쪽에 달하는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나가는 필력을 보면서 다른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코 무시무시한 이야기나 긴장감 가득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데도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려내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들은 일상의 풍경과 더불어 이루어지고, 그 감정은 가슴 속에 조용히 파고든다.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겠지만 작가가 보여준 오래오래된 연인의 사랑과 열정은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강하게 다가올 것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도 이런 사랑을 앞으로 나눌 수 있기를 읽는 내내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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