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2011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월가 점령 운동이다. 그들의 운동을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점령하라(occupy)'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단어를 들으면 먼저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총칼이 오가고 군인들이 등장하는 그런 전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운동도 전쟁이 맞다. 월가 점령 운동이 1%에 대항하기 위한 99%의 운동이자 투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이 보여주는 운동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제인 세계를 뒤흔든 용기의 외침이다.

월가 점령 운동을 다루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여기게 저자 이름 중 등장하는 슬라보예 지젝은 이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다룰 것이란 기대를 심어준다. 하지만 아니다. 해설은 쓴 우석훈의 말처럼 중구난방의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젝의 글도 있다.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란 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2011년 10월 9일 주코티 공원에서 읽은 연설문이다. 이 연설이 큰 공감을 불러온 것은 한 문장 때문이다. “그때 멋졌지.”(109쪽) 

왜 이 문장에 큰 공감을 했냐고?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 때문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선배들이 그들이 얻어낸 조그만 성과를 끝없이 회상하고 추억하고 자랑하면서 내뱉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룬 성과를 폄하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까지 오면서 보여준 삶의 모습을 보면 그들 자신이 또 다른 기득권으로 변해 더 심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것을 좀더 과거를 옮겨가면 4.19세대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 미완성이자 철저하지 못했거나 분명한 한계를 지녔던 그 시대의 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월가 점령 운동에 대한 글이지만 경제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월가의 횡포를 지적한 글이 없다. 있다면 이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과 문제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감상이자 진행 사항이다. 운동 내부의 문제점이나 이 운동이 거대해지고 힘을 지니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충돌들을 다룬다. 현실적인 문제가 많은데 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드럼 서클의 소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이 운동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어준다. 이후 나오는 흑인 시위 문제, 노숙인 문제, 차이나타운과 점령 운동, 공동의 빨래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도 바로 이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끝없는 토론과 전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인내를 보여준다.

이 운동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효율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은 길고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전체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른 시위나 운동에 대한 인정이자 공생이다. 그냥 보아도 분명히 효율적인 진행 방법이 있을 텐데 그들은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 하지만 바로 이 과정을 중시하는 행동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개인과 전체의 조화와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대변되는 이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다수결의 폭력으로 혹은 소수 권력 집중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말이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실과 연결시키게 된다. “파산한 은행을 세금으로 구제해주면서도 쥐꼬리만 한 세금 인상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나라다.”(24쪽) 이 문장은 우리의 부자 감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에 알게 된 한국 재벌의 문제도 같이 연결된다. 자신들만은 규제를 받지 않으려는 자본과 1% 기득권층을 대변하려는 정부 등을 생각할 때 이 운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 수 있다. 김어준이 ‘세계사적 비명’이라고 한 것도 99%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도 이 점령 운동은 진행되고 있다. 누구는 이 운동이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운동이 보여주는 과정과 결과물은 분명 승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승리한 것은 아니다. 대자본과의 투쟁은 길고 지루한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008년 우리의 촛불 시위가 그 뜨거웠던 열기에 반해 이룬 성과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물론 그때 뿌리를 내린 씨앗들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 열매는 맺어지지 않았다. 

이 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찾게 될 것이다.”(306쪽) 같은 빨래 처리를 두고 가지는 한 저자의 의지다.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그들이 이룩해 나가는 성과물들은 순간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좀더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 무엇보다 효율적이고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사라진 이 운동에 대한 글들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뒤흔들고 미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게 만든다. 앞으로 더 관심 있게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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