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
좌백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참으로 오랜만에 좌백의 소설을 읽었다. <꿈을 걷다: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에서 그의 단편을 한 편 읽었지만 이때는 판타지였다. 그 후 나온 후속편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번 단편집에 실려 있다. <마음을 베는 칼>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로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어떤 단편이 이전에 읽은 것인지 혼란이 생겼다. 아마 이전에 여기저기에서 읽은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서 보여주는 몇 개의 중요한 설정이나 전개가 기존 무협과 비슷한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비정강호(非情江湖). 이 단편집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특히 앞의 세 편은 협객의 강호행은 없애고 비정한 강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월적인 무공을 펼치기보다 현실 앞에 너무나도 작아지고 변하는 인간의 삶과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형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신 자객열전>의 등장인물들은 그래서 더욱 비정하다. 자객이 되자고 하지만 죽여본 적이 없어 주저하거나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다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거나 배고픈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의도가 오히려 독으로 변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무협지-정생, 강호유람기>는 강한 무력 앞에 너무나도 힘없는 한 인간의 행적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인물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변신은 가속화된다.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군 폭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협객행>은 제목과 달리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삶이 시선을 끈다. 거기에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을 옹호하고 비호하는 아내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이것이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도(死刀)와 활검(活劍)>은 무협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마달의 무협 중 한 장면이다. 아마 더 찾아보면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의 기억은 그곳이 처음이다. 당연히 제목은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대사도 역시 다른 무협 속에서 몇 번인가 읽은 적이 있다. 표제작인 <마음을 베는 칼>도 낯설지 않다. 고룡 무협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것 또한 정확한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다. 저질 기억력 탓이다.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빠른 진행은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조선군웅전(朝鮮群雄傳) 초(抄)>는 아쉽다. 좀더 장편으로 개작할 수도 있을 텐데 빨리 마무리한 느낌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날 때 색다른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편의 무협을 쓴다고 해도 좋을 텐데. <호랑이들의 밤>은 현대 속에서 전통 무술을 찾는 여정을 다룬다. 암시와 복선을 깔고 현실과 상상을 뒤섞어 기존 가치관을 뒤집어 놓을 때 그 빛이 발한다. 현대물로 이야기를 더 만들면 어떨까? 기대된다.
<쿵푸마스터>는 <비적 유성탄>의 후일담이다. 시작은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 오마주지만 금방 왕필로 넘어간다. 중국 무술의 고수가 드라큘라와 싸운다는 설정인데 묘하게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진다. 아마 <야광충>의 주인공이 흡혈귀였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무리하게 추측해본다. 굴곡이 많았던 <비적 유성탄>의 완간을 생각하면 이 단편의 가치는 더욱 귀하다. 뭐 <혈기린외전>의 왕일과 이름을 혼동하였지만 작가가 고맙게도 중간에 구별해줘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동양의 무술 고수와 서양 요마의 대결이란 구도를 장편으로 확대한다면 좀더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기도 하다.